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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녘 연필소리 Feb 12. 2024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

나의 과녁

2020. 12. 5. 쓰고, 2024. 2. 12. 다시 쓰다.

설연휴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고 착각하고 하루를 보냈습니다. 본가에서 집으로 건너와 내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다가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마감 2시간 전에 부랴부랴 연재분을 수정해서 퀄리티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연휴 내내 본가에 쉬었습니다. 휴대폰을 재킷에 넣어놓고 탱자탱자 누워 있었더니 생긴 일이네요. 부끄럽습니다. 다만, 연휴에 푹 쉬는 사람이구나. 하고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 무라카미 하루키] 나의 과녁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비정하고 냉혹한, 지독하도록 매일이 놀라운 이 세계는 그림자가 발밑을 따라다니고, 마음이 존재하고, 음악이 흐르는. 실존과 관계없는 요소를 소거하면 한 개의 티끌로의 자신만이 남는 매정함에 숨이 막힐 만큼 사실적인 현실세계다. 이 유한한, 티끌만 한 세계 속에서. 유한한 존재는, 유한한 기쁨을 느끼고 유한한 비탄을 느낀다.


반면 사유는 무한한 존재다. 출입문이 굳게 닫혀있고, 냉엄하고 살벌하게 경비를 서고 있는 돌벽은 빈틈없이 치솟아있다. 해가 떠도 그림자가 날 따라다니지 않고, 그래서 마음이 없으며,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아야 하는 평온도 고통도 무한한 세계의 끝. 무한대를 향해 반복되는 사유는 의식이 꺼져도 혼자 남아 무한한 희망을 맛보고 무한한 비통 안으로 침잠하며 커진다. 늘어난다. 깊어진다. 무의식, 의식, 사유. 무의식이 낳은 상상력의 ‘유해한’ 발로를 의식의 영역에서 통제하지 못하고 현실세계에 행동으로 꺼내놓는 자는 냉엄하고 살벌한 현실세계에서도, 평온하고 비통한 사유의 영역에서도, 운명이 내리꽂는 칼날을 피할 수 없다. 심판을 받는다.


Karma karma karma is looking for you

What u gonna do when they come for you

Karma karma karma is gonna find you

What u gonna do (<멘붕>의 가사 중 - CL)


인간은 꿈에서 한 행동으로부터도, 무의식이 저지른 잘못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유한하고, 또한 무한한 세계가 모여 이루는 무한한 사유를 하는 유한한 존재.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카르마가 찾아올 때, 그 화살이 내 과녁을 꿰뚫어버리려 할 때. 그 이유에 대하여, 그 찰나가 찾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유에 대하여 깨달을 수 있을까. 혼자 남은 사유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을까.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관이 얼마나 정돈된 상태에서 출발했는지, 그리고 그 특별한 출발 이후에도 꾸준히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립함에 소홀함이 없었음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통해서 하루키는 데뷔한 지 6년 만에 신예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저력을 보여줬고, 저명한 채널을 통해서 인정받았다.


그의 세계관은 본작에서 완성된 상태로, 다른 줄거리의 이야기로 재생산되어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보르헤스가 이야기했듯이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또한 김연수 작가의 믿음대로 작가는 평생 단 한 가지의 이야기를 한다. 하루키가 자신의 단편이자 미완성작을 최신작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들>로 다시 썼고 에필로그에서 이를 언급했다는 사실은, 본작에서 등장하는 세계의 끝과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들>에 등장하는 도시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착점으로 읽힌다. 그러니까 이 노작가의 작품들은 확고한 세계관이 다른 인물들과 사건들을 뼈대로 하는 이야기들을 빌어 표현된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형제와 같은 이 이야기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들은 주로 실존, 인간의 유한성, 자신의 의미에 대한 고찰, 사유의 무한성,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 무의식에 대한 인간의 책임, 그리고 이 모든 고민들을 상회하는 비책으로서의 사랑, 공존, 상처의 치유로 압축해 볼 수 있다.


본작은 독자로 하여금 유한한 인간이 져야 하는 무한한 책임 앞에서 얼마나 우리 삶이 안일하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하드보일드하게 지적한다. 보는 내내 부끄러웠다. 무서웠다.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아는 유한한 마음에도 공포가 깃든다는 것이 쓸쓸했다.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당연해서 안도했다. 내가 유한한 인간인 이상 이 굴레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시 또 부끄러워지고, 두려워하게 되겠지. 운명의 화살이 나의 과녁을 뚫어버릴까 봐. 내가 꿈에서 저지른 그 일들이, 무의식이 저지른 선택들이, 눈을 감고 비겁하게 용기 내지 못했던 순간들이, 합리적으로, 바르게, 내리지 못한 결론들이. 결국 나를 찾아낼까 봐. 나의 과녁을 뚫어버릴까 봐. 아니 그럴 것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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