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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녘 연필소리 Mar 04. 2024

<1Q84>, 2009

생은 음악을 타고 흐른다.

2023. 3. 3. 쓰고

롯데콘서트홀 BPTM 캠페인의 일환으로 기고한 칼럼입니다.

선율을 따라 전달되는 이야기와 음악으로 연결되는 생을 주제로 

<1Q84>의 메인 테마인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를 소재로 다루었습니다.

때로는 긴 글보다 (역시 길지만 선율로 이루어진) 음악 한 곡이 작품의 여운을 선연하게 담아낼 때도 있답니다.

딱 1년 전에 썼던 글을, 이렇게 나누게 되어 어쩐지 더 설렙니다.




[1Q84-무라카미 하루키] 생은 음악을 타고 흐른다.


우리는 왜 음악을 사랑할까. 음악의 생은 길다. 클래식이 인간에게 사랑받으며 오래 살아남는 운명을 타고난 이유는 무엇일까. 언니는 왜 클래식을 좋아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이 아직 공기 중에 가득한 공연장을 나오다, 동생이 손을 꼭 잡아오며 묻는다. 질문이 포르티시모가 되어 꽈광 울린다. 글쎄. 대답은 허공에 짧은 자취를 남기고, 나는 그만 골똘해진다.


세상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길을 걷는 이의 궤적에는 이야기가 넘실거린다. 가끔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한 움큼씩 우수수. 이야기가 쏟아지는 것만 같아 손을 뻗고 싶어 진다. 생은 우주를 잣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야기는 우주다. 웅숭깊은 것들을 사랑한다. 우주를, 세상에 가득한 이야기를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전해지는 순간을 사랑한다. 포르테로 마주 잡은 두 손, 대답 없는 침묵을 견디어 주는 발걸음, 쏟아지는 별자리 사이로 흩어지는 고요한 탄성, 관객들이 빠져나가 조용한 홀에 고인 공기, 그리고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같은 것들.


레오시 야나체크는 쓸데없는 부분을 들어낸 구조적 명료성과 고전주의 형식을 대표하는 대위법을 체코의 민속음악에서 받은 영감에 결합하여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했고, 고국의 음악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야나체크의 인생과 음악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음악에서 민족이라는 이름의 보통 사람들이 이루는 삶에 대한 경의와 존중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신포니에타에서는, 1악장의 팀파니와 금관 악기가 빚는 팡파르가 5악장에 이르는 장대한 규모의 작품 전반으로 흐른다. 축제에 쓰일 법한 이 팡파르의 변주들은, 어떤 선율 속에서도 삶을 사랑하고 씩씩하게 생의 무게를 감당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격려와 축하로 다가온다. 이런 맥락에서 곡을 느끼면, 2악장의 휘몰아치는 듯한 장엄한 팡파르가 삶에 대한 전율을 노래하는 듯하다.


신포니에타의 팡파르는 작품 안에서 뿐만 아니라 작품 밖으로, 인간의 생으로도 흘렀다. 야나체크의 음악적 특성은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에게 계승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Q84>에 신포니에타를 등장시켜, 작품에 흐르는 정서의 디딤돌로 삼는다. 신포니에타를 들으면, 체코의 쿠데타와 두 개의 달이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같은 순간들 때문이지? 레가토로 이어지는 생각 속으로 음표 같은 얼굴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텅 빈 거리에 발걸음들이 스타카토처럼 울려 퍼지고 있다. 응, 맞아. 짧은 노래를 마치고 부끄러운지 발간 얼굴 아래, 여린 어깨를 꼭 안는다.


홀로 남은 마음이 어쩐지 쓸쓸할 때 음악을 듣는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도 전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괜히 근사했던 그 밤을 생각한다. 함께 걷는 발걸음이 버거울 때 음악을 듣는다. 다른 소리와 내는 불편한 화음도 역시 음악이다. 도처에 흐르는 생을 사랑하고 싶을 때 신포니에타를 듣는다. 음악에 녹아 있는 생을 느낀다. 그렇게 음악은 긴 생을 산다. 클래식이 된다. 오래 사랑받는다. 음악은 생을 타고 흐른다. 야나체크에서 쿤데라로, 하루키로, 관객들 사이로. 그리고 생은 음악을 타고 흐른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온 우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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