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동 아루나
일본은 골든위크(4/26~5/6, 11일), 중국은 노동절 연휴, 그리고 한국은 어제까지의 귀한 연휴가 지났다. 4월 비수기가 지나고 처음으로 속초는 북적였고, 지금은 고요하다. 라디오에선 ‘오늘이 꼭 월요일 같은데 수요일이다’라는 청취자 문자 읽어주는 소리가 들려온다.
어제부터 6시 반 무렵 눈이 떠져서 아침 산책에 나섰다. 마음은 달리고 싶지만 선뜻 달려지지가 않는다. 일단 이 시간에 밖으로 나가는 점에서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출근 전에 3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어디쯤까지 걸어갔다가 와야지 생각하고 나섰는데, 바다에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고 한참 서서 구경했다. 배… 배다!! 큰 배다!
요새 속초항에 가끔 못 보던 큰 배가 들어오면 찾아보곤 한다. ‘베셀 파인더’라는 사이트에 항구 이름이나 선박 이름을 검색하면, 현재 어떤 배가 있는지 알 수 있다. 며칠 전에 JOYO 6라는 이름의 화물선이 왔다 가서 그 배인가 싶었는데, 다른 배다. 이 배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왔다고. 전쟁 중이어도 생업은 이어지고 있나 보다.
해외에서 배가 오면 저렇게 해경이 안내를 해준다. 딱 붙어서 가는 모습이 엄마 마중 나온 아이 같아 보인다.
이렇게 생긴 배라고 해서 가까이 왔을 때 무늬를 봤는데, 다르다. 배에 적힌 저 글씨가 없고 배 모양은 같은 걸 보니 페인트칠을 새로 한 듯.
동명항과 청호동 방파제 사이로 들어가는 HANSUNG호. 해경 배 저렇게 가까워도 되는 건가?
항구 근처라 그런지 선박 크기에 비해 항해 속도가 너무 느렸다. 조도 뒤에서 오는 걸 발견하고 속초항으로 들오서는 걸 다 볼 때까지 15분 정도 걸렸다. 일찌감치 오전 5시 반에 뜬 해가 눈앞의 바다에 햇살을 입히고 있었다. 일렁일렁. 막 잡아 올린 갈치의 비늘이 반짝이는 모습을 티브이에서 보고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바다의 하얀 반짝임 들도 예쁘다. 공짜로 얻은 보석을 보듯 한참 들여다보는데, 사탕껍질이 떠올랐다.
어릴 때 유행하던, 문구사에서 파는 예쁘기만 한 사탕. 조그맣고 과일맛이 나는데, 인어공주 꼬리처럼 햇살에 여러 색깔로 빛이 나는 포장지에 싸여있었다. 그런 걸 예쁜 유리병에 넣어 화이트데이에 팔았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작고 똑같은 사탕을 나눠주고, 나에게만 훨씬 큰 유리병에 담긴 사탕을 준 남자애가 생각났다. 다른 때는 잊었다가 아침햇살이 부서지는 바다만 보면 떠오른다.
아침 걷기는 변비에 좋다. 왜냐하면 바로 속초해수욕장 화장실로 향했으니까.
이제 생각했던 시간이 거의 다 돼서, 가려던 곳까지는 못 가고 다시 돌아간다. 아직 9시가 안 된 시간. 초등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위해 교통정리를 해주시는 어른들. 여기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분들이 하고 계시다. 작은 건널목 앞, 함박웃음으로 다가오는 아이들을 맞아주시는 아주머니. 그에 대비되는 뒤쪽의 다른 어른들. ”아이, 아줌마! 차를 먼저 보내고 해도 되는데 참“ 소통 오류다.
최근엔 통 못 가본 카페에 불이 켜져 있길래 가까이 가보니, 오픈하려면 15분 남았다. 계획대로라면 이대로 집에 돌아가야 하지만, 다른 카페라도 들렀다 가볼까? 하는 마음이 살짝 생겨났다. 뭐 집에서 가방만 챙겨서 바로 나가면 되니까.
다시 해안도로. 바다 옆 초등학교를 지났다. 계속 가고 싶었지만 때가 안 맞아 못 갔던 그 카페까지 왔다. 9시 오픈까지는 아직 남았는데 문이 활짝 열려있어서 안심했다.
내가 오늘의 첫 손님인가 보다.
창가자리를 좋아하지만, 5월이 되니 제법 햇살이 뜨거워서 그늘 자리에 앉았다. 아까 배를 구경하던 곳과 가까운데, 통창을 통해 바다를 전세 낸 듯 오래 두고 볼 수 있다.
우리 집이 이렇다면 어떨까? 잠시 생각해 봤다. 에이, 안 되겠어. 내가 바깥을 볼 수 있다는 건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우리 집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데. 그럼 커튼으로도 가리고 편하지가 않을 거 같아. 하는 별 의미 없는 고민도 잠시 하며 쉬는 시간.
진한 아이스 라테와 커스터드 타르트가 나왔다. 문득, 지금 이 순간의 마음 그대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브런치 앱을 깔았다. 카페에 대해 글을 연재하려고 만들어둔 목록, 가장 최신 글이 2023년이었던 것에 반성하며. 연휴가 끝나고 일상을 되찾은, 오늘 산책길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