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바다

카페 바다봄

by Julie

일이 일찍 끝났다. 한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서, 그냥 집에 갈까 하고 걷던 중, 영랑동 해안도로에 섰다. 해안도로 포장마차촌 가게마다 ‘산오징어 개시’라고 써붙여있다. 아마도 아랫지방 오징어일 거라고 엄마에게 들었다.

오늘은 구름인지 안개인지 고성 쪽이 뿌옇다. 파랗게 하늘 맑은 날은 여기서 봉포 앞 거북섬, 아야진, 멀리 거진까지도 보인다. 여기서 보니 봉포 경동대 앞에 새로 짓는 숙소도 거의 다 올라갔고, 아야진에 짓고 있는 아파트도 꽤 많이 지어졌다.


연휴는 끝났고, 날씨는 좋고, 한들한들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이 소소하게 찾아온 바닷가. 등대 전망대 계단 근처에 서 있다가 뒤쪽 카페에나 가볼까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 출연했던 배우 이두일 님이 운영했던 카페, 펜션 자리다. 오랜만에 지나다 보니 간판이 바뀌어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분이 운영하신다고 한다.


날씨예보만큼 덥진 않지만, 창문을 열어 시원한 풍경을 보고 있기에 나쁘지 않은 날이다. 열어둔 창으로 마이클잭슨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볼까?

얕은 언덕 초입의 건물인 데다 3층에 앉으니 제법 전망대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모래사장이 있는 곳 이름이 등대해변이고, 카페 앞은 테트라포트가 바닷물에 잠겨있다. 맑은 물아래 모래가 보이는데, 내가 어릴 땐 여기에도 작게 모래사장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모래사장 위로 바닷물이 올라왔다.


아빠가 근처 횟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했을 무렵,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아빠는 일명 실장님이었다.


어느 한가한 날에 아빠를 보러 엄마랑 갔다. 이 앞 바위에 포장해 온 회 한사라를 꺼내 펼쳐놓고, 아빠는 낚시를 했다.


아빠는 잔걱정이 없는 사람이라 금방 장난스럽게 웃곤 했는데, 나는 ‘아빠 또 술 먹네’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나를 일찍 철들게 했고, 울게 했고, 아껴주고 지켜주었던 바보 같은 아빠.


연휴 전이 아빠 6번째 기일이라, 동생이 집에 왔다. 엄마, 동생, 나 셋이서 벌써 여섯 번째 차리는 제사상. 제사 지내는 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때마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따라 하는 날. 티브이에는 유튜브에서 찾은 제사용 병풍 영상을 틀어두고, 어느 정도 타협해서 차린 음식들을 올린다.


창문의 방충망은 열지도 않았으면서, 도대체 아빠의 큰 몸으로 이 창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다는 건가? 생각하며 절하고 술잔을 빙빙 돌렸다.

아빠가 생각나서 한동안 이쪽으로는 오고 싶지 않았다. 아빠 제사상 같은 거 차리고 싶지 않아라고 울면서 걷던 날들이 지나갔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렀다.


The winner takes it all


아바의 노래가 흐르는 카페 안.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플레이 리스트다.


카페 3층에는 공연용 세팅이 되어있다. 커피 외에 맥주와 간단한 안주도 파는 곳이다. 지금처럼 카페가 많아지기 전의 카페 분위기가 난다. 인증샷도 리뷰도 없는, 조금 더 낭만이 있었던 때처럼.

아빠와는 이곳에 와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빠가 술 마시는 게 싫어서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도 저녁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창가에 앉아, 드럼의 쿵쿵 울리는 소리를 따라 특유의 흥겨운 표정을 지었을 아빠를 떠올리는 건, 그리 어렵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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