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할리스 속초 영랑 해변 DI점>에서
하와이
‘ 하와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금방 머릿속에 야자수나 투명한 바다빛, 큰 거북이가 수영하는 모습 같은 게 떠오른다. 해변 옆에서는 리넨 끈나시 원피스에 팽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여행객이 스팸무스비에 색색깔 시럽을 뿌린 빙수를 들고 앉아 먹고 있다.
내가 이루고 싶은 일들을 적어놓은 노트에서 ‘하와이’는, <호놀룰루 마라톤 참가> 항목에 함께 쓰여있다. 마라톤 참가를 위해 인천공항에서 몇 시간을 날아가면, 시간 차 때문에 여전히 하루 전인 그곳에서 대회 전 연습 달리기를 하고, 다음날이나 다다음 날 아침 5시부터 대회에 나가는 거다. 아마도 그다음 날은 근육통으로 걷기 힘들 테니 좀 누워있다가, 슬렁슬렁 며칠 구경하고 돌아오는 약 열흘간의 여행 일정을 적어놓았다. 물론, 지금은 동네 한 바퀴도 달리지 않으며, 하와이는 가 본 적 없다.
지금 내 핸드폰 배경화면에는 ‘Hawaii delivery'라는 이름의 유튜브 재생 목록이 추가되어 있다. 언젠가 바다가 보이는 칵테일 바(혹은 카페)를 열면 틀어 둘, 그 무드에 어울리는 노래들을 약 900여 곡 모아둔 재생목록이다. 내가 만든 것은 아니고, 우연히 알게 된 노래 모음집이다.
눈앞에 바다를 두고 앉아있자니, 막간을 이용해 한 번 들어나 볼까 하고 재생목록을 눌렀다. 모르는 곡인데 좋다. 인어공주 꼬리 부분처럼 생긴 등대해변 왼쪽 모래사장은 정식 해수욕장이 아니라서 개인적으로 자유롭게 노는 사람들이 보인다. 크고 노란 튜브 위에 다 큰 어른이 둥둥 떠서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다. 3분 44초짜리 노래가 끝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간 유튜브 영상을 보니, 존 레논의 젊은 얼굴이 겹쳐지며 흩어진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브런치 앱을 열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동안은 유튜브 영상을 틀어둘 수 없다. 그래서 팟빵의 <여둘톡>을 틀었다. 7월 29일에 올라온 152화 ‘우리의 노후 계획: 하와이 딜리버리‘를 말이다. 그렇다. 이 유튜브 재생목록을 만든 건 <여둘톡>을 운영하는 작가님들이다.
코로나 시기 전부터 몇 해에 걸쳐, 하루 한 곡씩 노래를 쌓아가며 만들었다고 한다. 트위터에 노래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곁들여 적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최근에 책으로 나왔다. 여둘톡 팟캐스트를 듣다가, 그 책을 좋아할 만한 친구 얼굴이 떠올라 선물 목록에 적어두었다.
속초
‘속초’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어떨까?
이곳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는, 아침 햇살을 머금은 설악산 자락이나 바다 물결 같은 자연의 모습도 떠오르지만 생활에 가까운 장면들도 떠오른다. 어물전에서 뼈에 좋다는 가자미 세꼬시를 사던 것, 시아버지와 함께 시장 동해순대국에서 인생 첫 순대국을 먹어봤다는 엄마의 이야기 같은 것들 말이다.
타지에서 여행으로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평온하고 좋은 숙소나 탁 트인 바다뷰, 맛있는 가자미조림이나 우연히 발견한 카페가 떠오르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다’라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다. 바다가 닫히는 날이다. 정확히는 ‘해수욕장’이 공식적으로 문을 여는 마지막 날이다. 이제 폐장을 하면 안전요원도, 노란색 부표가 동동 띄어진 안전선도 없다. 유료 파라솔과 평상도 없고, 개장 직전의 바다처럼 여름휴가의 여운이 남은 사람들이 마지막 바다 수영을 즐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앉아있는 이곳은
이다.
보통 속초의 바닷가 카페는 토요일부터 일요일 낮까지 손님이 많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은 한적한 편이라 1층 창가에 앉았다.
오는 길에 잠시 들른 편의점, 간식으로 1+1 하는 맥스봉을 살까 새로 나온 삼각김밥이 있나 살펴보는데 등 뒤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온다.
“어제 박진영이 왔대요.”
한화콘도에서 열렸던 워터밤 이야기로구나. 안 그래도 어제 아침부터 장사동 끝까지 쿵짝쿵짝 둥둥 소리가 들렸었는데. 오늘로 해수욕장이며 워터밤이며 여름을 상징하는 이벤트들도 끝이다.
아침 10시가 되자, 스킨스쿠버 하는 사람들을 태운 빨간 보트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다. 간이 선착장으로 내리는 사람들은 고무수트를 입고, 산소통을 매고 모자를 썼다.
할리스 왼편에 버거집이 있는데(그전엔 카페였음), 본업은 스킨스쿠버 하는 곳이다. 빨간 보트가 파란 바다 위에 포말을 일으키며 다가올 때, 옆 자리에서 노트북 하던 사람은 사진을 찍었다.
올해는 바다에 한 번도 들어가지 않았다. 어떤 해에는 그게 아쉽고 서러웠는데, 올해는 별 생각이 없다.
일 년 중 가장 좋아하는 여름이 지나간다. 5시 무렵 바다 위에 해가 떠오르고, 저녁 8시쯤 설악산 언저리에 밝은 기운이 남아있는. 밤새 에어컨을 틀고 자더라도, 아침이면 희망찬 밝은 기운을 넘치게 보내주는, 내가 태어난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