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워 코지 플레이스>
구름에 대한 책을 봤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라는 바다 위에 물결치듯 구름이라는 파도가 친다고 했다. 호주에는 특별한 구름이 나타나는 시기가 있어서, 경비행기를 모는 사람들이 그 구름을 서핑하듯 타려고 찾아오기도 한다고.
구름책을 읽고 나니 걷다가 본 구름 하나도 더 관찰하게 된다. 또 바닷물에 흰 자국을 남기며 나아가는 고깃배가 비행기와 꼭 닮았다는 것도 발견했다. 배 뒤에는 포말이, 비행기 뒤에는 비행운이 남으니까.
송풍 모드가 끝난 에어컨이 꺼졌다. 열대야의 남은 잔열을 식혀주는 건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풍기 한 대뿐이었다. 아침 6시 반. 엉덩이 쪽이 축축해서 만져보니 이런, 또 샜다.
7월 중순부터 시작한 생리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며칠은 겁이 날 정도로 양이 많아져서 아침부터 손빨래를 하게 만든다. 샤워까지 마쳤는데도 아직 7시가 안 됐다.
‘모해 모해?’
적막 속에 울리는 카톡 알림음. 이 시간에 매너 없게 누구야 도대체? 하고 소리가 난 엄마 핸드폰을 보니, 이모의 부재중 전화가 두 번 와있다. 간 밤에 외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이었다.
외할머니는 올해로 90세가 되셨다. 지난달에도 집 안에서 넘어져 요추 골절 진단을 받으셨다. 추측 건데 이번에도 어딘가에서 넘어져서 119를 부르게 된 것 같았다. 출근해야 하는 엄마와 이모를 대신해, 근무를 빼고 내가 병원으로 갔다.
우리 집에서 병원까지는 큰 대로를 쭉 타고 가면 도착한다. 곧 병원 아침 식사가 나오는 시간이다. 이모에게 듣기로 할머니가 허리를 다치셔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옆에서 식사를 도와드려야 한다고 했다. 마음이 바빠 택시를 탈까 했는데 금방 버스가 왔다.
아침 7시 반. 버스 안의 사람들은 모두 일하러 가는 분위기다. 그러고 보니 이 시간에 이쪽 방향으로 가는 버스도 오랜만에 탄다. 평소엔 거의 걸어서 다니거나, 다른 시간대에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니까.
청학 사거리를 지나 엑스포장을 향하는 동안, 피곤하고 쳐진 분위기가 조용히 버스 안을 맴돌았다. 출근 중인 버스 안 사람들 중에는 히잡을 쓴 외국 여인도, 슬리퍼를 신은 젊은 외국 남자도 있었다. 그런 시대가 됐다. 아마도 휴가철 이른 장사를 시작한 식당으로 출근 중인 것 같다.
버스에서 내려 병원 로비로 달려 들어갔다. 이모에게 전달받은 입원실에 들어가니, 2인실 침상 하나는 비워져 있었다.
약 한 달 만이다. 지난달 요추 골절 때는 개인 정형외과에 가는 것으로 수습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종합병원의 진료가 필요하다. 지난번에도 119 구급차로 급하게 방문한 병원이라, 내가 근무를 빼고 할머니 보호자로 갔었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그 새 많이 나이 들어계셨다.
오늘 본 할머니는 그때와 비슷해 보이지만, 말씀을 또렷하게 못하시고 기운이 빠진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여태껏 살면서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한 입원은 처음 하신 거니, 건강하게 살아오신 편이다.
“할머니 왜 넘어지신 거예요?”
“3블럭 앞에 미용실에 파마하러 가다가, 언덕길에서 넘어졌어. 뒤로 넘어갔는데”
“머리는요?”
“머리는 바짝 들었지”
당연히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인 줄 알았는데, 혼자 보행기를 밀어 근처 미용실에 가려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보행기에 의지해 더듬더듬 걷는 편이신데, 어떻게 거기까지 가실 생각을 하셨을까?
“아유 할머니~ 거기까지 힘든데 어떻게 가려고 하셨어요? 택시를 타셔야지”
“택시 타려고 했는데 번호를 몰라. 언덕 아래 택시 타는 데까지 가려고 했어”
할머니 지난달에 넘어지셨는데 지금 파마가 문제예요? 하는 생각과 함께 할머니에게도 한 사람으로서 인생을 더 낫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러셨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근데 119는 누가 불러줬어요?”
“거기 옆에 우유 아줌마가”
할머니댁 가는 길에 언덕길이 있고, 거기 상주하고 계신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계시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조각난 여러 퍼즐을 맞춰본 결과, 할머니는 파마를 하러 가다가 넘어지셨고,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119를 불러주셔서 밤 사이 입원을 하신 거다. 회진 도는 의사 선생님 소견으로, 척추뼈에 금이 갔고 당분간 안정된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아침밥이 연분홍 쟁반에 담겨 도착해 있었다. 허리가 아프시니까 스스로 일어나 앉기 힘들어서, 발치에 있는 레버를 돌려 침대 등받이를 올려봤다. 중간쯤 올라왔는데 아파하신다. 다시 후퇴. 아이참 식사는 하셔야 하는데? 등받이 높이가 이 정도로 낮으면 드시다가 사레들릴 텐데 다시! 아이고 안 되겠다. 정형외과 선생님이 회진 오시면 다시 물어보기로 하고 식사를 미뤘다.
할머니만 계신 2인실. 회진도 다음 식사도 오기 전이라, 멀뚱하게 틀어진 티브이 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할머니가 보실만한 걸 틀어보려고 ‘아침마당’으로 채널을 돌렸다. 휙 휙 넘어가는 채널마다 누군가는 물건을 팔고, 누군가는 활기차게 인사를 하고, 심지어 누군가는 외국의 높은 산을 뛰어서 넘는 시합 중이다. 병실에 앉아서 보니 사람들 참 건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다른 세상을 보는 것처럼.
다시 할머니 침대를 평탄하게 눕혀드렸다. 티브이가 잘 안 보이는 위치라 유튜브로 노래라도 틀어드릴까 싶어서 <할머니가 좋아하는 노래>라고 검색했다. 이미자 노래 모음집이 나왔다.
“할머니 무슨 노래 좋아하세요? 이미자 괜찮아요? “
“이미자는 그냥 그래”
“그래요? 그럼 진성 보릿고개는 어떠세요?”
“별로야. 요즘 나온 노래가 좋아”
할머니 취향이 젊은 쪽이었다.
“할머니 그럼 송가인은 어때요?”
“처음엔 좋았는데 요즘은 별로야”
“그럼 임영웅 틀어드릴까요?”
긍정적인 반응이 온다. 이거구나.
병원 와이파이에 연결한 핸드폰을 침대 발치의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유튜브에 ‘임영웅’을 검색해서 가장 위에 나온 3시간짜리 노래모음을 틀어드렸다.
‘사랑은 늘 도망가’라는 노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노래라는 것은 이럴 때 참 좋다. 감정이 요동치고 뭔가 걱정이 있을 때, 노래를 들으면 불안한 마음이 좀 누그러진다. 고요한 병실 안에 따듯한 목소리가 퍼졌다.
아침식사는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올라가 있고, 얼마 안 있으면 아침 회진을 온다. 사이사이 간호사의 방문(혈압 재기, 수액 주사 등)을 제외하면, 20~30분 남짓한 시간이 남았다. 그 빈 공간을 임영웅의 노래로 채워볼까 했던 거였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집에서 봤던 <미스터 트롯>. 이렇게 유명한데 할머니가 좋아하실 거라는 생각도 안 해봤다. 이번처럼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할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때는 할머니를 모시고 요즘 애들이 가는 카페에도 가고 싶었고, 무언가 즐거울만한 경험을 함께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음속에서 할머니를 놓아드렸다.
말에는 파동이 있어서, 듣는 이의 감정을 건드리고 에너지를 줄 수도 있다. 반대도 가능하다. 할머니는 내 상상 속의 할머니 상(그것이 이상적이든 아니든)과 어쩐지 조금 비껴 난 분이셨는데, 언제나 자신이 먼저인, 그런 말들을 하셨다. 그렇다고 이기적으로 욕심을 내어 자기 것을 마구 챙기는 사람은 아니었고, 그저 앞에서 말을 듣고 있을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고 불만이나 비교의 말을 불쑥 내뱉어버리는 스타일이셨다. 어렸을 때부터 커서까지 한동안은 할머니의 그런 말들 너머에 미처 표현하지 못한 사랑이 있을 거라고 넘겨짚었다.
나는 좋은 손녀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우리 사이에 많은 것들이 그냥 흘러갔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할머니가 집에서 혼자 계실 때 티브이를 틀어 임영웅의 노래를 들으셨을 거라는 걸, 예전 노래보다 요즘 새로 나온 트로트를 더 좋아하셨다는 걸 몰랐다. 나는 아마도 할머니를 깊게 알지 못할 것이다.
너는 무슨 노래 좋아하냐?
한창 생각에 빠져있을 때,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저요? 할머니가 모르는 가순데, 박효신이라고 발라드 가수 좋아해요.”
네가 좋아하는 노래
틀어봐
유튜브에 ‘박효신’을 검색해서 노래모음을 찾았다. 예전 노래 중에 <추억은 사랑을 닮아>를 선택했다.
‘그대가 부네요. 내 가슴 안에 그대라는 바람이
언제나 내게 그랬듯이. 내 맘 흔들어놓고. 추억이란 흔적만 남기고 달아나죠.‘
힘들 때 위로받았던 목소리가 흐른다. 박효신의 <추억은 사랑을 닮아>를 할머니랑 같이 들을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이 노래도 좋네
할머니와 이런 대화를 할 날이 올 줄도 몰랐다.
손자, 손녀가 생기면 자식 키울 때보다 그렇게 예쁘다고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와 친한 이유는 어떤 조건이나 강요 없이 손자가 좋아하는 것을 궁금해하고 들어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눈물이 나서 손수건을 꺼냈다.
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하래
천장을 바라보고 계시던 할머니가 대뜸 말씀하셨다.
“네?”하고 가까이 다가가니
“네 엄마한테 미안하다고 하래”
“누가요?”
“내가”
이건 무슨 말인가 하니, 아마도 할머니는 이모에게 들었을 말(언니가 엄마 말하는 거에 상처받아서 안 오는 거야)을 떠올리시는 것 같다. 그래서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전해줘라가 아닌, 미안하다고 하래. 아픈 순간에도 여러 생각을 하시는구나 나처럼.
오전 내내 회진을 두 번, 수액 등 간호사 선생님 대여섯 번, 식사 청소 등 사람들이 왔다 갔다. 첫 번째 회진 선생님은 젊고 눈빛이 날카롭다. 두 번째 선생님은 학교의 여유 만만 선생님 같은 분위기에, 친근하고 말씀이 많으신 스타일이셨다. 할머니가 불편한 부분이 생기면 입원실 로비의 간호사실로 가서 물어보곤 했는데, 한마디라도 형식적으로 대하지 않고 다정하게 대해준 사람들이 고마웠다.
검사 결과 한동안은 병원 입원이 필요했다. 생각보다 빨리 간병인과 연락이 됐고, 점심 무렵부터 출근하셔서 인수인계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병원 로비에 앉아 여러 가지 전달사항을 핸드폰 메모장에 정리하고, 이모와 엄마한테 보냈다. 이런,
엉덩이가 또 축축하다. 검정 바지 안 입었는데 샜다.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다. 화장실에서 수습하고 나왔다.
마음이 어지럽다.
차분하게 다독임을 받고 싶다.
그래서 아코플에 왔다
카페 사장님이(친구) 선물 받은 책을 읽어보라고 줬다. 첫 장에 자궁근종 수술을 받았던 이야기가 나왔다. 아침부터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중이라 괜히 불안한 마음이 슬며시 올라왔다.
간병인 아주머니와 할머니 단 둘이 두고 나올 때, 할머니의 불안한 눈빛을 봤다. 안 갔으면 하는, 어린이집에 등원할 때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아이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오랜만에 봤어도, 생판 모르는 남보다는 손녀랑 있는 게 마음이 편하시겠지.
아이스 라떼가 들어있는 유리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우유의 흰색과 에스프레소가 잘 섞이도록. 불안하려면 한없이 불안하다. 마음을 편히 갖고 할 수 있는 일부터 하나씩 하자.
카페엔 나와 또 다른 손님이 있었다. 사장님이 소프트 레모네이드를 만들어서 우리들에게 맛보라고 나눠주었다. 이런 말랑함 포근함. 아침부터 내내 불안하게 있다가 처음으로 만나는 다정함이었다. 아무리 작은 배려도 친절도 다정함도 다 의미가 있다. 친절하자 세상에,새삼 다짐을 했다.
평범한 모든 일들이, 바로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들이 대단한 사치처럼 느껴진다. 깨지기 쉬운 살얼음처럼 일상 위를 덮고 있다가, 어느 순간 문득 발이 푹 빠지면, 이렇게 새삼 어렵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니. 평범, 심심, 일상 이 단어들은 평가절하당하고 있지만 아주 좋은 것이다.
라떼를 한 모금 머금었다.
지금 병원에 있는 건 할머니다. 그런데도 나는 나의 어려움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런 이기심이 내 안에 있다. 변명하자면, 할머니의 어려움과 나의 어려움은 그 종류가 다른 것이지만.
더 어려운 일들도 해냈다. 지나고 나면 모든 일이 작게 느껴진다. 나에겐 이미 해결 능력이 있다. 자, 이 파도를 어떻게 넘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