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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리 Apr 15. 2021

너의 마음의 우물에서

꼭, 멈추지 않을게.

  처음엔 잘 알아채지 못했다.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문제는 '별 일 아니야'라고 생각한 데에 있었다. 나에게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문제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너'에게도 그럴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정작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너'의 감정은 염두에 없었다. '문제 해결'을 향해 가는 길이니까, 그 지점에만 도달하면 모든 것이 완벽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터널을 통과하고 있던 '' 온몸으로 수치심을 견디고 있었다. 처음엔 수치라는 감정이 정확한 표현인지조차   없었을게다. 시간이 지나, 같은 결과가 반복될수록 피로가 쌓였을 거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쌓이다 문득 '' 앞에 놓인 커다란 수치심을 발견했으리라. '이것밖에 안된다니.'라는 감정에 휩싸여 같은 사실을 꾸역꾸역 받아들여야만 했으리라. 타인과 함께 바라보는 그놈의 객관적인 것들 앞에 숨고 싶은 순간어디   뿐이었을까.


  취업을 준비하는 너에게, 시험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너에게, 유학을 준비하는 너에게, 임신을 기다리는 너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너에게. '너'만큼 실패감을 받아들이지 않은 채, '결과'까지 갈 수 있을 거라 마음에 없는 이야기로 채찍질하였다. 나의 이야기는 '너의 성공'을 바라는 듯 보였지만, 이야기 속에 '너의 마음'은 없었다. 좋은 결과를 핑계로 '방법'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닌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잘 포장된 이야기 때문에 그 속에 아파하고 있을 '너'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나의 관심은 '너의 마음'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나의 전제는 '좋은 결과를 갖는 것'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 실패하면 '방법'을 고치면 되는 거라고 쉽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터널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너의 처절한 마음은 돌아보지 않았다. 반복되는 실패로 아파하는 너에게, 단 한 번도 '마음'을 물어보지 않았다. '좋은 결과'라는 포장지 속에 '방법'과 '노력'이라는 가시를 계속해서 찔러대고 있었다. 결국 그 과정까지 '너의 책임'으로 몰아가며 끝없는 수치심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둔 것이다.


  '수치'를 느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생각했었다. 수치를 느끼는 지점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니까. 나는 별일이 아닌 일에 '너'는 엄청난 일이 될 수 있으니까. '너'와 '나' 사이에 벌어진 틈만큼, 살아온 세월만큼, '다름'을 인정하는 만큼,  그 지점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치'라는 감정 또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너의 '마음'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너의 마음'이라는 우물 안에 수치를 길어 올려 보듬어 줄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나는 깊고 깊은 우물 속 차갑게 굳어진 너의 수치가 올라올 때까지 도르래질을 멈추지 않아야겠다. 그 누구보다 묵묵하게 터널을 지나오는 너의 지친 마음이 잠시나마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일 수 있도록 말이다. 너를 사랑한다며 내밀었던 번드르르한 말 뿐인 충고는 집어치워야겠다. 그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하더라도, 며칠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레질을 멈추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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