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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an 24. 2021

“너는 친구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아.”

D와의 깔루아 밀크

“너는 친구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아.”



D는 칵테일 안의 막대를 휘저으며 멍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내가? 왜?”
“오늘도 말야. 내가 연락했을 때 넌 나오면 안 됐어.”
“괜찮아. 뭐 딱히 할 일이 있던 것도 아니고.”
“난 너한테 늦은 밥을 먹자고 연락한 건데, 먼저 밥을 먹었으면서 날 또 만나러 오면 어쩌냐. ‘이미 저녁을 먹어서 못 나가겠다. 다음에 보자.’ 이래야지. 나는 네게 이 정도의 헌신을 바라는 게 아냐. 네가 더는 뭘 못 먹으니까, 나만 괜히 빈속에 칵테일 마시잖아.”


“그래도 많이 나아진 거야. 예전엔 이런 식이 될까 봐 먹은걸 몰래 다 토하고 다시 밥을 먹으러 나가기도 했어.”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칵테일을 홀짝였다.
“그게 문제라는 거야. 네가 토하고 나오면 누가 알아준대? 너 혼자 잘해준 일들을 마음속에 쌓아두다 그 사람에게 일방적인 기대를 하게 돼버리고, 그게 오히려 관계를 위태롭게 할 뿐이지.

“너 혼자 노력한 걸 누가 알아준대? 일방적인 기대만 쌓여서 관계를 위태롭게 하잖아.” (사진: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나한테 친구라는 존재는 너무 소중하니까. 조금이라도 더 잘 해주고 잘 보이려 그러는 거지.”
“인간관계에 너무 연연하지 마. 관계는 노력으로 유지할 수 없어. 잘 맞고 편한 사람끼리는 뭘 해도 다시 보는 거고, 아닌 사람끼리는 맞춰보려 해도 결국 틀어지는 거고.

관계의 성패는 노력이 좌우하는 게 아니라니, 내 가치관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였다. 나는 친구 관계에 대한 내 생각을 D에게 말해주고 싶어졌다.


“난 친구가 많을 필요 없어. 근데 몇 안 되는 친구에겐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사람이라 생각되는 친구라면 뭐든 다 바칠 수 있어.”
“그런 과도한 기대와 선의는 그 누구라도 널 질리게 할걸. 부담스럽다고. 친구는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니라니까? 함께 하면 좋은 거고, 아닐 땐 알아서 잘 살 테고. 쿨하게 생각해야지. ‘외로움’을 어떻게 정의하는 줄 알아? ‘소중한 사람의 부재에 따른 공포’야. ‘소중한 사람’이 적으면 ‘외로움’을 느낄 일도 적다고. 친구들 덕에 네가 즐거워야지, 반대로 친구들에게 너의 존재 가치를 투영하려고 하면 안 되는 거야.


D는 내 몫까지 칵테일을 계산하고 가게를 나오며, 생각에 잠겨 침묵하고 있던 내게 몇 마디 건넸다.
“당분간 네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친구들을 밀어내고 너만의 공간을 만들어봐. 내 연락을 적당히 거절할 수 있다 생각되면, 그때 내게 다시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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