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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기이택생 Jan 11. 2021

“우리 춤이나 출까?”

C와의 프라프치노


“여기 음악 좋다. 햇살도 마침 적당하고.”



C의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애초에 화창한 주말 대낮에 남자 둘이 카페에 오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았다.

C는 그런 나를 마주 보며 새하얀 눈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카페를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학교에서 바쁘게 지내다 보면, ‘이 음악 좋네, 오늘 하늘이 예쁘네, 밤공기 속 풀 내음이 상쾌하네.’ 같은 생각을 할 작은 여유조차 없어지는 게 참 아쉽지 않아?
“확실히 학교 울타리만 벗어나도 마음이 여유로워지긴 하지.”

"그래서 나는 주말이면 아기자기한 카페를 찾아다니며 주중에 잠들었던 감수성을 깨우려 노력해."
"얼어 죽을 감수성은 무슨..."

C의 말에 토를 달긴 했지만, 나 역시도 흘깃 카페를 둘러보았다. 단출한 카페 인테리어가 주는 투박함이 조금은 포근하게 느껴졌다.

내가 카페를 둘러보는 동안 C는 진동벨을 완성된 음료로 바꿔왔다. 프라푸치노를 한 모금 마신 C는 어제 본 영화 이야기를 도란도란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제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봤는데, 별 의미 없는 장면에 괜스레 마음이 일렁이더라고.”
“무슨 장면이었는데?”
“주인공이 카페 마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바닥을 청소하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는 거야. 그 노래에 기분이 좋아져서 밀대 자루를 잡고 빙그르르 춤을 추면서 바닥을 닦아내는 장면이었어. 
별거 아닌 그 모습이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더라고.”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좋아하는 노래에 기분이 좋아져서, 빙그르르 춤을 추며 청소하는 모습이 멋지더라.



“낭만적이네.”
“그냥 ‘영화다운 것’이지. 근데 생각해보면 우리도 늘 ‘행복은 별거 아니다, 가까이에 있다.’ 다짐하잖아? 그 다짐만 잘 지켜도 충분히 영화처럼 살 수 있을텐데. 일에 치이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서 그 다짐을 잊고 마는 것뿐이지.
“그것도 너무 ‘영화’ 같은 말인데?”
“그래서 너한테 뜬금없이 카페에 가자고 연락했어. 감수성이 넘치던 네가 요즘 많이 차가워진 것 같아서. 마침 노래도 좋으니, 우리 춤이나 출까?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말야.”
“여기서? 지금?”
나는 마시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으며 그저 웃었다.


C는 오랜만에 웃음 짓는 내 모습을 한참이나 말없이 쳐다보다가, 프라푸치노 휘핑크림 위에 얹혀있던 크래커를 집어 내 입에 넣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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