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HIGH-END 04화

Chapter 0. 명품 세일즈 매니저(3)

<하이엔드 3화>

by 농도C

이렇게 컴플레인 하나를 처리하고 대팔은 바깥이 아닌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미 직원들도 모두 사무실에 돌아와 있었다. 탄산수를 벌컥벌컥 마시고는 잠시 앉아서 숨을 고른다.

그러다가 대팔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나간다. 매장에 다녀왔어야 하는데 그걸 깜빡했던 것이다. 상담실에 내려가기 전 에르누아 매장에 들러서 점장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었다. 어찌되었든 컴플레인이 처리 되었으니 에르누아 점장과도 이야기를 하면서 추속 조치를 논의해야할 순서였다.


“어서오세요. 에르누아입니다. 찾으시는 분 있으세요?”

“백화점 명품 담당자입니다. 점장님 계세요?”

대팔은 짧게 한숨을 쉰 다음 말을 이어나갔고 응대를 하고 있지 않은 직원이 없는지 살피다가, 모든 직원이 응대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드 직원에게 대답을 했다. 새로운 신입 가드 직원이 오면 으레 한 번씩 백화점 직원인지, 고객인지 구분을 못할 때가 한 번씩 있다. 처음에는 이러한 가드의 응대도 당황스러웠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이 지점에서 명품 담당을 한 지도 1년이 넘었다고 최소한 매장의 직원들은 저 사람이 백화점 담당자구나 정도는 안다. 대팔은 ‘이 가드는 언제쯤 나를 백화점 담당자로 알아볼까’ 라고 생각하며 에르누아 점장을 기다렸다.

“담당님 오셨네요. 짧게 끝난거 보니 그래도 잘 해결이 된거죠?”

“네, 다행히 더 윗사람을 요구하거나 다른 쪽으로 문제를 끌고 가지는 않네요. 혹시 매장에 와서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 오늘은 직원들에게도 방금 사례 다시 전달해주시고 혹시나 고객이 매장에 오게 되면 연락 주세요.”

“네, 그럴게요 담당님.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은요, 제 일인데요 뭐.”

짧은 대화를 주고 받은 다음 대팔은 에르누아 매장을 나왔다. 처음 이 점포에 왔을 때는 매장 안에 쑥 들어가지도 못했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성큼성큼 매장에 들어가 카운터로 가서 오늘 점장님은 출근했는지, 안계시면 부점장들이나 슈퍼바이저들은 출근했는지 하면서 나름 여유를 부릴 정도가 되었다.


대팔은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오전에 하다가 마무리 짓지 못한 업무를 하려고 자리에 앉았다. 오늘 점심 약속이 별도로 있어서 다녀온 이준성 팀장도 자리에 있다가 사무실에 들어오는 대팔을 발견하고는 한 마디 건넨다.

“이 과장, 상담실 다녀왔다며? 고생했어. 별 일은 아니고?”

“네, 다행히 고객님이 반 납득 반 포기 하시고 가셨는데 하루 이틀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응 그래. 고생했네.”

이준성 팀장은 여전히 담담했다. 마치 이 모든 일은 하루 열두 번 반복되는 시스템의 작동처럼 느껴진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백화점의 1층부터 3층까지는 각종 명품과 시계, 쥬얼리, 화장품이 입점해있다. 그 상품군을 이끄는 팀장이 바로 대팔의 눈 앞에 있는 이준성 팀장이었고, 대팔은 그 중 1층과 2층에 있는 명품 브랜드의 총괄 책임자였다.


대팔이 자리에 앉자마자 옆 자리에 있던 규민이 다가온다.

“과장님 과장님, 이번엔 또 무슨 일이었어요? 요즘 과장님 컴플 복 터지신거 아니예요?”

“응? 아, 그치. 나 내일 또 뭐 연락 드려야 되는거 있었지? 명품은 뭐 컴플만 처리 잘 해줘도 절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거 같다 진짜.”

“저는 과장님처럼은 못할 거 같아요. 진짜 명품쪽은 별의 별 사람들이 다 와서 컴플레인을 걸잖아요. 진짜 과장님은 그러고 보면 문제 해결의 신이신 것 같아요. 매번 과장님 쪽에서 컴플레인이 생겼을 때 그 일이 오래 가거나 윗사람에게 가거나 그런 일을 못봤었으니까요.”

실제로 그랬다. 컴플레인의 특성상 명품 상품군은 VIP들의 컴플레인 빈도도 높았고, 그들의 요구사항은 하나같이 “실무자 말고! 백화점 점장 나오라 그래!” 였다. 정말 드라마를 한 두 번 보신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백화점 점장이 “안녕하세요. 백화점 점장입니다. 저를 찾으셨나요?” 라고 할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대팔의 백화점 재직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백화점 점장님이 오셔서 컴플레인을 처리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런 분위기인지 전혀 몰랐었는데, 그냥 백화점이란 공간은 나에게 환상이 가득한 공간이었는데 말이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지금 나에게 백화점이 여전히 환상적인 공간이냐고 물어본다면, 그 환상이 여지없이 깨진 공간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 환상을 안고 입사한 어린 청년의 환상이 바사삭 깨져버린 공간이지 여기는.”

순간 대팔의 두 눈이 조금은 슬퍼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대팔은 오늘도, 환상을 연기하며 일하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