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HIGH-END 03화

Chapter 0. 명품 세일즈 매니저(2)

<하이엔드 2화>

by 농도C


고객 상담실, 백화점 영업 관리자라면 사실 들어가고 싶지 않은 곳 가운데 하나다. 고객 상담실은 고객의 분노가 가장 집약된 공간이자, 영업 관리자에겐 퇴로가 없는 전장과도 같은 곳이다. 이 곳에 있는 고객들은 화가 나 있거나, 억울하거나, 아니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백화점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해보겠다는 등 다양한 심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아무리 멘탈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곳에서 고객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공감을 하고 해결을 해드리고 나면 진이 빠져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 공간 앞에 대팔이 서 있는 것이다.


대팔은 상담실에 들어가기 전, 옷매무새를 다시 한 번 점검한다. 밖에 있다가 왔더라도 고객 앞에서는 최대한 깔끔하게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대팔의 지론이다. 노크를 두 번 하고, 들어가서 고객님이 안에 계시는 것을 확인하고는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고객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이야기를 한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해하는 척 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고객은 의자에 등을 붙이지 않고,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인 채 대팔을 노려봤다. 마치 공격의 기회를 노리는 표정이었다


“그렇죠 고객님, 얼마나 기분이 나쁘셨겠어요. 사실 거의 사용하지 않은 제품인데, 충분히 고객님 입장에서는 교환이나 환불을 하고 싶으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말이죠..”

이제부터가 진짜 이야기다. 고객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는 고객에게 이 이야기를 전달해야만 한다.

“하지만 고객님이 구매하신 매장인 헤르누아는 백화점에서 교환, 환불에 대한 정책을 강제하거나 적극적으로 요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헤르누아는 백화점과 임대 계약을 맺은 상황이라서 저희가 해당 공간 안에서 판매한 제품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이 헤르누아 측에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희가 헤르누아 쪽에 교환을 요청하는 것은 다시 한 번 시도를 해보겠지만 저희가 강제를 하거나 그러기가..”

이렇게 말을 이어가던 도중 고객이 말을 끊는다.

“그래서, 안된다는 거예요?”

고객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두 가지 상황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더 윗사람을 부르겠다거나, 혹은 이쯤해서 그만두겠다거나.

대팔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면서 그 찰나의 순간, 어떻게 대답을 해야 이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을지 생각을 해본다. 고객의 머리, 외모, 말투, 그리고 고객이 교환 및 환불을 요구하는 이 상품의 가격까지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정보들을 머릿속에서 조합을 하고는 이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네, 고객님 죄송합니다. 지금으로서는 저희 팀장님이 오신다고 하더라도 저희가 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브랜드와 같은 대답이 될 것 같습니다.”

고객의 동공이 흔들리는게 보인다. 순간적으로 윗사람을 부르려고 했다는 것처럼 보였다. 대팔은 만약 자기 선에서 해결이 어렵다고 했더라면 나보다 윗사람을 불러서 같은 식으로 또 한 번 잡도리를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팔은 순간적으로 말도 하지 않은 팀장의 의견까지 묶어서 고객에게 의견을 전달을 한 것이다.

“아우, 짜증나. 명품 브랜드라서 산건데, 이건 뭐 도와주는게 1도 없잖아! 그럼 뭐 법적으로 신고를 하거나 그럴 방법은 없어요? 나는 너무 짜증이 나서 이거 그냥은 못넘어가요!”

고객은 매우 짜증을 내면서 거칠게 몇 마디를 더 내뱉고는, 가지고 온 상품을 다시 주섬주섬 쇼핑백에 넣고 돌아선다. 그리고는 상담실을 나서면서 한 마디를 한다. “소비자 보호원인지 상담원 뭔지, 거기에 신고할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고객은 위협하듯이 소리를 치고는, 그대로 몸을 들려 상담실을 나갔다.


고객이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하고서야 대팔은 크게 한숨을 쉬면서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감지했다. 그리고는 짧게 한 마디를 더한다. “소비자 보호원에 전화 하시면 비슷한 이야기를 또 들으실텐데, 걱정 되네요. 여하튼 고생하셨습니다.”

“네, 과장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전에 전화 통화도 하시고, 오후에 결국 상담실도 오시고, 오늘 저희가 과장님께 요청을 많이 드리네요.”

“아닙니다. 결국 명품 브랜드의 일은 저희까지 넘어올 가능성이 높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대팔은 반쯤은 포기했다는 듯이 이야기를 했다.

“사실 그렇기는 하죠. 대부분의 고객님들이 저희 이야기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시거든요. 또 고객님들이 VIP 고객님들이시기도 해서, 백화점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꼭 듣고 싶어 하세요.

상담실의 직원들도 결국은 사람이다. 본인들이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으니 나를 불렀으리라.

“여튼 오늘은 더 이상 상담실에 안 오고 싶네요!”

“네! 저희 또한 오늘은 더 이상 과장님을 안뵙고 싶네요!”

서로가 서로에게 덕담 같지도 않은 덕담을 건넨다.


그렇다. 상담실의 직원들과 영업담당자는 가급적 만나는 일이 없어야 서로에게 좋은 것이다. 영업담당자가 상담실에 내려왔다는 것은 그만큼 컴플레인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미 상담실의 직원들은 이 고객의 컴플레인을 처리하기 위해 한바탕을 했다는 이야기도 되니까. 어쨌든 상담실과 럭셔리팀은 이러나 저러나 협조도가 중요한 부서였고, 적어도 지금까지는 협조를 잘 해오고 있는 편이었다.

대팔은 고객 상담실의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이런 날이면, 문제는 끝났지만 하루 종일 내 안에 뭔가 해결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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