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팔의 어린 시절, 백화점은 환상의 공간이었다.
"대팔아. 무슨 일 있냐? 오늘따라 왜 이렇게 한숨이냐."
"어? 내가 그랬어? 매번 있는 컴플레인 하나 처리하고 온 건데 오늘따라 내가 청승이다. 이상하네."
대팔은 퇴근을 하고 30년 지기 친구인 주환과 한 잔 하는 중이었다. 대팔과 주환은 중/고등학교 동창 사이로, 분기에 한 번 정도는 만나서 술을 기울이는 사이였다. 1년에 한 두 번만 만나도 굉장히 친한 사이라고 하는 요즘같은 시기에 대팔이 마음을 터넣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주환이 봤을 때 평상시의 대팔은 감정 기복이 크지 않고, 본인의 이야기를 즐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대팔의 뚜렷해보이는 이목구비에 테 안경을 얹으면 팀 동료들이 대팔을 보면서 "신대팔 판사님" 소리를 하곤 했다. 외모만 봤을 때 신대팔은 분명 인정이 많고 친근한 느낌보다는 차가우면서 이성적인 느낌의 소유자였다. 오죽했으면 이름이라도 친근하게 보이려고 대팔이라고 이름을 지었냐고 그랬을까.
"뭔데, 너 업무로 짜증을 내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오늘은 뭔가 우울해 보인다."
"그랬어? 나 어렸을 때 생각이 좀 났나보다. 나 어렸을 때, 너한테 막 주말에 백화점 다녀온 이야기할 때 되게 신나하지 않았었어?"
"그랬지. 너는 시험이 끝나는 날을 기다렸던 게, 애들하고 놀려고 그런 것도 있지만 시험 잘 보면 부모님이 백화점 데려가서 옷 사주시고 했던 거 때문이었잖아. 하여간 너 고등학교때 남달랐어. 다른 애들 백화점 재밌냐고 물어보고 그럴 때 신대팔 너는 참 신나가지고 백화점 다녀온 썰을 그렇게 이야기하곤 했지. 하도 이야기를 하니까 애들이 나중에 하품하고 졸려하고 그러면 얘들이 패션을 모른다고 쯧쯧거리고."
"맞아, 나 그랬어. 큭큭큭. 오늘 컴플레인 처리하고 후배랑 이야기를 하는데 문득 그때 내가 떠오르더라고. 나 그때는 참 백화점에 오고 싶어하고 그랬는데. 꼭 시험을 잘 봐야 백화점에 가서 뭘 사주신다고 했단 말이지. 부모님도 그러고 보면 참 전략적이셨어. 내가 뭘 걸어야 시험을 잘 볼 줄 아셨던건가?"
"그럴지도?"
주환은 대꾸하면서 소주잔을 부딪히고는 입속에 털어넣었다. 오늘따라 대팔이 어릴적 이야기를 참 많이 하는구나 싶으면서도 얘가 무슨 일이 있기는 있구나 라는 생각에 오늘 하루만큼은 대팔이와 함께 추억 여행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주환이었다.
"어머~! 고객님 오랜만에 아드님 데리고 나오셨네요."
"네네. 아들이 기말고사 잘 보면 옷 한 벌 사주겠다고 했더니, 성적이 좀 올랐네요! 그래서 옷 한 벌 사주려고 데리고 왔어요."
대팔의 부모님은 중,고등학교 때 대팔과 종종 시험 성적으로 가지고 선물을 사주네 마네 하는 내기(?)를 하시곤 했다. 사실 말이 좋아 내기였지, 대팔의 부모님이 대팔을 공부하게 하려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셨듯이 대팔도 중,고등학교 때 엉덩이를 착 붙이고 공부를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패션 잡지를 즐겨보거나, 인터넷을 통해 브랜드의 패션쇼를 검색해보거나 트렌드를 좇는데 더욱 많은 시간을 들였던 대팔이었다. 그래서 대팔의 부모님은 부득불 종종 옷을 사준다는 명분 하에 시험 성적을 올릴 것을 주문하시곤 했다.
사실 백화점을 혼자서도 가려면 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대팔이 백화점에서 할 수 있는게 딱히 없었다. 고등학생이 무슨 돈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궁금한 것은 많았던 대팔은 상대적으로 한가해 보이는 브랜드 매장을 가면 그 곳의 직원을 붙잡고 30분이든 1시간이든 옷도 입어보고, 이것저것 비교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겼다. 그렇게 두 세 벌의 최종 후보를 정하면 나중에 부모님과 함께 왔을 때 그 옷들을 구매하곤 했었다. 직원들도 한 두 번 대팔을 그렇게 만나다보니, 구매를 하기는 한다는 것을 알고는 대팔을 대할 때 마냥 어린아이처럼 대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어린 대팔의 기억 속에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평상시 패션을 글로만 보다가 실제로 눈으로 보고 입어보고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좋았던 기억들이 켜켜이 겹쳐져갈수록 대팔에게는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한없이 좋아보였다.
시험이 끝나면 부모님과 함께 가서 외식도 하고 내가 평소에 봐둔 옷도 구매할 수 있는 곳, 내 환상을 채워줬던 공간, 어린 시절의 대팔에게 백화점은 그렇게 대팔을 기분좋게 만들어주던 공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