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일은 많지 않은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번아웃에서는 벗어나고 있었지만, 새로운 위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by 농도C



*BORE OUT(보어아웃)*이라는 용어는 나에게 생소했다.

지금까지 번아웃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고, 유튜브를 찾아보거나 책을 사서 읽어보며 극복하려 애써왔다.
나는 2021년 이후부터 스스로 번아웃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속적으로 ‘인정’을 갈구하는 사람이었다.
그 인정이 성과로 이어지고, 성과가 다시 나를 인정해줄 때 비로소 자발적인 에너지가 생겼다.
대부분의 직장인들도 그렇겠지만, 결국 직장 생활에서의 성취감이라는 건 연봉 인상과 승진이라는 형태로 다가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2021년 말, 나는 승진 심사에서 탈락했다.
잘 나올 것이라 기대했던 고과마저 밀렸고, 그 이유를 아무리 찾아보아도 명확한 해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내 열정은 빠르게 시들어갔다.

여기까지 들으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21년에 승진 한 번 미끄러졌으면 22년에 잘해서 다시 도전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면 참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21년에 인사제도가 나에게 불리하게 바뀐 상황이었고, 나는 다시 최소 2년 이상을 준비해야만 승진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같은 시기 지방 발령까지 받으며, 전혀 새로운 공간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야 했다.

다행히 사람들은 참 좋았다.
팀장님부터 팀원들까지 모두 배려심 깊고 따뜻했고, 지금까지도 안부를 주고받을 만큼 좋은 인연이었다.

그렇지만 직장은 사람만 좋아선 버틸 수 없는 공간이었다.
적절한 업무 강도, 기획할 수 있는 여지, 파트너사들과의 상호작용… 그런 것들이 맞물려야 일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은 그러지 못했다.

일주일 중 2~3일 정도만 집중하면 대부분의 업무가 마무리되었고,
나머지 날들은 딱히 할 일이 없었다.
매장에서도 연락이 거의 오지 않았고, 출근해도 너무나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새롭게 무언가를 기획하고 싶었다.
서울에 있을 때 인연이 닿았던 브랜드들과 접촉하고, 쉬는 날마다 서울로 올라가 제안서를 들이밀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아, 그곳이 지방이어서요… 직원들이 잘 안 내려가려고 해요.”
“코로나 때문에 지방 출장은 아직 어렵습니다.”


차라리 ‘정중한 거절’의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제안에 대한 답변이 없는 사례가 부지기수였고, 일주일이 지나도, 이주일이 지나도 조용했다.

루틴한 업무가 많지 않았기에, 새로운 기획으로 활기를 찾으려 했지만
그 모든 시도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6개월쯤 지나자, 나는 서서히 제풀에 지쳐버렸다.

결국 마음을 접고 이렇게 생각하게 됐다.


“그냥 주어진 일이나 잘하자.
더 이상 내 아이디어가 받아들여지길 기대하진 말자.”


보어아웃‘일이 너무 많아 타버린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일이 적고, 새로운 시도가 계속해서 무시당하는 상황에서 생기는 지속적인 권태감과 무기력이다.

어쩌면 나는 이 시기부터 번아웃에서 서서히 회복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회복되는 줄 알았던 그 시간,
나는 조용히 보어아웃이라는 또 다른 탈진의 늪에 빠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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