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나는 왜 무기력한가

Bore-out, 이름 붙일 수 있는 무기력

by 농도C
ChatGPT Image 2025년 4월 18일 오후 02_50_41.png


이른 아침,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지만 지하철엔 이미 여름이 온 듯,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 안, 숨이 턱턱 막히고 땀이 흐른다.

간혹 운이 좋으면 자리에 앉아서 갈 수도 있지만, 운이 좋지 않으면 도착 지점까지 한시간이 넘는 거리를 꼼짝없이 서서 가야 한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을 시작한 것도 어느덧 1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이 생활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한 발을 내딛기가 참 벅차다.


명품 관련 업무를 하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았다. 평소 명품에 큰 관심도 없었고, 결국 브랜드의 뒤치닥거리를 중점적으로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가 된 셈이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스스로 업무를 찾아서 제안을 해도 명품 브랜드의 스케쥴과 계획상 진행이 어렵다는 말이 되풀이되기 시작했고, 그 브랜드들은 자신들이 계획한 프로모션에 대한 실무 지원만 충실히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업무를 찾고, 기획해보는 업무를 하게 된 대신 그 공간을 채워준 것은 잡무처리, 현장 서포트, 매달 돌아가는 루틴한 업무의 해결이 되었다. 분명히 일이 없는 것은 아닌데, 몇 시간 바짝 일을 하면 그 업무를 처리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게 되었다. 심지어 1주일 중에 2~3일을 바짝 일하면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명품에 대해서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일까? 라고 생각하고 각 브랜드에 대해 공부를 해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브랜드씩 이 브랜드의 주요 품목, 역사, 현재의 트렌드 등을 매장에서 물어도 보고, 스스로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명품에 대해 애초에 큰 관심이 없었다보니 몰랐던 상품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재미가 생기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여전히 왜 사람들이 몇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이 상품들을 왜 구매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냥 러닝용품을 사는 나와 다르지 않겠거니,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다.


지루했다. 몇 년 전에는 일이 너무 많아서, 정말 아침 출근할 때부터 최근할 때까지 전화기가 쉴새 없이 울리고, 미팅을 30분 단위로 잡고, 그렇게 죽어라 업무를 처리해도 업무를 다 쳐낼 수 없어서 탈진한 상태였다면, 그때는 탈진했고, 지금은 탈의욕 상태다. 일이 많아서 다 쳐낼 수 없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얼마 안되는 그 일들 자체에 대해 잘 해결해나가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결국 업무를 10분을 하다가도 다른 일을 하곤 했다. 집중력이 원래도 좋지 않은 편이었지만, 요즘에는 더더욱 집중력 부족을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이런 지금의 내 상황이 BORE OUT(보어아웃) 이라고 했다.

지금의 나는 일을 하고는 있지만, 업무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그저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오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은 점점 익숙해져만 갔다.


#보어아웃 #번아웃 #직장인의하루 #감정에세이 #고민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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