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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정 Mar 25. 2021

8주. 줄리 & 줄리아(2009)

2019. 08. 24. by 만정

오늘은 우리, 즉 당신과 나처럼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는 두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물론 막상 영화를 보면 ‘글쓰기 프로젝트’에 관한 영화라는 주장이 합당한 지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이 영화를 그렇게 읽기도 하며, 바로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신이 ‘일요일엔 영화를’ 기획을 제안했을 때 내가 처음 떠올린 영화가 ‘줄리 & 줄리아’였던 것은.


‘줄리 & 줄리아’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 ‘유브 갓 메일(1998)’ 등 로맨틱 코미디 명작을 쓰거나 감독했던 노라 애프런이 감독한 마지막 영화다. 장르로 따지자면 역시 로맨틱 코미디라고도 할 수 있을 이 영화는, 제목에 '&'로 이어진 두 여성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다.


2002, 줄리(에이미 아담스 ) 고고학자 남편, 고양이와 함께 뉴욕에 살고 있다. 그녀는 작가를 꿈꾸었지만 어쩌다 보니 공무원이 되어 있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있지만, 공무원으로서의 삶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줄리는 일상을 견디고 삶의 의미를 잃지 않는 방법으로 요리를 택하고,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사 줄리아 차일드의  <프랑스 요리 예술 마스터하기>  524 요리를 365 동안 완주하는 과정을 블로깅 기로 한다.  블로그는 크게 주목받아 2005 책으로 출간되고 영화화되었다.  


다른 주인공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 역)에 대해 영화는 이렇게 소개한다. “통조림과 냉동식품밖에 없던 미국에 프랑스 요리를 가르친 여성”. 때는 1949년, 줄리아는 외교관인 남편 폴(스탠리 투치 역)의 근무지 파리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미국에서 공무원이었던 줄리아는 자신의 주특기인 미식으로부터 곧 요리에 대한 열정을 발견하고, 르 코르동 블루에서 학위를 취득한다. 영어로 된 프랑스 요리책-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다-을 집필 중이던 두 프랑스 여성을 알게 된 줄리아 차일드는 이 책의 공동저자로 합류하게 되고, 요리법 검증과 저술에 10여 년을 "미친 암소들"처럼 전념한 끝에 마침내 책 <프랑스 요리 예술 마스터하기>를 출간해낸다. 영화는 두 여성의 프로젝트, 즉 줄리아 차일드의 저술과 그 결과물(요리책)을 현실화(요리)하면서 이뤄지는 또 다른 저술을 평행이론처럼 병치시키며 전개된다.


그러니 ‘줄리 & 줄리아’는 자연히 요리하는 두 여성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영화를 글쓰기에 대한 영화로 본 것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이다. 먼저 줄리의 경우, 첫째, 글쓰기를 사랑하나 둘째, 생업으로 다른 일을 하는 여성이 셋째, 기한을 두고 넷째, 무엇인가에 대해 다섯째, 쓰는 프로젝트를 한다. 여기서 줄리의 이야기는 나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와 포개어진다. 줄리아 차일드의 경우에도 영화가 집중하는 서사는 그녀가 레시피를 개발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레시피들을 책으로 쓰고 출판하는 과정이다. 책을 쓰고 출판하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런 점을 눈여겨보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 줄리아 차일드가 마침내 물질로서 출발된 자기 책을 안고 있는 장면 아니던가. 그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란.


이렇게 이 영화의 큰 줄기에 음식과 음식에 대해 '쓰는' 사람이 있다면(물론 내가 읽은 방식이다), 작은 줄기에는 그 사람과 함께 사는 사람이 있다. 가정집의 주방(생계를 위한 직업적 공간인 레스토랑의 주방이 아니다)을 둘러싼 가정생활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 영역이다(물론 내가 읽은 방식이다). 이 영화가 노라 애프런의 다른 영화들만큼 유명하지도 않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치밀한 이야기 전개가 돋보이는 영화라고 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따뜻하고 부드럽고 사랑스러운데, 그건 바로 아름다운 프랑스 요리들을 둘러싼 가정생활에 대한 일말의 진실-어쩌면 가정생활에 대한 나의 판타지- 때문일 것이다.


대단한 성공도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줄리아는 8년에 거쳐 완성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지만 거절당한다. 이때 남편 폴이 줄리아를 위로하는 장면은 줄리아의 말처럼 너무도 다정해서,  장면을 생각하면 녹인 황금이 마음에 스며드는 것만 같다. 마침내 출판이 결정되었을   사람이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는 모습은 늘 나를 흐뭇하게 한다. 한편, 줄리의 경우는 줄리아처럼 긍정적이고 대범하며 관대하고 유쾌하기만  캐릭터가 아니다. 주의력결핍에 자기중심적인 데다 감정 기복도 있는데-이런 성격이 묘사될  마치 나를 보는  같아 얼마나 웃는지 모른다-, 경주마처럼 시선이 전방에만 고정된  여성을, 그러나 남편은 대체로 "성자"처럼 지켜봐 준다. 이렇게 그녀들을 지지해주는 조연으로서의 다정한 남편들은, 동반자라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들은 요리를 해주는 것도, 글을 써주는 것도 아니지만, 곁에서 조용히 배경이 되어주 것만으로도 어쩌면 삶을 견디기 쉽게 해주는 사람들 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조력자로서 주변의 다른 여성들을 언급하지 않을  없다. 특히 줄리아에게는 오랫동안 오직 편지로만 우정을 쌓아온 에이브스라는 친구가 있다. 요리책의  공동저자가 직접적으로 중요한 관계자들임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펜팔 친구는 마치 줄리아 저자 에이전트처럼 출판사들에 책을 소개한다. 무엇보다 “ 책은 천재적인 작품이라며 책의 가치를 이해해주고, 줄리아가  책의 가치에 대해 낙담하는 순간에도 확신을 가질  있도록 응원한다. 여성들의 연대 같은 말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그들의 우정은 영화 속에서 조용히 빛난다.


어떤 해에는  영화를 TV처럼 틀어두어서 다음에 나올 대사를   있을 만큼 많이 봤다. 좋아하는 이유를  쓰려면 이런 글을  번은  써야   같지만, 연기와 음악에 대해서는 짧게나마 언급하고 싶다.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언제나 놀라움을 선사하지만, 줄리아 차일드라는 실존인물의 독특한 개성(?) 표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혀를 내두르게 된다. 에이미 아담스의 위력은 이때 실감하게 된다. 물론  사람의 투샷은   번도 영화에 등장하지 않지만,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와 기운은 메릴 스트립 같은 거장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에이미 아담스의 사랑스러움이 촬영하는 사람을 설득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은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2017)' 결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담당했는데, 가정적이고도 사랑스러운 스코어들이 캐릭터들과 영화를  감싸 안아준다. 마지막으로, 결혼식 피로연 장면과 영화 후반부에 흐르는 Margaret Whiting 'Time After Time' 결혼이라는, 내게 실현되지 않은 어떤 삶을 상상하게 한다. 그것은  삶이 안온하고 따뜻한 것일지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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