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육아용품 사념 : 1도의 존재감
분류: 분유 포트
핵심 기능: 물을 끓였다 식혀주는 용도의 포트. 원하는 온도로 물을 따듯하게 유지할 수 있다.
보르르는 디자인이 예쁘다. 그동안 속이 다 가려진 커피포트만 써본 사람으로서 이렇게 투명하고 통통한 디자인이 물을 끓일 때 얼마나 예쁜지 몰랐다. 물을 넣고 끓이면 유리 포트 안에 공기방울이 보글보글 차오른다. 아이도 예쁜지 보르르가 끓고 있을 때는 휙휙 돌리던 고개를 가만히 고정해 그 공기방울들을 쳐다본다. 가끔은 아이가 커서 원하는 것을 만질 수 있게 되었을 때 예쁜 공기방울들을 보고 만져보려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보르르의 가장 큰 장점은 숫자로 물의 온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분유를 탈 때 물의 추천 온도는 43도다. 마셔보면 그 온도는 절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야말로 '미지근'함을 뜻하는 온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미지근'하게 물을 식혀서 아이에게 먹이라는 지침을 보며 이해가 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분유포트가 없을 때는 물을 손등에 떨어뜨리며 미진근한지 확인했던 육아 시절은 원시에 가까운 수준이다. 육아용품은 대부분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좀더 쉽게 만들어주거나 시간을 단축해주는 일을 하는데, 보르르는 인간이 할 수 없는, '미지근함'이라는 애매한 감촉을 '43도'라는 정확한 수치로 보여주는 일을 수행한다. 때문에 보르르(혹은 분유포트)는 수 많은 육아용품 중 가장 유용하고 필요한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보르르를 쓰며 가장 신기했던 사실은 1도가 1도가 얼마나 따듯한지 알려준다는 점이다. 보르르가 생기기 전까지는 45도나 43도나 큰 차이가 나지않는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지구의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얼마나 많은 생물이 위협을 받는지 호소하는 캠페인에서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에는 공감해도 1도가 의미하는 바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45도짜리 물을 마시고 물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았을 때의 충격이란. 끓인 물이 식어가는 과정은 굉장히 오래 걸린다. 몇 번 물을 받는 시기를 놓쳐 배가 고픈 아이를 달래가며 물이 1도, 1도 내려가기를 기다린 적이 있었다. 45도로 떨어졌을 때 참지 못하고 컵에 물을 따라 입술에 대봤다. 그래도 엄마니까 아이에게 주기 전에 한번은 확인해봐야하지 않겠는가. 45도의 물은 43도의 것처럼 미지근하지 않았다. 뜨거운 물에 가까웠고 목을 넘어갈 때는 확실한 존재감이 있었다. 이후 50도나 60도의 물도 재미삼아 마셔봤는데 무척 뜨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