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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May 10. 2021

9.

토요일에는 귀마개를 하고 운동장에 섰다. 귓속에 넣는 껌 같은 마개였다. 마개로 갇힌 귓속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귀의 바깥에서는 팔이 자라났다. 응원가가 마개 너머로 희미하게 넘어왔다.

“마셔”

미우가 물병을 내밀었다. 미우는 양손에 하나씩 생수를 들고 있었다. 

“달리기 전에 물 마시면 배 아파.”

미우가 내미는 물병이 툭, 하고 내 팔을 찌른다.

“목마르니까 마셔.”

“안 마른데.”

“마를 거니까 마셔.”

나는 아예 두 팔을 주머니에 푹 찔러 넣는다. 

“그거 먹고 배 아파서 못 달렸다고 하면 되니까. 마셔.”

나는 병을 하나 받아 들었다. 미우는 남은 생수를 꿀꺽꿀꺽 삼켰다. 생수를 손으로 찌그러트리고 마개를 닫았다. 

“너무 열심히 달릴 필요는 없어. 꼴찌만 아니면 돼.”

어림없었다.

“최선을 다해 꼴등할 거야.”

“그랬다가는 내년에 다시 부를 줄 알아.”

“얼마든지.”

미우가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마치고 어디 가?”

모르겠는데? 하는 얼굴로 미우를 봤다.

“쏘얼드 6이 나왔어. 네가 어딘가로 간다는 뜻이잖아. 완즈 6이었으면 우리가 일등을 했을 텐데.”

미우는 타로 카드로 점을 보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었다. 거기에서도 미우는 미래를 과거처럼 이야기했다. 

“아니면 내일 아빠를 만나기로 했는데…그래서 쏘얼드 6이 나온 걸까?”

징─징─

허벅지에서 시작된 진동이 골반을 타고 올랐다. 전화벨이었다. 

“예술 한다는 아빠 말이지? 만나서 어디 가니?”

“어디 가긴. 우린 외식해 본 적도 없어.”

출발선으로 이동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넌 뭘 좋아하는데?”

“카레.”

“그건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잖아.”

“나 먹으라고는 그런 걸 만들어 주지 않거든.”

앞선 주자가 달려 나갔다. 우리는 출발선 앞으로 갔다.

“금을 밟으면 안 돼.”

미우의 발이 의욕적으로 흰 선을 비죽 넘어가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발을 사납게 뒤로 뺐다. 2인 삼각으로 묶인 미우의 발이 질질 끌려 물러났다. 

징─징─

전화벨이 다시 울렸다. 교사는 신호탄이 든 팔을 귀 옆에 붙이고 높이 쳐들었다. 

“쫄지 마.”

미우가 옆구리를 툭 쳤다. 

“쫄긴, 누가.”

오늘은 인데놀과 알프람을 먹었다. 간밤에 아버지의 노래가 끝나지 않아 로라제팜도 먹었다. 초조함은 환상이었다. 나는 벌써 졸렸다.

징─징─

전화는 끈질기게 걸려왔고,

탕─!

대열에 선 사람들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나는 허벅지 부근의 진동을 매달고 반사적으로 혹은 발작적으로 질주했다. 신호탄 소리가 아버지에게 가해진 마지막 총격 같아서였다. 미우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나와 보조를 맞춰 달렸다. 일곱 쌍이 달렸고 우리는 여섯 번째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테이프는 끊기고 없었다. 부러 크게 웃으며 결승선을 향해 느릿느릿 달려오는 꼴지 부자가 보였다. 그간에 전화는 여러 번 끊겼고 다시 걸려왔다.

징─징─

나는 전화를 받아 들었다. 

“…….”

말없이 저쪽에서 먼저 용건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럴 줄 알았다. 그럴 줄 알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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