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결 May 10. 2021

8.

아버지의 방에 (건너편 노인이 지난주에 죽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병실은 독채가 되었다) 나보다 누가 먼저 와 있었다. 고양이였다. 문을 등지고 앉은 아버지의 등이 구부정해지도록 감싼 것은 그 고양이였다.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학교에서 왔다고 했다. 언제 왔냐고 물어서 지금 왔다고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말했다. 틀렸다. 틀린 것은 익숙했으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한 말에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이 원칙은 방금 수립한 것이다. 틀렸어. 나도 이전부터 이 모든 게 다 틀려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네, 라고 이번에는 공손히 대답했다. 지금 온 것이 아니다. (네.) 이 고양이가 좀 짙어진 것 같지 않으냐? (네?) 고양이는 은회색의 친칠라 즈음의 잡종이었는데, 이제는 아메리칸 숏헤어의 줄무늬를 닮은 코리안 숏헤어 정도로 보이기도 했다. 지중해와 동해로 그 외연을 넓혀오고 있는 것을 보니, 과연 여기까지 오려면 한참 전에야 출발했어야 되었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왔느냐고? 넘어온 거지. 화요일 혹은 수요일에서. 아버지는 그 말을 하며 나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은 넘어올 까닭이 없으니까. 월요일은 원체 넘나들기를 좋아하고. 하지만 토요일까지 와 버렸으니, 이제 다시 어찌 돌아갈꼬?”

나는 문득 내 머리 냄새가 궁금해져 손바닥을 정수리를 문지르고 코에 박았다. 하품하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시험을 본 날은 머리에 기름이 잔뜩 꼈기 때문에, 냄새는 만족스러울 만큼 지독했다.

“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아버지는 듣고만 있었다. 고양이를 쓰다듬었지만 아마 듣고는 있었을 것이라 짐작했다.

“저 내일은 못 와요.” 

“.......”

“달리기를 하러 가야 해서.”

아버지는 출입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라.”

나는 언제나 고분고분한 편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먹지 않고 올려 둔 식판을 들고 미닫이문을 향해 걸었다. 뒤통수에 아버지가 하는 말이 와 닿았다.

“밀고 나가라.”

나는 아버지를 돌아봤다. 아버지는 다소 애원하는 눈빛이 되어 물었다.

“그렇게 할 거지?”

현학자의 지팡이 모양으로 굽은 금속 손잡이를 잡고 문을 힘껏 밀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그렇게 할 거지?

착하다.

왜 그랬어.

나쁜 것.


아버지는 자꾸 말했다. 나는 귀를 막고 걸었다. 귓속에는 1890년대 풍의 멕시코 정원이 있다. 페인트가 벗겨져 나간 등대가 있고 자고 일어난 사이 가구를 도둑맞은 집이 있다. 길모퉁이를 지나면 움튼 정원이 있다. 정원 복판에는 집 없는 고양이가 있고 집 없는 고양이에게는 갈 곳이 있다. 고양이가 방문하는 집에서 아버지께서는 설거지를 했다. 물소리가 들리고, 노랫소리가 들리는 부엌 식탁은 원목으로 만들어졌다. 고양이는 원형의 원목 식탁에 사뿐히 올라앉아 치켜 들었던 꼬리를 내린다.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때때로 엉덩이를 치켜든다. 꼬리는 낮은음자리표가 되었다가 물음표가 되었다가 선태식물이 된다. 고양이는 잠이 든다. 고양이가 잠든 틈에 나는 부엌으로 간다. 식탁에는 고양이털이 수북이 쌓여 있다. 나는 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며 초조한 졸음을 느낀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니 그것은 자장가였다. 내가 아주 아기였을 때 억지로 잠이 든 기분이 든다. 수돗물 소리가 멈추고 갑자기 노래가 뚝 끊긴다. 아버지는 싱크대 앞에서 손에 묻은 물기를 턴다. 설거지를 마친 아버지가 나를 돌아본다.  

‘가라. 토요일로 가라.’

거기까지 가면 주파수를 맞추는 듯한 잡음이 들렸다. 그리고 한동안 무음의 트랙이 이어지다가 다시 노래를 부르는 트랙으로 돌아갔다. 거기부터 끊임없는 반복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은 모든 것이 처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귀를 잘라내고 싶었다. 그릇 선반에 는 가위가 있다. 나는 가위를 가지려고 일어선다. 손을 뻗으려다 깨닫는다. 나는 팔이 없다. 팔이 없는 나는 자꾸 귓속으로 미끄러진다.

이전 08화 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