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나는 시험에 들었다. 금요일이었고 중간고사였는데 나는 잘 못 봤다. 그렇지만 덕분에 일찍 마쳤으므로 그것으로 좋았다. 버스정류장에는 시험을 치른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서로의 이름을 성과 이름의 앞 글자를 따서 두 글자로 부르거나(“야, 최지.”), 이름 끝자에 뜻 모를 ‘스’를 붙여 부르는 (“영쓰!”)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버스를 기다리면 버스를 타기도 전에 멀미가 날 것 같았다. 나는 정류장을 지나쳐, 걸었다. 돌아가는 방법은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지나갔다. 외곽을 따라 한 붓 그리기를 하듯이, 아메바 같은 내 귀가로의 덩치를 확장해 가고 있는데, “삼 년 꿇은”, “스물두 살”이라는 단어가 귓가에 콕콕 박혔다. 씹어 먹는 새콤한 캔디류에 박혀 있는 커다란 입자처럼, 그 말들이 하류를 향해 흘러가는 내게 사암이나 규암처럼 와 박혔다. 스무 살의 내게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았다. 인생의 넓은 관점으로 보면 일 년 정도 늦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내가 스물 하나가 되면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 스물둘이 되면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이 주에 한 번씩 아빌리파이를 처방해 주는 남자 정도가, 내가 늙었건 늦었건 관심을 두지 않는 정도다. 그는 내가 복지센터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고 하자 기뻐하기보다는 걱정했다. “천천히”, “무리하지 말고” 무엇이든 하라고 있다. 무엇이든 하라고 하면서 자살하는 것은 말렸다. 하긴 의사가 되어서 죽으라고 하는 것은 직무 유기에 가까울 테니까. 그러면서도 죽음에 실패한 환자에게 그들은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해서는 안 죽어요.” 죽지 못한 용기를 비웃는 것일까. 죽지 않고 살아난 목숨을 멸시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그런 말들을 쉽게 잊지 못한다.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실물이 아닌 기억에 지나친 저장의 습관이 발현되었다는 것이 다른 것이다.
의사 말고도 내가 스물둘에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을 절망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또 있기는 하다. 가능성을 타진해 오는 그 남자. 가능해? 가능해? 언제 가능해? 교복을 입고도 가능해? 사복을 입고 들어가서 교복으로 갈아입자. 그는 내가 고등학생이면서도 미성년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더 흥분하는 것 같았다. 심신미약을 주장할 필요도 없고 몰랐다는 말로 충분한 알리바이가 된다. 줄 듯 말 듯하며 주지 않고 있는 것은, 그가 매달리는 것이 보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에 줄 것이다. 불합격 통지를 받기 전에, 나는 파울을 할 것이다. 미승인되기 전에, 세상의 규칙에 의해 패배하기 전에-이미 그랬는지 모르지만- 내가 먼저 나를 거부하고 파괴할 것이다. 평가가 불가능한 항목으로 존재할 것이다. 성의 혁명이 내가 행할 수 있는 유일한 혁명이었기에, 나는 나를 염가에 판매하는 것으로, 나를 훼손하는 것으로, 분신의 혁명을 해 나갈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나를 보고 경례할 것이다. 어제 버스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는데 비행기가 줄 지어 있는 장면 다음에 제복을 입은 군인들이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이 잡혔다. 내 혁명적 움직임을 예감하고 그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무리 숨기려 해도 기밀은 늘 새어나가게 마련이니까. 2002년에 열린 월드컵(초경을 축하하기 위해 붉은 옷을 맞춰 입고 가두 행진을 이어갔다), 그 후로 끊임없이 제기되는 심판 매수 의혹(매수자금은 모두 나를 위한 예배에서 거둬들인 것이다),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말의 유행(사람들은 내가 토요일로 망명하기 전에 화형하려 했다)…이 모든 것이 나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3년을 숨어 지냈다. 하지만 결국에 알아채 버렸다. 모두 손을 들고 나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가. 숨어 지낸 것은 별 보람이 없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좋은 아이, 낙오한 아이로 보이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상한 늙은이로 주목받고 있다. 주목받는 것은 숙명인데, 예견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탈무드에 나온 이야기가 하나 생각난다. 독수리에 쪼여 죽을 것이라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아이를 상자에 넣어 기르다가, 독수리 부리처럼 뾰족한 상자의 자물쇠에 찧어 아이가 죽고 말았다는. 요는 될 일은 되고, 안 될 일은 안 된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그 말이다.
가급적 돌아갔지만 병원에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도착해버렸다). 별관 3층의 5호기 엘리베이터에 타자 아주머니가 청소 중이었다. 병원 직원들은 그 사람을 여사님이라 부른다. 그건 마치 나를 “학생”하고 불러 세울 때 돌아보게 되는 내 기분과 비슷하다. 아주머니는 “어서 오세요.” 인사했다. 본관도 아니었고 1층도 아니었는데 그랬다. 어쨌든 ‘듣기 싫다, 나가라.’보다 듣기 힘든 말이었다. 드문 것은 그 자체로 귀하기도 한 것이다. 나는 8층에서 내렸다. 아버지가 있는 병동으로 넘어갈 수 있게 설계된 층이었다. 공중 연결 통로로 가려면 쭉,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된다고, 안녕히 가시라고 또 그 아줌마가 말했다. 아줌마는 기준 이상의 친절을 베푸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길이야 훤했으니까 나는 대꾸 없이 내렸다. 사교적인 사람에게는 대답하고 싶지 않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버지가 있는 병실로 걸으며 빠르게 전이하는 암적 존재, 그것으로 나는 나를 과시하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지금은 행운의 신이 내게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