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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May 10. 2021

6.

그에게 풍선을 불게하고 앉은 어느 오후에 나는 그동안 칠십 된 노인이 바라보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고양이가 있었다. 은회색 털이 섞인 친칠라 비슷했지만 완전히 친칠라는 아닌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매일 같은 장소에 와서 매일 같은 자리에 주둥이를 대고 냄새를 맡고 매일 같은 곳을 발톱으로 긁었다. 고양이가 주둥이를 갖다 대는 곳에 풀이 있었다. 풀을 다 뜯으면 머리를 문지르고 주둥이를 갖다 대고 킁킁댔다. 그렇게 하면 제 머리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듯이. 고양이가 등진 곳에 고양이 울음이 있었다. 고양이는 매일 전투에서 지거나 이긴 대가로 풀을 뜯으러 왔다.

“저 고양이가 좀 짙어질 것 같다.”

남중고도에 따라 음영의 깊이를 달리하는 그림자는 시험에 자주 출제되었어도, 어제보다 오늘 더 짙어질 고양이에 대해서는 들어본 역사가 없었다. 짙어질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버지의 안색이 어두웠다. 


아버지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마음에 걸렸지만 목요일은 복지 센터에 갔다. 복지 센터에서는 봉사를 한다. 학원에 갈 사정이 안 되는 초등생들의 숙제를 도와주고 책을 사서 읽을 형편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 책을 대여해 주고, 그럴 사정과 형편이 안 되면서 나는 그들을 돕는다. 가까운 미래에는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 같다. 나는 잘못을 작정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해 두고 있다.

미우는 《코스모스》를 읽고 있었다. 그 애도 참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미우는 초록색 밀가루 덩어리를 쪼개 조금씩 입에 털어 넣었다. 눈이 마주치자 미우는 그것이 말차 스콘이라고 했다. 차와 빵에 관해서 미우는 잘 알았다. 차를 먹기 위한 그릇에 대해서도 미우는 많이 알았다. 어쩌면 나에 대해서도 미우는 나보다 더 아는 것 같았다. 미우는 전반적으로 아는 것이 많았다. 새로운 것일수록 더욱 그랬다. 언젠가는 베이컨이 든 샌드위치를 먹고 있어서 나도 베이컨 샌드위치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이것은 베이컨이 아니라 프로슈토”라고 바로잡아 주기도 했다. 프로슈토가 무엇인지 묻지는 않았다. 너무 상세하고 정확하게 답변할 것 같아, 지레 질려 버렸기 때문이다.

미우가 준 스콘은 맛이 있었다. 초록색 물을 들인 버터 덩어리에 불과한 것을 먹는 기분이긴 했지만, 내가 주로 접하게 되는 빵에 비하면 고급이었다. 이런 것을 주는 사람은 엄마라고 했다. 미우의 엄마는 고급 취향이 있었다. 미우 엄마의 안목은 이미 경양식의 촌스러움이 밝혀진 시대에 ‘비후까스’를 파는 서울 돈가스 집, 같은 것이었다. 

미우의 아빠는 “유명한 예술가”였다. 미우의 말로는 그랬다. 무슨 나빌레라인지 하는 축제에서 입상도 했다. 나는 구글에 그 아버지의 이름을 적고 그가 만들었다는 물건을 찾아보았다. (“조각가? 조형물?”) 그런 것을 만들어 어떻게 먹고 사는지, 삶이란 참으로 기이한 세계 같았다.

물론 미우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내게 직접 한 것은 아니었다. 칼자루를 쥔 손을 뒷짐 지고 선 게 내가 미우를 대하는 태도였다면, 가운데 손가락만 나오게 깍지를 끼고 기도를 하는 모습이 미우가 나를 대하는 태도였다. 한 마디로 살갑게 말을 터놓는 사이는 아니었다. 내가 미우의 부모에 대해 알게 된 건 미우의 유튜브를 통해서였다. 미우가 운영하는 채널은 점에 관한 것이었다. 그가 다루는 것은 타로카드였다. 아마도 그의 집에서 가장 번듯한 물건일, 상판에 무늬목을 붙인 테이블이 채널에 나오는 전부였다. 미우는 모조석을 카드 주변에 올려두기도 하고 가짜 수정을 불을 밝힌 인공 향초 옆에 두어 마녀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기도 했다. 미우의 점은 잘 맞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매번 그곳에 몰래 가서 점을 쳤다. 

“언니 달리기 잘해?”

잘한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미우에게 대답했다. 판결은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것이 수고가 덜했다.

“그럼 언니 운동회 때 나랑 같이 뛸래?”

나는 뭐, 그러겠다고 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달리기를 하면 화목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 머저리들은?”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아마도 불화를 조장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듣고 보니 설득력이 있네, 그건.”

미우의 말벗은 유튜브거나 코스모스 같은 책이어서, 나는 미우와 대화할 때 열 살짜리와 대화한다는 실감을 별로 하지 못했다. 옆반 미우이거나, 미우 언니이거나, 미우 이모라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 열심히 달릴 필요는 없어. 점심 지나서 곧장 가도 돼.”

미우는 내가 열심히 뛰지도 않고 지겨워하며 일찍 자리를 비워서 난처해질까 봐 선수를 쳤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빨리 뛰고, 별일이 없는 한은 자리를 지키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운동회가 언제인지 물었다.

“이번주 토요일이야.”

토요일이라고 했다. 내일 모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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