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뒷모습을 보이는 것이 있으면 나는 어쩐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마지막일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 보지 못했다’, 라고 써버리고 싶어진다. 내게 뒷모습을 많이 보인 아버지는, ‘그의 구부정한 토성의 꼬리 같던 등-그림자,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라는 문장을 쓴 뒷날 바로 나타났고, ‘아버지는 그날 조금 일찍 잠이 드셨는데, 그 뒤로 다시 깨어나지 않으셨다’, 라는 문장을 쓰면 까슬한 뺨을 쓸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앉았다. 그러고는 방구석 밥상 앞에 앉아 몽땅 연필을 눌러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다시는…’이라고 내가 쓴 문장을 베껴 쓰고 있는 나를 향해 “술을 더 가져 와라” 명령을 했다. 할 수 있는 기도란 심심풀이로 껌을 씹고 껌 종이를 펼쳐 축문을 써넣는 일이었다. 씹 새끼.
아버지는 내가 쓰는 문장을 자주 훔쳐보았으므로 나는 어느 때부턴가 암호로 문장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1. {부엽토 속은 축축하고 서늘했다.} 속뜻. (아버지 마음은 더럽게 치사했다.)
2. {점착고폭탄이 장갑 내부를 파괴했다.} 속뜻. (아버지의 물건은 손을 잘 탄다.)
3. {이만하면 울 때도 되었는데.} 속뜻.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회개했다.)
이런 식으로 고쳐 썼기 때문에, 나중에는 나조차도 원래의 의미를 알아차리기 어려워졌다.
{나는 토요일이다}, 라고 썼으면 정말로 ‘나는 토요일이구나, 수요일에 태어났구나’, 생각하고 말아버리는 것이다. 암호화된 그 문장의 원 뜻이 무엇이었는지는 그 날 그 토요일이 되어야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다시 오지 않았으므로, 이번에는 정말로 다시 오지 않았으므로 나는 토요일에 쓴 그 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영영 알아차릴 수 없게 되었다.
종이에 글을 쓸 수 없을 때면 공기 위에 문장을 썼다. (시야가 일렁이면 문장이 지워졌고 꼬리가 길어진 햇빛이 눈 속으로 타고 들어와 공중의 종이를 갈가리 찢어버렸다.) 공중에 쓴 문장은 발각될 일이 없어 숨길 필요도 없었다. 다만 나도 내가 무엇이라 쓰고 있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았기에, 문득 “청금석과 흑연” 같은 낱말을 쓰던 중, ‘그때 내가 가지러 간 됫병 들이 소주, 그것이 그의 마지막 식사였다…그가 내뿜은 담배 연기, 그것이 그의 마지막 숨결이었다…’라고 이어 쓰곤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자꾸 일어났고, 숨을 쉬었고, 돌아와 버렸다. 아버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라고 썼으나 아버지는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내가 ‘집’으로부터 독립하여, 경제활동을 시작했을 때에도 아버지는 나를 찾아와서 돈을 좀 꾸어줄 수 있겠느냐, 물었다. ‘돈을 좀 빌려줄 수 없겠느냐’도 아니고 ‘있겠느냐’라고 대뜸 묻는 것이 괘씸했지만, 나는 순순히 돈을 내주었다. 그때 내민 오만 원,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손에 쥔 돈이었다…
아버지는 이틀 뒤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나는 그 이레 뒤 우산을 찾으러 가듯이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가서 아버지의 소변 주머니를 비우고 식판을 물렸다. 학교에서 돌아와 비어 있는 병상에 들어가 커튼을 치고 교복을 갈아입었다. 아침 일찍 회진을 도는 의사가 하는 말을 새로운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귀담아 들었다. 의사는 환자가 취하는 지나친 공손에 따분해 하면서도 스스로의 지위에 경도되는 면이 있었다. 자긍심은 매일 이른 아침부터 의료 노역에 동원되는 것에 거부하는 바를 일소시키는 역할을 했다. 누가 오건 가건. 앞집 노인(맞은편 침대이지만, 나는 그를 앞집 노인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사는 레지던스에도 담은 있었지만 울타리는 없었다. 벽이 없다한들 자연스럽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이 티비를 얼마나 크게 틀건 말건. 앞집 노인이 저염식은 이제 지겹다고 어리광을 부리건 말건. 바닥을 닦는 청소 인력이 환의로 바닥에 쏟은 오줌을 훔치건 말건, 아버지는 내내 창밖만 바라봤다. 나는 아버지가 정리를 시작한 것이라 생각했다. 정리는 그가 칠십 평생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아버지가 보통사람 같지 않다는 것은 어려서도 알았다. 성이라고 불러야 했던 방에는 아무리 봐도 쓰레기거나, 쓰레기가 될 조짐이 가득한 물건이 바닥을 뒤덮고도 모자라 천장까지 닿아있었으니까. 두 돌이 지난 후로는 다리를 뻗고 자기도 어려웠다. (내 키는 일곱 살이 되도록 일 미터가 안 되었다.) 아버지의 ‘보물’더미가 방문을 막아버렸어도 사정을 숨기는 사람들만 고충을 짐작했다. 진짜 고충은 냄새였다. 아버지가 사는 방은 냄새나는 대륙이었다. 아버지의 몸은 냄새나는 기후였고, 아버지의 입은 냄새나는 날씨였다. 나는 숨을 참으며 눈과 눈 사이라든가 코와 윗입술 사이, 오려낸 토요일과 잔디가 된 월요일과, 내 얼굴에서 내가 살지 않는 구역이 그를 대면하도록 방임했다. 아버지가 보통 같지 않을 뿐 아니라, 이상하기도 하단 걸 눈치 챈 것은 손바닥이 천장에 닿았을 무렵이었다. 바닥에 깔린 신문과 잡지 더미 위에 올라서서 팔을 뻗으면 비통한 기압이 손끝에 와 닿았다. 모판에서 옮겨 심은 모가 비를 맞고 벼로 자라나듯이, 나는 비悲를 맞으며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