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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May 10. 2021

3.

내 모든 어긋남은 깨어있는 새벽에 시작되었다. 나는 새벽에 태어났다. 어쩌면 수요일은 아니었다. 그런 가설을 세워보고 있다. 

헤르메스 기법에 따르면 엄마가 날 수태한 시각은 3월 29일 낮 세 시경이다. 하지만 3월 29일은 아무 날도 아니다. 아무 날도 아닌 날 낮에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밸만한 여자는 없었다. 만약 내가 토요일에 태어났다면 내가 모친의 자궁에 도착한 날은 4월 1일 새벽 세 시 칠 분이 된다. 그건 거짓말 같은 설득력을 지닌다. 새벽에 그곳에 갔으리라는 건 그냥 안다. 어느 날 갑자기 그냥 부모가 사라지고 그냥 길러지고 그냥 맞고 자란 아이라면 누구나 안다. 그런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공통된 결말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또각또각또각또각. 단화의 굽이 일으키는 타격감을 느끼며, 나는 숙녀, 라는 단어를 혀로 말아 경쾌하게 삼켰다. 무릎 뼈 위에서 찰랑이는 교복 치마와 여물어 벌어지기 시작한 밤송이처럼 가슴에 맺힌 내 두 아람, 팬티 속으로 들어오는 실뱀 같은 바람. 남자친구, 여자친구. 애인, 사귀는 사이. 썸. 연구개음과 경구개음, 후음과 순음을 연달아 발음하며 나는 다시 어엿한 여성이 된 기분이 들었다. 열매로 치자면 나는 꽉 찬 것이다. 비록 내년에도 2학년이지만 신분증을 내밀면 나는 편의점에서 담배도 사고 네 캔에 만원하는 맥주도 사고 후기가 좋은 모텔에 가서 입욕제를 푼 욕조에서 거품 목욕을 즐기고 남자친구와 조건 없는 잠을 잘 수도 있다. 그런 전말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

-가능해?

지금의 남자친구는 자꾸만 내게 가능성을 묻는다. 그런 것은 점집에 가서나 물을 것이지, 아니면 혼자 딸이나 칠 것이지, 왜 자꾸 내게 가능성을 점친담. 하지만 나는 상냥하게 답한다. 

-얼마든지. 

심장을 조금도 닮지 않았지만 심장이라 불리는 아이콘도 함께 전송한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못생겨도 좋다고 말한 유일한 남자이니까. 있는 그대로의 내가, 내가 나라서 좋다고─사랑한다고 말한 애인이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나는 조금 많이 울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나는 다이어트를 했다. 뚱뚱하고 못생기면 실망할까봐 예뻐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을 개의치 않았다. 내게서 본 매력은 고작 몸무게나 피부, 비율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애원했다. 사진을 더 보내달라고 하며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옷을 입고 있고, 무슨 속옷을 입고 있는지(이것은 보여주지 못했다. 아직 마음에 드는 속옷을 입지 못했기 때문이다.), 속옷 아래는 어떤지 너무 궁금하다고 했다. 나는 가슴만 찍어서 보내줬다. 복숭아 같다고 했다. 엉덩이를 복숭아에 빗대는 건 보았어도 젖꼭지를 보고 복숭아를 닮았다고 말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그는 팬티를 벗은 사진도 보내 달라고 했지만, 아직 그럴 용기는 내지 못했다. 내가 찍는 순간 클라우드에 연동되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공유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우선 연동 해제부터 누른 다음 보내겠다고 했다. 그건 핑계였다. 거길 들여다 본 적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기일 때조차 속옷을 벗고 사진을 찍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해도 들여다보는 것이 꺼림칙했다. 벌레가 우글대는 습한 동굴 아래에 고개를 처박는 것 같이, 떳떳치 못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기다리겠다고 하며, 내 복숭아 같은 가슴을 보고 변한 자신의 것을 찍어 보내줬다. 나는 처음에는 조금 징그럽고 무서운 기분이 들었지만, 갈수록 아무렇지 않아졌다. 가끔은 내가 먼저 보내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그는 형광펜 같은 것과 함께 그의 아랫도리의 사진을 찍어 보내 줬다. 이만하면 긴 건가?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요구하는 것을 번번이 거절하는데도 나를 기다려주는 남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남자. 그로 인해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존감이 높아진 것이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예쁜 속옷이 없다는 거다. 3만원은 들 텐데, 3천원도 쉽게 쓸 수 없다. 광역버스-지하철-마을버스로 갈아타며 집, 학교, 복지센터를 왔다 갔다 해도 3천원은 우습게 뛰어 넘는다. 저녁을 해결하려고 나는 복지센터에 조금 일찍 도착하고 있다. 그러면 센터장 김이 마지못해 컵라면 같은 걸 내어 준다. 속옷, 이라고 생각하자 분비물이 쑥 빠졌다. 생리를 한다는 건 귀찮은 일이다. 또 한편으로는 잔인한 일이다. 내가 내 아빠 같은 아들을, 마마 혹은 엄마 같은 딸을 낳을 수도 있게 되었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붙어먹고도 결국 헤어지고, 죽네 마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알을 계속 까는 부모들. 그게 그렇게 좋을까? 그 유해한 짓을 계속 했을까? 유해한 행동으로 태어난 애라서 내가 이 모양 이 지경인 걸까? 싫은 새끼하고도 살아볼 만큼 그게 그렇게 할 만한 걸까? 그럼 나도 만 스물 하나가 되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좋을까? 새 속옷을 사기만 하면 드러누워도 될까?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그대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그도 소년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이 있다고 했다. 태어난 지 4개월이 되었다는데, 그의 아내에 비해 나는 얼마나 더 예쁠까? 얼마나 더 탐스럽고 싱그러울까. 몇 살 정도 되었을까? (서른넷.) 그래서 그는 나를 사랑하는 걸까. 용돈을 받으면 속옷부터 살 생각이다.(그런데 그가 아니면 누가 내게 용돈을 주지?) 자기는 검은색이 좋다고 했다. 위아래가 짝이 맞지 않고 고무줄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 데다 잔잔한 풀꽃과 물방울무늬가 그려진 지금의 속옷을 입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자존감이 낮은 걸까? 입기 위한 것이 아닌 벗기기 위한 속옷. 남자친구, 여자친구. 애인, 썸. 잠. 섹스. 아랫배에 찌르르한 통증이 밀려왔다. 서울대나 하버드대 같은 명문대에 간 학생들은 섹스를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마치 ‘교과서’라고 할 때와 같다. 텔레비전에 나와 말하는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의사들도 그렇다. 그러니까 배웠다고 하는 족속들은 섹스를 아무렇지 않아한다. 지능이 높을수록 섹스라는 말이 섹스가 아닌 것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젊은 남자나, 씩씩대며 지하철을 갈아타는 길에 욕을 해대는 머리가 희끗하게 센 남자나, 마을버스에서 내려 교복을 입은 채로 전자담배를-중고나라 같은 데서 샀을 거다, 분명- 보란 듯이 피워 무는 어린 남자들이 인터넷 검색창에 치는 섹스는, 입으로 내뱉는 섹스는 ‘교과서’가 아니다. ‘햄버거’이고 ‘김밥’이고 ‘짜파구리’같은 음식이다. 그러니까 몇 달 후에 우리는 햄버거를, 김밥을, 짜파구리를 먹게 될 거다. 브래지어 밑으로 땀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에 잠겨 너무 빨리 걸었다. 회색과 상아색의 격자 타일이 빠른 속도로 다가와서 등 뒤로 물러섰다. 나는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로 달려가 지하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먼저 탄 사람들이 넌, 뭐야, 하는 얼굴로 비집고 들어서는 내게 팬티 한 조각만큼의 자리를 내어 주었다. 사람들의 발길에 누렇게 뜬 엘리베이터 바닥 위에 내 두 발을 올려놓았다. 지하에는 주차장이 있었다. 주차장에 서기 전에 지하에서 내리는 사람은 나 말고는 없었다. 나는 괜히 평소보다 귀여운 목소리를 내며(실례합니다. 나갈게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어차피 막고 선 사람도 없었는데. 복도는 방금 만든 미로처럼 아무 색깔도 그림도 없는 무지의 공간이었다. 비상구와 층수를 나타내는 숫자만 적혀 있었는데, 실패해도 좋은 실험 용액이 든 비커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혹시 냉동 창고로 이어지는 건가, 불안한 마음으로 용기에 조금씩 성에가 끼고 있는데 실내간판이 나타났다. 집중치료실. 비윤리적일 만큼 화사한 빛이었다. 통유리 너머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인터폰에 ‘이름을-불러서는-안-되는’ 아버지의 이름을 대자 자동문이 열리며 얼굴이 길쭉한 간호사가 고개를 내밀었다. 아래턱과 유니폼 상의가 파르스름한 남자였다.

“성찬용 씨 가족 되시죠?”

그런 건 잘 몰랐지만 그렇다고 대꾸했다. 

“응급 삽관 시술로 다행히 혈전은 제거했어요. 지금은 말씀도 잘 하시고 정신도 또렷하세요.”

그런 것도 잘 몰랐지만 그랬군요, 대꾸했다.

“소지품 여기 두시고, 에어샤워 하고 들어오세요.” 

분사기 아래에 서자 쏴쏴, 공기가 내리박혔다. 이런 게 레지던스 입구에 있으면 정말 좋겠다. 나쁜 운은 방 안으로 얼씬도 못 했을 테지.

“이쪽으로 오세요.”

앞장서는 간호사를 뒤따르며, 나는 성찬용 씨를 찾아 눈알을 뒤룩거렸다. 병침은 달력처럼 정렬되어 있었다. 이윽고 둘째 주 화요일 즈음에서 간호사가 멈춰 섰다. 심전도 모니터는 들리지 않는 음악의 박자를 그려 내고 있었다. 어쩐지 푸가일 것 같았다. 나는 알고 있는 푸가의 멜로디를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려 애썼다. 하지만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라데츠키 행진곡이 어울릴지도 모르지. 나는 힘껏 용기를 내어 불러 보았다.  

“아, 아버지…. 아니 아빠…?” 

“그분 아니에요.”

간호사가 옆 침대에서 나를 불렀다. 눈물이 흐르지 않는 뺨을 쓸며 나는 진짜 아-버-지를 향해 어깨를 틀었다. 베개를 세우고 비스듬히 누웠던 아버지가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저기….”

“예예. 제 아드님 되신다고요?”

아버지가 가슴에 손을 대고 증언처럼 낱말을 떨어뜨렸다. 

XX. 성염색체 말이다. 나는 딸이다. 

“5번 천사님, 앉으세요.”

나는 5번도 아니었고(9번이었다) 천사도 아니었지만 앉았다. 

“토요일이 날이 좋았어요. 그렇지요?”

네? 그 무슨…하고 대꾸하려 했으나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꼭 외계의 존재와 교신 중인 모습 같았다.

“음, 그렇지. 문을 열어 줘야지.”

아버지는 캐비닛 아래에 있는 냉장고로 팔을 뻗었다. 냉동고가 없는 한 칸짜리 냉장고였다. 

“이 문이요? 열라고요?”

그는 대답 대신에 눈을 감았다. 이진법 신호인가? 나는 쭈그리고 앉아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속에는 푸릇한 만원 권, 청량리 역에서 끊은 비둘기호 열차표, 크고 작은 오십 원, 폐금업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봉투, 효과 빠른 소화제 들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올려다봤다. 어느새 눈을 뜨고 있는 아버지는 손짓으로 그것들을 달라고 했다. 나는 냉장고 안에 쑤셔 박혀 있던 비닐봉지 중 아무 것을 펼쳐 만원과 열차표와 오십 원과 폐금업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작은 봉투, 효과 빠른 소화제 3개 한 세트를 바리바리 담아 아버지에게 건넸다. 아버지는 됐다는 듯이 다시 눈꺼풀을 내려 안막을 덮었다. 확실히 이진법 신호로군. 나는 저층부의 수색에 나섰다. 문짝에는 교회 스티커가 붙은 휴대용 물티슈가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물티슈를 몇 개 챙기면서 아버지를 살폈다. 아버지의 눈꺼풀은 올라오지 않았다. 음료수를 놓는 칸에는 삼다수와 평창수가 있었다. 삼다수가 평창수에 든 물보다 조금 적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과일칸도 열어 보았다. 덜커덩, 소리가 들리자 침대 쪽에서 동요가 느껴졌다. 과일 칸 속에는 신문지로 둘둘 싸인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돌아봤다. 역시나 아버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고 어헤드. 아버지의 두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시공을 여닫는 그런 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센터장 김은 그럴 때마다 핀잔을 주었다(‘너는 너무 생각이 많아. 소설만 읽는 게 문제야. 자기 계발 서적이나 사회 과학 도서도 좀 보렴. 이를 테면 꿈꾸는 다락방이나, 과학혁명의 구조 같은 책 있잖니?’).신문지 뭉치를 꺼냈다. 생각보다 훨씬 가벼워서 내 팔은 위로 치켜 올려졌다. 마치 신문지 뭉치의 판정승을 말하는 듯이. 나는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풀지 않고 아버지에게 주었다. 아버지는, 그도 그래야 한다는 듯이 말없이 받아 그것을 풀었다. 꾸깃꾸깃꾸깃꾸깃꾸깃. 아버지가 신문지를 잔뜩 구겨가며 풀어낸 숙제 속에는 오래된 수첩이 있었다. 

목자 우유 1993년. 수금원의 우유 대금 수금 대장이었다.

“705호는 2천300원을 지난달에 안 냈고, 803호는 다음 달부터 우유를 끊는다고 했다. 미국으로 이민 간 502호에는 동생네가 들어와 살기로 해서, 계속해서 우유를 대어도 좋다고 했다.”

아버지는 수첩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

“우유는 더럽지 않아. 그런데 이것은 참 더러운 일이다.”

나는 그렇군요, 그것은 참 더러운 일이었군요, 해야 할지, 그랬군요, 더럽게 힘들었겠군요, 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그런데 여길 보아라.”

나는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짚는 곳을 보았다. 

“이런 날은 어찌해야 좋았겠니. 땅 밑으로 주저앉고 싶지 않았겠니?”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듣고만 있었다.

“여기, 이 눈물 자국이 보이니? 이런 날은 어땠겠니. 토요일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았겠니? 그런데 토요일이 어디 있었니.”

이진법의 신호를 송출하는 아버지의 두 눈은 눈물로 차올라 있었다.

“아버지, 아니 아버님…….”

아버지가 내 팔뚝을 잡으며 물었다. 

“어디에 있었느냔 말이다…….”

나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가 손으로 짚은 곳을 비롯하여 수첩 어디에도 아무런 글자가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글을 읽을 줄 몰랐고 뉴스를 이해할 줄도 몰랐다. 하지만 물건을 쓰던 이의 마음은 읽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 쓰지 않고 버린 수첩조차, 그 수첩에 깃든 마음조차 외면할 수가 없어서 주워오게 되는 거라고 했다. 나는 살면서 차차 이해했다. 나도 그래서 데려왔을 테니까. 아버지는 수첩의 맨 앞장을 펼쳤다. 달력이 나왔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손톱으로 달력 위에 홈을 팠다. 그러고는 두 팔을 벌리기에 나는 몸을 기울여 그가 나를 안을 수 있게 했다. 그가 귀엣말로 속삭였다.

“토요일로 가라. 밀고 나가라.”

병원 리넨실에서 풍기는 쿰쿰한 냄새가 아버지의 목덜미에서 훅 끼쳤다. 

“가족 분, 환자 분 너무 지치게 하지 않으실게요.”

간호사였다. 나는 언제 다시 볼지 알 수 없는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두 눈에 가득 담았다. 아버지는 내가 와 있다는 것도 잊은 듯 비닐봉지에 손을 넣어 열심히 뒤졌다. 나는 담요 바깥으로 삐져나온, 마른 수세미처럼 쭈그러진 발을 덮어주었다. 부처님의 귀도 아버지의 발보다는 클 것 같았다. 여기 주말도 없는 달력 구석에 누웠다가 달이 차고 기울면 빗금 쳐 지워질 아버지. 이제 신발이 다 무슨 소용인가. 가엾은 사람. 성찬용. 72세. 주치의, 염영훈, 류제은. 아버지는 이제 비닐봉지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아버지, 저 이제 가 볼게요.”

아버지는 비닐봉지에서 꺼낸 것을 내게 건넸다. 폐금업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작은 봉투였다. 

“노잣돈이다.”

“어디를 가는데요, 제가?”

“밀면 열릴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 환하게 웃었다. 어금니가 있던 자리에 월요일 같은 검은 공백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처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와의 마지막이 오기 전에 묻고 싶은 것이 있어 그를 불러 보았다.

“아버지.”

하지만 그는 대꾸하지 않고 돌아 누웠다. 그것이 내가 본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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