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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May 10. 2021

5.

그날 집중치료실에서 나오자마자, 버리기로 작정하고 작은 봉투를 열어보았더니. 금니가 있었다. 금니에서는 비 오는 낮의 냄새가 났다. 덥고 후텁지근한 공기, 달뜬 마음이 소란을 일으키어 뿜어내는 가습의 열기. 그런 썩어가고 소생하는 축축한 여름 언덕의 냄새가 났다. 아버지의 벌어진 입 속의 공백을 떠올려 보았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것이 명백하고, 영락없이 일생에 걸쳐 어질러 놓은 일상 정리에 나선 것 같지만 사람으로서의 아버지는 사실상 사망한 지 오래였다. 이미 죽은 사람이 다시 죽는다니, 죽는다는 것보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 더 끔찍한 사살 같았다. 

나는 아버지를 사건화하기 위해 기자가 되기로 했다. 아버지가 머무는 병실의 출입국 기자 자격을 얻은 나는, 아버지에 관한 기사를 매일 작성했다. 배부는 내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버지에 관한 한 시의성에 있어서는 일간 신문이 따라올 수 없었다. 나는 분 단위로 기사를 발행했기 때문이다. 보통은 스트레이트 기사를 썼다. “아버지, 오늘 저녁은 한 숟갈도 들지 않아….”, “아버지, 내일이 고비…고비만 열흘 째” 가끔은 피처 기사를 쓰기도 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저지른 다짐 같은 거였다. ‘다시는 외상을 하지 않겠어. 외상값을 치르기는 죽기보다 싫으니까.’ (아버지는 생에 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사람이었던 아버지도 사건이 되자 표적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밝혀내어 유력한 분간지分刊紙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무력감에 빠져들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고 수시로 신음을 했다. 배 속에 암세포가 퍼져서 장기가 침식당한다면, 그 고통이 얼마가 될까?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고 미워할 수도 없었다. 나는 끝나지 않은 전쟁의 종군 기자였다. 탕, 하고 총성이 울리고, 우두두, 하고 기관총이 발사되고, 으드득, 하고 뼈와 살이 갈리는 밤이 지나가도, 나 여기에 있고, 이런 말 못할 지경에 놓여 있다고 외쳐본들 그것은 또 하나의 우두두, 이자 으드득이 될 뿐이었다. 나는 인터넷 분간을 접고 본격 정론지의 길을 걷기로 했다.

━아버지, 과연 위독한가?

━아버지, 사경을 헤매…

━아버지, 오늘 밤이 최대 고비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는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까?

이번에도 신문은 내 3*5인치 액정을 통해 곧바로 나왔다. 이번에도 페이스북이었다. 가끔 호외 속보가 발행되었다.

━오늘은 보호자식에 달걀부침이 두 개!

━보도 건너편 제로마트…돼지 불백을 3천4백원에 타임 세일해

그러나 그런 뉴스는 너무 가벼운 것이었으므로, 나는 가급적 <오른쪽으로 천천히 걸어보기로 했다>, <채식을 멀리하는 잡식 동물로 살아가는 법>, 등을 표제로 싣고서 때로 아무 것도 싣지 않는 공란의 기사를 발행했다.

밤에는 무거운 논평을 게시했다.

━아버지, 과연 위독한가?

━아버지의 나머지 정리, 해법은 있는가?

논평을 쓸 때는 가능한 B를 눌렀다. 연필심 비b가 쉽게 뭉그러지듯 B를 눌러 쓰는 논평의 논지는 세 문단 째에 이르러 이내 흐려졌다. 나는 기사 작성에 만전을 기하며 주섬주섬 잠이 들었다가 부스럭부스럭 잠에서 깼다. 나를 깨우는 것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기저귀를 갈고 싶은 아버지가 기침을 하거나 과자를 몰래 먹고 싶은 아버지가 협탁 서랍을 열어 맛동산이 든 봉지를 찾다가 서랍을 통째로 떨어뜨려버리거나. 깨우는 방법은 다양했어도 깰 때의 심정은 비슷했다. 각성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이런 표제를 생각했다.

━반목 끝내 타개하지 못하고 돌아서

━모두가 등 돌린 사람

날이 밝으면 등 돌리기로, 학교를 마치면 다시 병원으로는 오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나는 자꾸 병원으로 갔다. 등 돌리지 못하고 돌아갔다. 내가 병원으로 가는 까닭은 집이 너무 형편없기 때문이야. 구실을 만들며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갔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가 막 빨간 등으로 바뀌면 폐금업자의 전화번호가 적힌 작은 봉투에 든 것을 꺼내 햇빛에 비춰 보았다. 아버지가 준 금니는 무척 불경스러웠다. 기꺼이 불경스러워진 아버지가 기뻤기에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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