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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May 10. 2021

10.

장례식장은 아버지가 생전에 살았던 어느 집보다도 호화로웠다. 식장 앞 지하주차장 입구는 장례식에 참석하려는 차량으로 붐볐다. 삐빅, 삑. 호각소리가 경례하며 나를 맞이했다. 나는 말없이 인사하고 건물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회전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늘 주의를 기울이지만 오늘 같은 배드 뉴스 앞에서는 나도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가급적 고개를 푹 떨구고 시선이 머무는 자리를 떴다. 내 뒷모습에 그들의 시선이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성가시고 피곤한 일이었다. 드디어 아버지의 죽음과 만나는 모습도 그들 나름대로 해석에 부칠 것이다. 그 일을 최대한 미루는 것이 마지막 효도인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머물 만한 곳을 찾았다. 스타벅스가 있었다. 장례식장에 딸린 곳이라 규모 면에서 옹색한 지점이었지만 사람들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나는 이미 아버지의 죽음을 예견한다는 기사를 발행한 바 있다. 그 기사 때문에 아버지의 죽음이 일찍 발각된 듯했다. 주문대 앞에 줄지은 사람들이 나에게 애도의 눈길을 보냈다. 나는 말없이 목례하고 자리에 앉아 주문 버튼을 눌렀다. 

“도서관의 늙은이 님, 얼음 적게 하신 프라푸치노 나왔습니다.”

도서관의 늙은이는 토요일과 비슷한 보안 등급의 이름이었다. 실명은 아니었지만 주로 지적 문화의 소비와 관련된 분야에서 내가 활동할 때 쓰는 이름이었다. 내가 순수한 에스프레소를 우유와 시럽과 초콜릿과 크림, 토핑 가루 등이 더럽힌 음료를 향해 손을 뻗자, ‘도서관의 늙은이 님?’하고 직원이 나의 동공을 응시하며 신원을 확인했다. 나는 그렇다고 짧게 대답하고 황급히 자리를 떴다.  

빈소에 들어서자 가족들이 보였다.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아버지의 가출 후 열한 개의 순번표는 빈 도시락 통에 든 젓가락처럼 어깆거렸다. 마치 고무판화 부스러기가 묻은 조각칼이나 동강 난 지우개, 버리지 못한 껌 종이 들이, 몇 자루가 빠져나간 연필 갑 빈 데를 차지하고 시치미를 떼는 것처럼, “어?”하면 “아니, 뭘.”하고 얼굴을 돌렸다. 4번 형제와 눈이 마주쳤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4번이 내 옷깃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네가 가져갔지?”

“아니, 뭘.”

나는 얼굴을 돌렸다. 아버지에게 절을 하러 신발을 벗고 올라선 다음에야, 무엇인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가 없었다. 

“왜, 왜 아버지가 없나요?”

“네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장례식에 아버지가 없는 사건을 어떻게 기사화해야 할 것인가 고심하고 있는 사이 장의사가 염을 하러 왔다.  

“아, 그분은 돌아가셨어요.”

“아하.”

장의사는 빈출 유형을 푸는 노련한 수험생처럼 아버지의 부재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빈소에 있는 빗자루를 가져다가 삼베로 염을 했다. 상조 회사의 직원들이 염을 한 빗자루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어 관 속에 눕혔다. 그들은 장의사에게 뭐라고 속닥거렸다. 잠시 후 장의사는 들고 온 커다란 보스턴백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일력이었다. 

“언제 돌아가셨나요?”

“오늘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일력을 분주하게 펄럭이며 넘겼다. 그리고 오늘 날짜를 찢어내어 마마에게 주었다. 마마는 그것을 다시 4번 형제에게 주었다. 4번 형제는 액자에 달력을 끼워 넣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파랗게 질린 토요일이었다. 우리는 파랗게 질린 토요일을 향해 납작 엎드려 절을 했다. 가족과 형제들은 빈소의 벽에 한 줄씩 서서 문상객을 맞이했다. 본 적 없는 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일일이 목례했다. 우리 중 아무도 곡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다 4번 형제와 눈이 마주치면 그가 입술로 물었다.

“네가 가져갔지?”

나는 대답하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 아버지를 주머니 속에 빼돌렸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아버지는 부재로서 존재를 증명해 온 사람이었다. 생의 어느 시점에서도 그가 온전히 자리를 지켰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므로 그의 부재를 발견한 마지막 처소가 빈소일지라도 그것은 그가 일관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증명과도 같았다. 나는 셰리프로 된 생각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그는 제멋대로였다. 그는 일관됐다. 그는 변덕쟁이였고 그는 완고했다. 그는 늙은이였고 그는 철부지였다. 그는, 그는……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이번에는 정말이었다.

하관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소한 것조차 버리지 못해 괴로워했던 아버지의 일생을 위로하는 마음에서 우리는 그의 마지막 흔적을 버리기로 했다. 화장은 관에서 빗자루를 꺼내 태우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그래도 12분이나 걸렸다. 화장업자는 유리병에 든 재를 유가족에게 내밀었다. 유리병은 사 홉 들이 소주병이었다. 술독에 빠져 죽을 순 없었지만, 죽은 이를 술독에 빠트리는 것으로 우리는 아버지를 위로했다. 아버지의 재는 마마가 맡았다. 마마는 그것을 그날 오후에 공병 수거 마대에 넣어 버렸다. 그녀가 아버지의 흔적을 잡병으로 분류하지 않은 것에서 형제들은 그에 대한 존경심을 읽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 절차를 마치자 강렬한 심적 허기가 몰려왔다. 나는 부모를 잃었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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