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결 May 10. 2021

11.

그는 불임이었다. 

“그야, 늬 아버지가 0이라도 나는 100이상이니까.”

마마는 불임인 아버지가 나를 낳을 수 있었던 근거에 대해 종종 그렇게 해명하곤 했다. 다행히 아버지와 마마 쌍방이 사칙연산에 무지했다. 곱셈을 까먹은 탓에 덧셈 식으로 아이를 산출했다. 1번부터 12번까지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중 9번으로 아버지가 주워 온 자식에 배속되었다. 낳았다는 말이 주워왔다는 은유로 치환되곤 했지만 내 경우엔 그게 농담 같지 않았다. 알고 보면 그다지 웃기지도 않았다. 진짜 농담은 버릴 줄 모르는 아버지에게 한 다스의 식구들이 모조리 버림받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남자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가능해?

그는 답한다. 

─얼마든지.

그는 덧붙인다.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어.

별 소릴 다 듣겠다. 나는 남자친구가 있다는 모텔을 향해 걸어갔다. ‘CCTV없음, 몰래카메라 청정 지역’이라는 문구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지도 앱을 켜자 화살표가 나타났다. 나는 화살표를 따라 걸었다. 나는 불행해질 것이고 나는 하찮아질 것이다. 나는 곤두박질 칠 것이고 나는 훼손될 것이다. 나는 조금 속도를 낼 뿐이고 나는 조금 일찍 그곳에 들어설 뿐이다. 버림받기 전에 내가 나를 버릴 것이고 추락하기 전에 내가 뛰어들 것이다. 어리다는 까닭으로,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남아 있다. 

비너스 모텔에 들어서자 기다란 계산대 너머에서 젊은 남자가 어떻게 오셨느냐 물었다. 나는 207호를 찾아 왔다고 대답했다. 남자 앞에는 ‘몰래카메라 없음’이라는 플라스틱 배너가 붙어 있다. 그는 아마도 비디오를 빼돌려서 포르노 유통업자에게 넘길 것이다. 그러면 유통업자의 상상력이, 흔한 성교에 근친상간과 미성년, 직장 내 상하관계, 누나, 처제 등의 인간관계를 끌어다가 제목을 붙일 것이고, 거기에 발기한 남자들이 제품을 구입하러 포인트를 충전할 것이다. 그는 카드 열쇠를 내밀며 말한다.

“사장님도 방금 올라가셨어요.” 

나는 돌아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팝콘, 커피 무료. 머리카락이 젖은 여자가 원두커피 기계 앞에 서서 찔끔찔끔 나오는 커피를 받는다. 한 손에는 종이컵을 들고 홀짝이고 있다. 띵, 소리가 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겨우 2층이지만 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2층은 훨씬 어두웠다. 나는 발밑에 나타나는 바둑무늬를 보며 걸었다. 검은 돌은 흰 돌을 이긴다. 보통 그렇다. 아이가 세상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순간은 불리한 판에 돌을 얹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머리가 아주 검은 아기가 출생하기도 한다. 기억엔 없지만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내 삶에 일어난 첫 번째 구조였을 테니까. 부모는 포기했지만, 신은 날 선택했다.

찌링, 팃. 

카드가 닿자 문이 열렸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선다. 우중충하고 두꺼운 커튼이 처진 객실은 어둡기 짝이 없다. 벽면에 부착된 발광 다이오드는 사랑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내고 있다. 

“왔어.”

남자친구가 나를 안는다. 남자친구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의 숨결이 불결했다. 목과 어깨에 그가 닿는 것이 참을 수 없도록 이물스러웠다. 그렇지만 나는 남자친구에게 예뻐 보이려고 미소 짓는다. 

“사진이랑 전혀 다르네.”

남자친구가 신나게 웃는다. 남자친구도 사진과는 전혀 다르다. 

“사랑이 가득한 키스.”

남자 친구가 입술을 내민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이를 닦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씻고 나오겠다고 말한다. 그의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이 부끄러워 옷을 입은 채로 화장실에 들어간다. 그가 눈 오줌이 변기에 남아 있다. 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오줌을 눈다. 맨발이 닿자 발바닥이 쩌릿할 만큼 욕실 타일은 차가웠다. 바닥에서 김이 피어오른다. 오줌은 구렁이가 되어 수챗구멍을 향해 기어갔다. ‘그래서 그와 할 거니?’ 혼잣말이 신탁처럼 피어 올랐다. 나는 나흘 만에 씻었다. 특별히 공을 들여 씻은 다음에는 다시 욕실에서 옷을 입었다. 속옷을 입고 그 위에 꾸덕꾸덕한 겉옷을 입었다. 욕실을 나가자 남자친구는 옷을 전부 벗은 채로 침대에 다리를 뻗고 누워 있었다. 자고 있는 것 같다. 객실에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텔레비전에서는 성인영화가 나오고 있었다. 멋쩍어진 나는 테이블 앞에 가 앉았다. 종이컵에 남아 있는 원두커피를 마셨다. 탄 맛이 났다. 종이컵을 더 기울이자 가래가 붙은 담배꽁초가 보였다. 나는 입 속에 든 것을 쪼르르, 컵 속에 흘려보낸다. 그러고는 남자친구를 깨워 키스를 한다. 

“아, 왜 이렇게 늦게 나왔어.”

담배꽁초를 먹었는데도, 남자친구의 입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느껴졌다. 나는 포르노에서 배운 대로 한바탕 침대에서 뒹굴었다. 하지만 그는 사정하지 않았다. 발기부전은 여자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연설을 누워서 듣는다. 누워서 받는 벌은 처음이다. 

“너 자신을 사랑하도록 해. 살도 좀 빼고.”

체벌이 끝나자 그는 사탕 같은 조언을 건넨다. 그러고는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먼저 갈게.”

그는 옷을 차려 입고 문 앞으로 갔다가 돌아와서 지갑에서 삼만 원을 꺼낸다. 다시 내 얼굴을 힐끗 보고는 이만 원을 챙겨 나간다. 나는 카운터를 지키는 남자가 이 과정을 지켜보는 것을 상상한다. 나중에 이것이 시장에 나간다면 어떤 이름을 붙이게 될까도 생각한다. 발기부전은 여자 탓. 액체괴물과 고자. 하지만 어느 쪽도 동하는 제목은 아니다. 아마도 이건 염가에라도 팔리지 않을 것 같다. 그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나는 먹다 남은 커피가 남은 테이블 앞에 앉아 기사를 작성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자.>

고딕체, B, 14, 200%. 나는 제목에 블록을 지정해 셰리프 16, 180%로 바꾼다. 다시 블록을 쌓는다. 굴림 11, 160. 내용은 쓰지 않기로 했다. 형식적인 구호였기 때문이다. 나는 침대로 가 혼자 구른다. 나를 사랑하는 상상을 한다. 자위를 한다. 그러다 잠이 든다. 나를 사랑하기란 내게도 피곤한 일이었다.

이전 11화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