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eVagabond Nov 01. 2020

넉넉한 자유

나와 나의 관계


원형탈모가 왔다. 1년 동안 생리를 6번밖에 하지 않았고 눈을 떴는데 허리를 움직일 수 없어서 누워서 재택근무를 다 해보았다. 손목 통증이 심해서 며칠을 출근길에 물리치료를 받기도 하고 한 달 내내 설사와 변비를 반복하기도 했다. 하루에 방구를 수십 번 뀌기도 하고 먹는 대로 체해서 회의 내내 트름을 하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그의 멘탈은 심리상담과 정신과 처방전으로 나름 잘 버텨주고 있었지만 피지컬은 멘탈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었고 그 일도 서로를 믿고 인정해주는 좋은 사람들과 하고 있었다. 회사에 다니다가 번 아웃을 겪어버린 그 과정에서 그것은 어떤 원인으로 작용했을까. 놓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병가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팀에 영향을 주고 있었고 그는 퇴사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입 밖으로 내어서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본인의 건강상태가 아닌 팀원에게 안 좋은 영향을 주는 본인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그는 모른다. 남들에게 쉬어야 할 것 같아서, 몸이 안 좋아서라고 말하는 그에게 나는 끊임없이 힌트를 주려고 했다. 그가 본인이 남에게 주는 영감과 영향에 얼마나 과도하게 집착하는지에 대해.


번 아웃은 한 가지 일에 의욕적으로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무기력증, 자기혐오에 빠지는 현상이다. 포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다 하는 성향의 사람에게 더 쉽게 찾아올 수 있다고 한다.


어... 그거 딱 난데?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는 본인만의 미래를 그리며 삶에, 아니 사실은 일에 전력을 다 했는데 아마 그 미래에 다가가기는커녕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지속되면서 급속도로 무너져 내렸던 것 같다.


나는 구체적으로 그리는 꿈이 있어. 산 밑에 있는 조용한 땅을 조금 사서 집을 짓고 반려동물과 반려식물들을 입양하는 거야. 일은 디지털 노마드로 먹고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을 정도까지는 하려고 할 것 같아. 물건은 최소한으로 소유하여 간소하게 살고 언제든 가볍게 이동하는 미니멀리스트가 될 거야. 결혼을 하게 된다면 서로의 삶, 시간과 공간을 존중해줄 것을 최우선의 규칙으로 삼아야겠어. 20분 정도 운전해서 나가면 작은 도시가 있어서 필요한 물건은 다 구할 수 있을 거야. 애인이랑 플레이스테이션이나 닌텐도 스위치로 게임을 하고 진 사람은 공유 노트에 있는 장보기 미션을, 이긴 사람은 그 시간 동안 안마 의자에서 마사지받기 미션을 수행할 때 나는 쌓였던 피곤이 사르륵 녹아버리는 듯한 행복을 느끼겠지.


가끔은 하루 일과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도 자주 한다며 신나서 소개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원하는 것에 빨리 다가갈 수 있다나 뭐 래더라...

-아침엔 보통 일찍 일어나서 햇볕을 맞으며 명상과 스트레칭을 해. 이메일이나 연락이 필요한 일들은 아침 전에 웬만하면 다 하려고 하는 편이야. 아침은 따뜻하고 간단하게 먹어야 속이 편하더라고. 오전에는 잔디도 깎고 약간의 밭일과 함께 몸을 쓰는 일을 좀 하고 반려동물과 반려식물들을 좀 챙기고 있어. 점심은 직접 따온 야채들로 천천히 만들어서 건강하고 든든하게 먹고 또 천천히 먹은걸 치워야지.

-점심을 먹고 나서는 보통 마당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차 한잔 마시고 30분 정도 낮잠을 자는 편이야.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시는 외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습관은 최대한 다 배우고 따라 해서 나도 건강한 언니에서 이모, 할머니가 되고 싶어 ㅎㅎ 머쓱:) 오후에는 느긋하게 산책도 하고 보고 싶었던 영화나 책을 본다든지 영감을 받을만한 input을 찾는 편이야. 가끔은 요거트 같은 걸 만들어서 옆 동네 친구와 나누면서 수다를 떨기도, 경운기 타고 드라이브를 하기도, 시간을 들여 김치나 곰탕 같은 걸 만들어두기도 하는 것 같다. 저녁은 준비시간이 30분 미만인 간단한 메뉴로 때우는데 물론 반려동물들도 챙겨서 같이 먹고는 해.

 -저녁 이후에는 어떤 날에는 일도 하고 시내에 나가서 춤 학원이나 수영장에 다녀오기도 하고 약속을 잡기도 하는 등 필요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소비하는 편이야. 일과가 끝나면 간소한 저녁 루틴을 마친 후 스마트폰을 좀 하다가 잠이 드는 거지.


그는 본인이 살고 싶은 공간의 모습까지 대략적으로 구상하여 스케치를 해놓았다. 그런데 혹시 집 여러 채를 계획하여 가족이나 친구들, 또는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파트너들과 단지를 자주 공유해도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미 그런 날이 왔다고 상상하며 집에서 미래의 하루 일과를 시뮬레이팅 하는 것은 그의 인생의 크나큰 낙이 아닐 수 없다.


그는 그가 야망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일 말고도 많은 흥미로운 일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사실은 그런 것들이 너무 많아서 때로는 그런 것들에 치일 지경이었다. 그는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으면서도 늘 다른 생각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소설을 읽으려고 자리에 앉았다가도 머릿속에 떠오른 생필품을 사려고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고, 마트에 다녀오다가 지난주 다녀온 지역의 땅값에 대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고 네이버 부동산 사이트를 구경하다가 어제 자기 전에 유튜브에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 썸네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서는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를 보기 시작한 지 채 20분도 안되어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일수였다. 그래서 그는 어디에 있건 또는 어디로 가건 항상 잘못 그린 그림이며 작성하다 그만둔 도면, 사파리에 켜놓고 다 보지 못한 브라우저 그룹이며 반쯤 열다 만 서랍 같은 것으로 혼란스러운 흔적을 남기곤 했다.


나는 그런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은 영감에 휩싸이는 속도는 로켓 배송 급이었고 항상 궁금증에 가득 차 있는 모습은 그를 생산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또 그런 영감과 호기심을 바로바로 현생에 옮기는 실행력을 나는 항상 존중해왔다. 그랬던 그가 호기심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본인을 구속 해갈 줄은 정말 몰랐다. 그는 아무런 영감을 받지도 주지도 못하도록 스스로를 봉인시켰다. 그의 시간을 살아가려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언제부턴가 삶에서 일의 비중이 커지면서 그는 일에 지나치게 집중했고 다른 많은 가치들을 뒤로하고 앞만 보고 달려갔다. 원래 집중한다는 건 그런 것인지, 그저 그의 성향인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의 특별한 집착이었던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항상 저 앞에 있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고 매일매일 쫓기듯 다음 행보를 생각하며 살았다. 항상 경계하고 발 빨리 움직이며 금요일이 되어도 끝나지 않을 일들을 영화 삼아 머릿속에 재생시켰다. 그가 걸어온 일련의 과정들은 그를 발전시키는 요인인 와중에도 그를 한정 짓는 안 좋은 습관이 되어버렸다. 뭐 대단한 걸 하는 것 같지도 않았지만 더 좋은 효율을 기대하면서 일을 하지 않을 때는 잠만 잤다. 퇴근을 해도 프로다워야 한다는 강박은 그렇게 그를 물고 늘어졌다. 디자이너로써 성장하는 데는 충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에게 그다지 충실하지 못한 하루하루를 보냈으며 초졸하게 변해가는 그의 모습이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생이 좀 점진적으로 바빠졌다면 더 괜찮을 수 있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독립을 해야 했던 그는 시간 관리하는 법만 배웠고 바쁠 줄밖에 몰랐다. 나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면서 그를 아프게 했다. 돈을 벌어서는 병원비에 다 쓰다시피 하고 있는데 도대체 지금 뭘 위해 살고 있냐는 질타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고용되기를 포기한 7월 1일은 수요일이었고 그는 햇살이 침대 끝에 드리울 때까지 푹 자고 일어났다. 퇴사를 함으로써 몸은 엄청난 시공간의 자유를 얻었지만 마음은 처음부터 그 자유를 누릴만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의 일상은 차차 호기심에 기꺼이 지배당했던 이전의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곳저곳 뉘엿거리며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들을 엿보기 시작했다.


그는 안정적인 월급 대신 잠시 자유를 선택했다. 경제적인 압박이 너무 싫어서 대학교를 다니며 4,000시간 이상의 알바를 했던 그였기에 그 선택은 더욱 의미가 있어 보였다. 경제적인 안정과 현재의 자유가 공존하는 동화 같은 삶은 없으니까. 이는 지금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해서,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난다고 해서 바뀌지도 않을뿐더러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의 희생이 따르는 불가항력적인 삶의 논리이다. 그래도 그의 선택은 자본 대신 넉넉한 자유였다.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은 자고 남은 16시간 중 80~150%를 돈을 버는데 시간을 소진해야 하는 유복한 삶을 잠시 포기했다. 나는 그런 그가 이제는 싫지 않다. 앞길이 캄캄하고 하루하루 불안한 그의 일부까지도 나는 좋다. 그는 바로 나 자신이고 내가 바로 건강한 언니에서 이모, 할머니가 되고 싶어 하는 그녀이다. 그를 싫어하는 나의 마음이 누그러들면서 그는 점차 자신감 있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일함을 포기하는 태도를 여전히 배워가고 있다. 수입이 없어서 불안하더라도 예전처럼 급급히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않는다. 직업이 없더라도 급급히 나를 포장하여 변명하지 않는다. 불안함 속에서 일어나는 충동적인 착취를 최대한 경계하고 있다. 가끔 우리 자신을 착취하는 또 다른 자아가 생기기도 한다. 또 다른 영혼이 깃들고 또 다른 공기에 휩싸인다. 내가 그를 싫어했듯이, 또 다른 나는 그를 부추기기도, 그를 괴롭히기도 하며 어떤 날에는 시답잖은 타인의 삶과 비교를 서슴지 않으면서 그를 초조하게 만든다. 우리는 서로를 싫어하기를, 좋아하기를, 부딪히기를, 또 응원하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해할 수 없어서 상처를 주기도, 혼자 남겨진 밤에 함께 있어주기도 한다. 우리를 인지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는 것은 존재의 의미를 눈치채지 못하고 인생을 허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관계는 우리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내가 나답게, 나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나를 지탱해주는 이팝같은 존재이다.


욕심 많은 사람은 어여쁜 관상을 가지기 어렵다. 다 가지려고 하는 욕심은 가장 먼저 못생겨지는 것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다행히 경제적인 안정과 넉넉한 자유 중 미련없는 양자택일을 하면서 그는 점점 예뻐지기 시작했고 나도 그의 선택이 적잖이 만족스럽다.


부디 자발적 가난을 선택했던 그 용감한 자유가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과 영감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이전 05화 아빠 그게 다 무슨 소리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