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mom part1
엄마: 상태가 아주 좋은 사과랑 아닌 사과가 있으면 뭐부터 먹을 거야?
나: 나는 안 좋은 사과 먼저 먹고 좋은 사과를 아껴먹을래.
엄마: 나는 좋은 것부터 먹으려고. 나중에 좋은 사과까지 변해서 안 좋게 되면 어떡해?
몇 살인지 잘 기억나진 않지만 그 날 이후, 나는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씩 더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맛있는 사과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본질이었던 나는 그런 대답을 했던 엄마가 부러웠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현실을 가늠해서 저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왜 나에게 산타가 없다는 걸 알려줬어?
엄마: 네가 12살쯤이었는데 산타가 있다면서 친구랑 자꾸 싸우는 거야. 나도 굳이 너의 세계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자꾸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게 되니까 이제는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지.
나는 꽤 늦게까지 산타가 있다고 믿었다. 이것까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친구들에게 틀렸다고 하면서 나의 주장을 고집했다고 한다. 그 세계관이 무너졌던 날은 외할머니 집에서 이불을 피고 자는 날이었다. 내 방에 들어가며 문을 쾅- 하고 닫는 제스처를 취할 수도 없고 어디 숨을 곳 하나 없는 무방비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불에 얼굴을 묻고 아침이 되도록 우는 것밖에 없었다. 지금도 약 10시간 가까이의 그 고통의 시간들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마 그 정도의 상실감은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고 내가 믿었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첫 경험이었으니까. 그때는 몰랐지만 엄마는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나를 주장하면 안 된다는 걸 가르치고 있었다.
나: 엄마는 우울할 때 있어?
엄마: 있지, 나는 혼자 있으면 그런 것 같아.
나: 어떻게 극복해?
엄마: 친구들 만나서 술도 좀 마시고 운동 좀 하고 하면 좀 괜찮아져. 너는?
엄마는 지극히 사교적인 엣프제 [ESFJ]이고, 나는 누구보다 독립적인 잇 팁[ISTP]이다. 엄마는 집에 혼자 있으면 우울해진다지만 나는 집에 혼자 있으면 너무 신이 나고 설렌다. 친구들을 만나서 엄마는 힘을 얻고 나는 반대로 에너지를 소진한다. 엄마가 우울함을 극복하는 방법이 나에게 딱히 도움되는 건 아니지만 엄마랑 이야기하고 나면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꼭 한 번씩 생각해보게 된다.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는 내가 가지지 못한 많은 능력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들어주는 타이밍,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방식,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되물어보는 것까지 언제나 대화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를 깨닫게 해주는 캐릭터라고나 할까. 구하지 않은 조언을 하지 않는 것, 내 생각을 일반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은 엄마에게 배운 대화방법 중 가장 값진 것이다. 이런 엄마를 너무 좋아했던 나의 마음은 훗날 권위의식에 유난히 거부감을 가지는 성향으로 발전하어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하기도 했다. 모든 어른이 엄마 같지는 않다는 것을 여기저기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
나: 처음엔 괜찮은 관계인 줄 알았는데 가까워지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나한테 뭔가를 가르치려고 해. "보통"이라는 단어를 적용시키지만 사실은 완벽한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 같아. 이건 이렇게 해야 되고 이건 이래서 안 되고라고 계속 뭔가를 가르치는데 나의 선생님이 아니야. 왜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지 모르겠어.
엄마: 무슨 제한이 그렇게 많대 그 사람은? 사람은 안 바뀌어. 날 바꾸는 게 더 쉽지. 적응하거나 포기하는 건데. 스트레스를 받거나 자신을 구기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잖아.
나: 이런 관계가 반복되다 보니 내가 부족한가 싶기도 하고 계속 주눅 들게 돼.
엄마: 자라온 환경이 달라서 생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어. 참느라고 하지 마.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야. 참지 말고 무시해.
내가 너무 지치고 힘들 때 그저 흘려보내도 되는구나. 사람들이 그러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러는 거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