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된장국을 끓이면 맛이 없었다. 육수를 따로 내어 끓이기도 하고, 주재료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끓여도 늘 밍밍할 뿐 맛이 없으니 자주 안 끓이게 되고, 자주 안 끓이니 더 못하는 음식이 되었다. 그러다가 오늘 끓인 된장국은 처음으로 아주 맛있다. 내가 끓인 된장국이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나? 너무 맛있어서 아주 만족스럽게 몇 번이나 더 가져다 먹었다. 평소와 다른 점은 그저 고춧가루 한 스푼뿐이다. 냄비에 물을 붓고(냄비의 반 이하로 물을 붓는다) 고춧가루 한 큰 술, 된장 두 큰 술을 넣어 불을 올렸다. 거기에 국물멸치 한 줌, 다시마 대여섯 조각을 넣었다(미리 육수를 내어 사용하면 깔끔하지만, 급히 끓일 때에는 초반에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우리면서 끓인다). 양파 한 개와 애호박 한 개를 한 입 크기로 잘라서 넣고 채소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두부 한 모를 한 입 크기로 잘라 넣고 한소끔 더 끓이면 완성이다. 매운 고추를 넣으려고 잘라 뒀는데, 이미 고춧가루 맛이 칼칼해서 고추는 따로 넣지 않았다. 다진 마늘이나 파를 넣어도 좋지만 오늘은 양파만 넣었다. 그런데 맛있다. 평소처럼 멸치액젓으로 추가 간을 하지도 않았는데, 오늘 사용한 집된장이 짰는지 간도 딱 맞다.
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국은 구색을 맞추는 용도로나 차렸다. 게다가 뜨거운 국은 더 좋아하지 않아서, 국이 어느 정도 식어야 숟가락을 몇 번 대곤 했는데, 오늘은 국에 코를 박고 땀을 흘려가며 먹었다. 아이들에게도 된장국을 권했는데, 둘 다 반응이 시큰둥하다. 한 명은 아예 입도 대지 않고, 한 명은 평소보다 맵지만 더 싱겁단다. 그럼 이 국은 싱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에게만 맛있는 국인가? 아니면 아침 볕이 좋은 시간에 두어 시간 등산을 한 뒤, 시장한 상태로 급히 끓여서 뜨거울 때 먹어서 그런 건가? 역시 시장이 반찬이었던 건가? 어떤 이유로든 지금까지 끓인 된장국 중에 가장 성공적인 맛이다. 된장국에 고춧가루 한 스푼을 넣고 팔팔 끓여 보시라.
요즘 사과가 정말 맛있다. 복숭아가 한 철 길게 맛있더니 이제 자취를 감추었고, 포도도 선도가 떨어진 느낌인데, 사과는 아삭아삭 신선한 느낌이 좋다. 아오리처럼 식감이 좋으면서 신맛이 적고 단맛이 강하다. 부사는 신맛이 너무 없다면, 요즘 사과는 새콤달콤한 맛에 식감까지 좋으니 아침에 한 통 가득 잘라도 모자라다. 우리나라는 과일만큼은 시시때때로 맛있는 종류가 끊이지 않고 나온다. 사과가 무르익어 갈 즈음에는 단감도 나올 거다. 단감을 한참 먹다 보면 대봉감이 나오고, 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겨울이 올 거다. 그리고 겨우내 신선한 귤을 먹을 수 있을 테다. 귤 한 박스를 살 때마다 이번 귤은 맛이 어떨까, 기대반 걱정반으로 수없이 개봉을 하다 보면 어느덧 해가 바뀌고 봄이 올 테다.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과일로 계절을 세어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