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미소리 Jul 22. 2024

수면부족에 운동부족인 날에는….

채소와 과일, 통곡물 위주의 식사를 하는 자연식물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했다. 특히 산책로 걷기를 좋아해서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을 속보로 걸었고, 과식을 했거나 몸이 찌뿌둥한 날은 2시간 남짓 걸어야만 한숨 돌렸다. 잠에도 매우 민감한 편이어서 숙면을 못 취하면 다음날 예민해져서 하루를 보내기가 버겁다 못해서, 하루를 거의 날리는 꼴이었다. 오늘이 딱 그런 조건을 갖춘 날이다. 어젯밤에는 근심 걱정할 일에 사로잡혀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이 오지 않으니 아예 일어나서 책을 펼쳤는데, 보던 책(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이 너무 재미있는 데다가 결말을 향해 달려가니,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끝까지 보았다. 이거 웬 걸,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에 감동적이라 이 책은 소문내야만 한다는 마음이 들면서, 남들은 이 책을 어떻게 보았는지 궁금했다. 결국, 타인이 쓴 서평과 독후감, 이 책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영화와 뮤지컬의 광고영상을 찾아보았다. 역시, 이렇게 좋은 책을 사람들이 가만 두었을 리 없다. 이 책을 모티브로 한 엄청난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피곤에 지쳐 떨어질 때쯤 잠들었는데, 그때 이미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하루의 생활이 온전할 리 없다. 낮잠을 자도 수시로 졸리고 정신이 쾌청하지 않다. 피곤한 생각에 산책을 건너뛸까 하다가, 비가 소강상태일 때 일단 나가고 봤다. 나가야만 정말 걷고 싶은지 아닌지 알 수 있고, 얼마나 걷고 싶은지도 알 수 있다. 막상 나가고 보니 느릿느릿하게나마 걷게 되고, 3킬로 정도 걷다가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지금이 7월의 한가운데를 이미 지난 시점이다. 덥고 습하고 생활하기 매우 불편한 계절의 중간이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해 보니 암울하기 짝이 없다. 더운 날씨를 못 견디니 여름도 싫고, 장맛비가 내려도 시원하지 않아서 산책도 힘들고 아토피까지 도져서 매우 갑갑했다. 자연식물식을 알기 전의 나는 무조건 산책을 해서라도 몸을 쾌적하게 해야만 했다. 강박적일 정도로 산책에 마음을 썼다. 산책을 통해 좋은 선물을 많이 받았지만, 산책을 할 수 없도록 무덥고 습한 여름은 양날의 칼처럼 더욱 피해 가고 싶은 계절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 잠도 못 자고 산책도 많이 하지 않은 날치고는 상당히 양호하다. 그나마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잠과 운동의 영향에 덜 민감해졌다. 잠과 운동, 음식 모두가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몸의 균형을 찾아가면서 한 가지 혹은 두 가지가 부족한 날이라 하더라도 (그 기간이 길어서는 안 되겠지만) 얼마간 견딜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밤에 잠을 잘 못 잤으니 아침에는 입맛도 없고, 과일을 손질할 엄두도 안 나고, 조금이라도 더 눕고 싶은 마음에 아침은 건너뛰었다. 점심에는 채소로 국물을 낸 미역국을 끓였다. 북어라도 좀 넣을까 하다가 자연식물식에 맞게 북어도 멸치도 넣지 않았다. 북어조차 넣지 않고 끓인 미역국은 처음이라 맛이 어떨까 궁금해하면서 끓였다. 미역을 30분 정도 불려서 빠득빠득 씻고 참기름 살짝 넣어 볶다가 물을 넣었다. 국물이 심심할까 봐 마늘과 양배추 심지를 (우려내는 용도로) 넣었다. 간은 멸치액젓(아직 멸치액젓은 사용한다)으로 하고 맛을 보았는데, 맛있다. 그전에 내가 알고 있던 미역국은 고기든 해산물이든 육수용 재료가 들어가야만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미역국은 충분히 깔끔하고 맛있다. 아이가 방학이라 카레를 볶아주고, 상추와 겉절이를 꺼내 상을 차렸다. 아침에 과일을 먹지 않은 게 아쉬워서 (공복에 먹는 과일만은 못하더라도) 간식으로 복숭아와 참외를 먹고 미니 단호박도 쪄서 먹었다. 저녁도 채소로 국물을 낸 미역국과 상추, 겉절이를 꺼내어 먹었다. 아이들은 삼치를 한 마리 구워 주었다.


자연식물식 13일 차인 오늘의 변화를 생각해 보자.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잤지만 아침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 이러다가 정말 얼마나 살이 빠질지 기대가 된다. 이전에 체질식을 하면서 이미 10킬로가 빠졌고 그 뒤에 몸무게가 멈췄는데, 자연식물식을 하면서 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감기약을 먹지 않았지만 감기는 완전히 떨어진 것 같다. 귀에서 올라오는 뾰루지도 이제 전혀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다 나았다. 눈의 이물감과 갈증 감소도 유지되고 있다. ‘그저 한 번 해보자.’ 마음먹고 시작한 자연식물식이 이렇게 여러 가지 변화를 가져올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제 13일 차인데, 벌써 즐거운 변화가 늘고 있다. 수면부족, 운동부족인 날에도 자연식물식이다.


*표지 사진: Unsplash의 Taylor Kiser

매거진의 이전글 오이 겉절이 담근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