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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May 12. 2022

무심히 무수한 변화

우리는 해가 뜨거나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별생각 없이 바라본다. 이때 해는 구름이나 안개에 가려져서 지평선에 낮게 걸린 빨간색 종이 갓을 두른 등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1 5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대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명이나 황혼은 우주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연극 무대라고   있다. 우리는  무대에서 아주 가까운 곳부터 아주  곳까지 배치된 경관을  따라가며 본다.(..) 호크니의 풍경화는 우리가 대개 멈추어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광경(새벽, , 나무, 지는 ) 실제로는 얼마나 끊임없이 움직이는지를 강조한다. 우리는  대상들을 정지된 스틸 사진처럼 오인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아마도 우리가  대상들을 풍경화로 기억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심지어 평상시 우리가 바라보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정지된 풍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영화에서 나무는  다루어지지 않는 주제다. 하지만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면 확실히 나무는 항상 움직인다.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과 이전 문장에  시간 사이에 나는 창밖을 흘깃 내다보며 산들바람을 맞아 움직이는 나무들을 보았다. 잎사귀는 바스락거리고 가지들은 흔들린다. 며칠,  ,  ,  년에 걸쳐 나무들이 성장하고 썩고 무성해지고 시드는  무수한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변화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의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p.145-146)



제비들이 돌아왔다. 나비를 닮은 제비 다섯 마리가 아파트 위 하늘을 난다. 봄이 깊어진 것이다. 최근 나는 입을 딱 다물고 싶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파고들고 싶지도 않아서 두고 보고 있다. 짐작은 간다. 한여름이면 빠져드는 고질적인 상태에 일찍 도달한 것 같다. ‘내’가 지겹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가치와 취향을 가지고 있고, 어떤 꿈을 꾸고, 하는 등의 그 모든 것들이 지겹다. 스스로에게 물려버렸다. 이럴 땐 책이나 영화, 이야기 속으로 도망쳐야 하는데 그마저도 잘 안 된다. 불편한 심기로 할 일을 미루며 시간만 축내고 있다.


나도 모르겠다. 몸을 낮추고 무색무취의 렌즈가 된다. 아이들과 나무와 꽃과 새와 하늘이 생동하는 것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아이들 주변을 알짱거린다. 그리고 자주 웃는다. 자고, 깬다. 데이비드 호크니와 마틴 게이퍼드가 쓴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를 읽는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기쁨을 느낀다. 이렇게도 하루가 살아지네. 소리 내어 웃는다. 지금껏 내가 인생을 별 노력도 없이 웃음으로 때워 왔음을 깨닫는다. "하하호호! 하하호호!” 검은등뻐꾸기처럼. 때마침 검은등뻐꾸기의 계절이다. 때론 “편안한 마음으로 별생각 없이” 무심하게, 또 때론 “아주 가까운 곳부터 아주 먼 곳까지 배치된 경관을 죽 따라가며” 호크니처럼  바라본다.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나는 어떤 무수한 변화들을 발견하게 될까? 궁금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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