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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정 Mar 30. 2018

큰 생명의 아들딸


엄마가 되고 난 후 어쩌면 나는 스스로를 직무유기 중인 신 (god)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아이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해 "내 책임"처럼 느낀다. 아이가 아프면, 내가 아이를 바이러스로부터 지켜주지 못해서 그런 것 같고, 아이가 반복적으로 칭얼대거나 울면,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아이가 밥을 잘 먹지 않는 것도, 체구가 작은 것도, 예민한 것도, 옷 입는 데에 까다로운 것도, 종이를 아껴 쓰지 않는 것도, 그 모든 크고 작은 일이 나 때문인 것처럼 느낀다.   


아이고, 애기가 손가락을 빠네. 지지야, 얼른 빼!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우리집 둘째 태율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어떤 분들은 실제로 아이의 손을 끌어당겨 손가락을 빼주기도 하시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아이의 좋지 않은 습관에 대해 나는 책임을 느낀다. 하지만 그간 나도 아이의 습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육아서적과 인터넷을 뒤져보고, 6개월 이전의 손빨기가 자신의 몸을 탐색하고 빠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상적인 발달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몇 번인가 공갈젖꼭지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빨다가 입 밖으로 빠져나가면 본인의 통제 밖인 공갈젖꼭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는 주로 잠이 올 때 손가락을 빨았는데, 손가락 빨기와 쓴맛을 연결하면 행동이 쉽게 소거된다고 하여 돌 이후 몇 번인가 아이의 손가락에 프로폴리스를 발라보기도 했다. 분명 내 입에는 쓴데 아이는 아무렇기 않게 손가락을 빨았다.


18개월쯤 되었을 때부터는 잠자리에 누우면 말로 설득을 했다. "태율이가 엄마손가락 (검지손가락)을 자꾸 빨아서 엄마손가락이 너무 아프대. 그리고 태율이가 장난감 가지고 놀던 손을 자꾸 입에 넣으면 태율이 입속으로 병균이 들어가서 태율이도 아야아야해."라고 말이다. 첫 일주일은 신기할 정도로 효과가 있었다. 그저 설명만 해주었을 뿐인데 아이는 엎드린 채로 두 팔을 엉덩이 옆에 딱 붙인 채 손가락을 빨지 않기 위해 애썼다. 참기 힘들면 그 상태로 몸을 뒤척이며 몇 바퀴쯤 굴러다니다 잠들었다. 초인적인 의지로 손가락 빨기를 끊었던 태율이는 열흘쯤 지나자 다시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더욱 세게.  


태.율.아! 손가락 빠는 건 좋지 못한 습관이야!

오늘 밤도 라윤이가 엄한 목소리를 하고 말한다. 두 아이를 가만히 바라본다. 여전히 손가락을 빠는 태율이와, 나의 목소리를 한 라윤이를 바라본다. 손가락 빠는 습관을 고쳐주지 못한 책임과 손가락 빠는 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너무 애쓴 나의 책임이 나란하다. 나는 그저 사랑을 주며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을 바라볼 뿐 그 어느 것도 나의 탓도 나의 덕도 아니다. 칼릴 지브란의 시가 떠오르는 밤이다.  



아이들에 대하여      - 칼릴 지브란  

그대의 아이는 그대의 아이가 아니다.

아이들이란 스스로를 그리워하는 큰 생명의 아들딸이니

그들은 그대를 거쳐서 왔을 뿐

또 그들이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는 있으나

그대의 생각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대의 아이들에게

영혼의 집까지 주려고 하지 말라.

아이들의 집은 내일에 살고 있으므로,

그대는 결코 찾아갈 수 없는

꿈에서 조차 갈 수 없는 내일의 집에.

그대가 아이들과 같이 되려고 애쓰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을 그대와 같이 만들려고 애쓰지는 말라.

큰 생명은 뒤로 물러가지 않으며

결코 어제에 머무는 법이 없으므로.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활 쏘는 자인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보다 멀리 날아가도록

그대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  

<예언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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