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프랑크푸르트 현지법인에서 근무할 때다. 모처럼 부활절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프랑스의 몽생미셸로 여행을 갔다.
프랑스는 독일과 달리 끝없는 평원 지형이었다. 낮고 완만한 구릉들이 넘실거리며 끝없이 이어졌다. 독일에서 늘 상 보던 그 흔한 산도 안 보였다. 드넓은 평원지대는 대부분 밭이며 이따금 나무가 간간이 서 있는 곳은 마을이었다.
사회사업가로도 유명한,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슈바이처 박사는 이런 평원지대를 두고 독일의 지형과 비교하여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는 평원지대가 많다. 낮은 구릉에 숨어서 쳐들어오는 적을 미리미리 대비해야 했다. 그래서 멀리서 적을 가늠할 수 있는 눈이 발달했다. 눈으로 보는 미술이 발달한 이유이다. 많은 미술가는 대부분 프랑스 태생이다.
반면 독일은 숲이 많다. 슈바르츠발트, 우리말로 검은 숲으로 부르는 지역이 있을 정도로 숲이 흔하다. 적을 방비하기 위해서는 숲 속에서 작은 소리도 감지할 수 있어야 했다. 귀가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귀로 듣는 음악이 발달한 이유이다. 유명한 음악가들은 거의 독일 태생이다.
슈바이처 박사의 관찰력은 참으로 놀랍다.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진다. 우리 가족은 눈에 보이는 경관이 생경하여 보이는 대로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나 이내 지쳤는지 꾸벅꾸벅 졸기에 바쁘다.
눈앞에 달려오던 차는 구릉에 가려 없어졌다가 어느새 불쑥 옆을 지나쳐버린다. 교통량은 많지 않았으나 구릉에 시야가 가려 차는 훨씬 위험했다.
어느새 달리던 나의 차 앞에 대형 컨테이너 차가 길을 방해하고 있었다. 차로는 달랑 2차선 길이다. 앞에 가는 차가 길을 내주지 않으면 추월할 수가 없었다.
나는 우측 깜빡이를 켜고 한 곁으로 비켜 주기 바랐으나 컨테이너 차는 규정 속도로 천천히 갔다. 깜빡이 신호를 넣고 달리기를 30~40분쯤, 나는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차선을 힐끔거리며 독립된 의지로 벗어나려고 애써 본다. 그러나 왼쪽이 빈 차선이면 구릉의 나지막한 고개를 만나고 고개를 지나치면 차가 마주 온다. 도저히 길고 육중한 트럭을 앞지르기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삐쭉 차 머리를 내밀다가 제자리에 오기를 수십 번, 그러다가 1시간 넘게 지났다. 목적지 몽생미셸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아무래도 숙소를 구하려면 어둡기 전에 빨리 가야만 하는데, 나는 초조하기만 했다.
그런데 갑자기 ‘화물차 운전사가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처음 가는 길, 위험한 길을 사려 깊게 짚어 주고 있는 인도자라면, 혹시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라면?’이라는 생각이 정말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부터 나를 억눌렀던 조바심은 눈 녹듯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방금 떠오른 생각을 가족한테 알려주었다. 가족들은 ‘정말 그럴지도 몰라’하며 모처럼 여행을 왔으니 천천히 가자고 하였다. 그때야 비로소 평원지대의 넓은 경관이 다시 나와 가족들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울거리며 구릉 사이로 차가 달리고 있었고, 색색이 다른 밭 풍경은 드넓게 퍼져 있었다. 이제껏 초조함으로 가득한 나의 마음이 환하게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때야 저 멀리 마을에 잎 떨어진 앙상한 나무에 겨우살이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모습도 보이고, 전형적인 프랑스 가옥들의 모습도 보인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여행하는 우리 가족은 ‘왜 진작 이런 기분을 몰랐을까?’ 하며 숙소 정하는 문제 등 하찮은 고민에 시간 보낸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여유 있는 깨달음도 잠시 나는 앞을 비집고 나갈 기회가 생기자 위험을 무릅쓰고 앞차를 추월했다. 이제 막 추월해서 여유롭게 운전하려던 그때, 구릉을 막 넘어서니 차 두 대가 험하게 부딪친 것이 보였다.
그리고 교통사고 현장을 조심조심 빠져나오니 얼마 안 가 비교적 높은 구릉의 언덕이 보이면서 그렇게 길었던 왕복 2차선 길은 여유 차선이 생긴 왕복 4차선 길이 되지 않는가!
조바심 때문에 나약한 인간인 나는 삶 자체를 담보로 위험스러운 곡예를 펼치고 있었다. 모든 것은 다 신의 손바닥 안에 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