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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Feb 24. 2024

Moon Safari : 수채화풍 일렉트로닉

by AIR (1998)


 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Air의 데뷔작 <Moon Safari>는 이름만 들어선 생소한 앨범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의 두 번째 곡 <Sexy boy>의 첫 부분을 듣는다면 누구나 '아! 이 음악!'하며 반가워할 것이다. 한 때 TV 예능에서는, 섹시한 분위기가 필요할 적마다 꼭 Air의 <Sexy Boy>를 틀었더랬다. 그 덕분인지 지금도 나는 어디선가 <Sexy Boy>가 흘러나올 때면 그 시절 예능 프로그램들을 떠올리곤 한다. 파블로프의 개가 따로 없다.


 내가 이 앨범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또한 어느 날엔가 보았던 TV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었다. 보통 <Sexy Boy>의 도입부와 1절 정도만 틀고 음악을 끊는게 공중파의 관례였는데, 그 날따라 유독 긴 시간 <Sexy Boy>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그런데 처음 들어본 <Sexy Boy>의 코러스 파트가 낯설면서도 흥미로웠다. ‘Sexy’랑은 거리가 있는 서정적인 멜로디가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희화화되고 남용되기만 그 이미지 뒤에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았다. 이런 궁금함이 사라지기 전에 돈을 써하는게 나의 장점이자 단점 이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내 손에는 <Moon Safari>가 들려있었다.


 뽁뽁이 속에 꽁꽁가려진 음반을 뜯고나서부터 음반의 마지막곡 <Le voyage de Pénélope>를 다 들을 때 까지, '의외'라는 두 글자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우선 자켓 앞면에 그려진 그림부터가 'Sexy'와는 거리가 1만광년 떨어진 묽은 수채화풍이었다. 곡 제목에 ‘Sexy’가 있다는 단순한 동기로 마구잡이로 <Sexy Boy>를 삽입했던 방송사들 덕분에 이런 부분에서조차 신선함을 느꼈다. 그리고 수록곡들을 쭉 들으며, Air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일종의 ‘Sexy 워싱'이 되어있던 나의 인식을 고칠 수 있었다. 앨범을 다 듣고 난 후 프론트 커버를 다시 보니, <Moon Safari>가 들려준 아름다움이 그대로 그려진 듯 했다.


 앞서 살짝 언급한 바와 같이 <Moon Safari>의 곡들은 서정적인 색깔을 담고 있다. 기계적이고 미래적인 멜랑콜리라고나 할까? 우수에 젖은 차가운 붓으로 그려낸 쉽고 예쁜 선율 같다. 신서사이저가 내는 인공의 소리로 자연스런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내려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목소리마저 보코더를 통과 시켜 기계의 소리로 바꾸었지만, 그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Remember Together Remember Forever’ 같은 단어들은 정말이지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은가?


 <Moon Safari>의 미적 성취는 그 뿐만이 아니다. 그림에도 여백의 미가 있는 것처럼, 음악에도 쉼표의 美, 비워둠의 美가 있다. <Moon Safari>에서는 ‘일렉트로닉 뮤직’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시끄럽고 채워진 사운드나, 조였다 풀었다가 터뜨리는 자극적인 구성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차분하고 몽글몽글한 사운드, 애간장만 녹이고 자제하는 구성을 만날 수 있다. 첫 곡 <La femme d'argent>를 들어보자. 중후반부 고조되는 탬버린 리듬에 ‘이제 터지겠구나'하다가 어느새 끝이난다. 터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긴 여운이다.

 물론 이런 조용하고 지적인 일렉트로닉 뮤직을 Air가 처음 개척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자 음악의 여명을 수놓은 명곡들은 댄서블함과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다 보면 된다. 토미타 이사오의 음악이나 반겔리스의 음악들을 들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Moon Safari>가 대단한 것은, 이미 자극적인 음악과 일렉로닉 뮤직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90년대 대중들을 상대로, 얌전한 전자 음악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누가 들어도 쉽고 이해할 수 있는 일렉트로닉 뮤직으로 일궈낸 대히트. <Sexy Boy>의 인트로만을 듣고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중량감 있는 성취이다.


Release Date  16 January 1998

Duration  43:35

Recording Location Around the Golf (Paris), Gang (Paris), Abbey Road (London)


===


    AIR의 프랑스어 발음은 [에르] 혹은 [에흐]이고, 멤버인 니콜라스 고댕, 장 베누아 뒹켈 듀오는 각각 건축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Moon Safari> 성공 전의 AIR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밴드였다. 그래서 저렴하고 낡은 전자 악기를 쓸 수 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이 사운드가 아이덴티티가 되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다. 니콜라스 고댕은 Sound on Sound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악기인 70년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구입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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