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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Mar 06. 2024

The Other Side of Abbey Road

by George Benson (1970)


 대학로 이음아트에 처음 발을 들인 것은 딱 스무 살 때의 일이었다. 어느 이른 밤, 대학로에 사는 친구를 돌려보내고 혜화역으로 가던 중이었다. 문득 마주친 파란색 ‘이음아트’ 간판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빨려들 듯 지하로 내려갔다.


 나무로 된 서가에 새 책과 헌 책, 음반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고, 조용한 음악과 앉을자리도 있었다. 좁은 공간임에도 알차게 꾸며져 있어, 그날 나는 좁은 어항이 호수인양 배회하는 금붕어처럼 몇 시간가량 그곳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담배꽁초와 광고 전단이 굴러다니던 길가를 지붕 삼은 지하서점 ‘이음아트’는, 그 시절 나의 둥지 같은 곳이었다. 어딘가를 배회하다가 잠깐 시간이 뜰 때 언제라도 들를 수 있는 쉼터였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샘을 숨기고 있어서라 했던가. 막 스물 나에게 대학로가 아름다웠던 이유는, 그 지하에 이음아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과 서점은 비슷하지만 다르다. 도서관은 공익적인 공간이지만 서점은 사익적인 공간인 것이다. 도서관은 공익을 위해 책을 사들이고, 보유한 장서를 널리 열람케 하는 데 치중한다. 부담 없이 많은 책을 찾아볼 수 있고, 그날 다 읽지 못하면 무료로 빌려올 수도 있다.

 반면 서점은 어쨌든 책을 팔아야 생존할 수 있다. 이 책이 좋아요 저 책이 좋아요 손님에게 알려주어야만 한다. 때문에 각 서점마다 베스트셀러니 스테디셀러니 이름을 붙여 책을 큐레이션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매대'라는, 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진열장이 배치된다. 어찌 보면 공간 낭비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다 확실하게 책을 어필할 수 있는, 영업을 위한 장소로서 확실한 역할이 있다. 매대 위를 채우는 건 서점의 간택을 받은 책들, 서점에서 팔고 싶은 책이거나 아무튼 팔릴 이유가 있는 책들이다. 매대라는 한정된 공간에 어떤 책들을 올릴 지, 그 판단으로 한 서점의 아이덴티티가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대학로 이음아트는 용기가 있었다. 작은 매대 위에 놓여있던 어려운 제목들, 낯선 그림의 표지들은 놓을 수 있는 용기 말이다. 그래 이런 게 독립서점이지.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었을 책과 음반들이 수두룩 빽빽이었다.

 시간이 나면 대학로에 들려 글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 이음아트에서는 음료도 팔았고 심지어 낮잠 자는 자리도 있었다. 하루 걸려 책 하나를 골랐고, 용돈을 아껴 밥을 굶어 책을 샀다. 그렇게 대학시절을 보내는 동안, 그 지하서점의 취향은 곧 나의 취향이 되었다.


 George Benson의 <The Other Side of Abbey Road> 역시 그 시절 이음아트에서 산 음반이다. 조지 벤슨은 우리나라에서는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라는 곡을 부른 것으로 유명하고, 가수로 분한 본인도 보컬에 꽤나 욕심이 많은 편이었지만, 어쨌든 조지 벤슨 그는 뛰어난 재즈 기타리스트였다. 그냥 뛰어난 것만이 아니라 기타로 재즈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연주가였던 것이다.

 <The Other Side of Abbey Road>는 그런 조지 벤슨의 초창기 앨범이다. 1943년생인 조지 벤슨이 20대에 낸 앨범이니, 떠오르는 젊은 신예 조지 벤슨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흥미로운 앨범이기도 하다. 앨범에 참여한 다른 세션들의 이름도 꽤나 쟁쟁한데, 훗날 Fourplay를 결성하는 Bob James, 재즈 명반에 감초처럼 등장하는 명 트럼페터 Freddie Hubbard에 더해, 이미 <Maiden Voyage>로 거장이 되어버린 Herbie Hancock의 크레딧도 눈에 띈다.

 이들이 모여서 당대 최고의 대형 밴드 The Beatles의 <Abbey Road>를 재해석했다. 결과는 사뭇 흥미롭다. 리드를 맡은 조지 벤슨을 철저히 주인공으로 두는 가운데, 뜻 밖에 스트링/브라스 앙상블이 큰 그림을 이룬다. 서정적인 배경 아래 비밥 시대 역전의 용사들이 차담을 나누는 듯 여유로운 연주를 펼친다. 그러면서 슬쩍슬쩍 각자의 색깔이 내비치는데, 이 또한 각별하게 느껴진다. <Oh! Darling>과 <I Want You>에서는 조지 벤슨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진작부터 보컬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The Other Side of Abbey Road>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이음아트 생각이 난다. ‘Abbey Road의 반대편'이라는 앨범 제목에서, 혜화역 1번 출구 앞의 번화함을 거부하고 지하에서 꽃을 피우던 그 서점을 연상한다. 그 서점은 파산 등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금도 형태를 바꾸어 아직 대학로에 자리하고 있다 한다. 조만간 그곳에 다시 가볼 생각이다.


Release DateJune, 1970

Duration22:29

Recording DateOctober 22, 1969 - November 5, 1969

Recording LocationVan Gelder Studios, Englewood Cliffs, NJ


===


- 이 앨범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The Beatles의 <Abbey Road>은 <The Other Side of Abbey Road>가 나오기 불과 1년 전인 1969년에 발매되었다.

- 왠지 이 앨범은 Abbey Road Studio에서 녹음되었을 것 같지만, 실은 명 엔지니어 Rudy Van Gelder의 Van Gelder Studio에서 녹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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