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현식 (1990)
2010년 어느 날, 나는 《김현식5》 앨범을 만지작거리다 크레딧에서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어. ‘송홍섭’이라는 세 글자. 당시 경험과 지식이 일천했던 나는, 그 분의 존함을 그저 ‘우리 선생님’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고, ‘와 선생님께서 이런 앨범에도 참여하셨나?’하고 들떠버렸어.
그 다음 번 송 선생님의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는 선생님에게로 달려갔지. 그리고 같이 가지고 간 《김현식5》를 들이밀며 물었어.
“혹시 선생님께서 이 앨범 작업하셨나요?”
송 선생님은 말 없이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어. 와 진짜였구나. 우리 선생님 대단한 분이셨네? 속으로 감탄한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라서 그만 이상한 말을 내뱉고 말았어.
“사운드가 엄청 웻(Wet) 했어요”
요컨데 ‘웻 Wet’하다는 말은 이펙터, 특히 리버브나 딜레이 등이 많이 걸려있다는 뜻이었는데, 새파랗게 어린 놈이 건방지게 저런 말을 했으니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그런데도 송 선생님은 씨익 웃으시며
“그 땐 그랬어~”
하셨어. 시간이 흘러 나는 송홍섭 선생님의 전설과도 같은 경력을 알게 되었지. 특히 ‘김현식이 송홍섭의 말만은 잘 들을 정도로 그를 존경했다.’ 등의 에피소드들을 접했을 때는 부끄러움에 홀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네. 그 뒤로 지금까지도, 나는 가끔씩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불에다 냅다 발길질을 날리곤 해.
《김현식5》는 가수 김현식에게 있어 진정한 의미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할 수 있어. 〈내 사랑 내 곁에〉가 수록되어 유명한 《KIM HYUN SIK VOL.6》은 미완성이었다가 김현식의 사후에 비로소 발매된 앨범이기에, 《김현식5》야말로 그의 생애 최후의 음반이라 하겠다.
완성도 면에 있어서도 《김현식5》는 〈비처럼 음악처럼〉이 실린 《김현식 III》와 함께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최고를 견줄 수 있을 듯 해. 다만 나는 《김현식 III》가 최전성기를 대표하는 화려한 앨범이라 생각하면서도, 생명을 갈아넣어 만든 듯한 《김현식5》에 어쩔 수 없이 더 마음이 쓰여.
커리어 후반기의 앨범임에도 《김현식5》의 노래들은 원숙해지기보다 거칠어진 노래, 깨끗해지기보다 때가 묻어 있는 음악들로 채워져 있어. 극도로 나빠진 건강 탓에 망가진 것은 그의 목소리 뿐만이 아니야. 수록곡들을 듣다보면, 보컬을 비롯해서 드럼, 기타, 모든 악기들이 김현식을 따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지. 편곡과 연주, 녹음, 믹싱 마저도 쓰러져가는 김현식에게 맞추어져 있는 듯 해. 내가 《김현식5》을 유독 많이 듣고 또 많이 슬퍼했던 것은, 청자를 흡인하는 그러한 사운드적 일체감 때문이야. 아무 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엔지니어였던 나에게도 들린 그 웻 Wet 함은, 흡사 김현식이 품었던 처절함을 은유했던 것만 같아.
《김현식 5》는 아픈 김현식이 만들어낸 아픈 앨범이야. 하지만 그런 흉진 앨범의 곳곳마다 아름다움 또한 스며들어 있어,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만들어. 잠이 들면 아름다워지는 도시의 모습을 노래한 〈도시의 밤〉이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복해지자는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 같은 곡들이 그러하지. 김현식의 술버릇과 자유로움에 지쳐 이혼한, 그런 아내가 김현식의 삶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부탁하여 불렀다는 마지막 곡 〈할렐루야〉의 사연도 가슴 시리다. 정작 김현식은 종교가 없었다고 해.
아카데미 시절 내 철 없던 물음에 ‘그땐 그랬어’ 하신 송홍섭 선생님의 말씀에, 말로 설명 할 수 없을 많은 사연들이 있었으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볼 뿐이야. '그랬다'는 말을 추억하며 《김현식5》가 오늘날까지도 어두움으로 찬란히 빛나는 까닭을 조용히 곱씹어 본다.
김현식 사후 《KIM HYUN SIK VOL.6》 뿐 아니라 《Self Portrait》를 비롯한 각종 컴필레이션, 트리뷰트 앨범이 지속적으로 발매되었다. 이제는 그의 생전 앨범보다 사후 앨범이 더 많아진 듯 하다.
김현식의 아내는 이혼 후 김현식과 오히려 친하게 지냈다고 하고, 그가 죽기 1년 전에는 동거를 하는 등 관계를 회복했다고 전한다. 아들 김완제는 2014년 김현식 24주기 콘서트 이후 사기 관련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고, 김현식의 잔여 저작권을 모두 처분 조치하는 등의 논란을 겪었다.
Release Date March 1, 1990
Duration 35:20
Recording Location Seoul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