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AIR (1998)
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 Air의 데뷔작 《Moon Safari》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제목일 수 있어. 하지만 이 앨범의 두 번째 곡 〈Sexy boy〉의 첫 부분을 듣는다면 누구나 '아! 이 음악!'하며 반가워할거야. 한 때 TV 예능에서는, 섹시한 분위기가 필요할 적마다 꼭 Air의 〈Sexy Boy〉를 틀었더랬지. 그 덕분인지 지금도 나는 어디선가 〈Sexy Boy〉가 흘러나올 때면 그 시절 예능 프로그램들을 떠올리곤 해. 파블로프의 개가 따로 없달까.
내가 이 앨범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또한 어느 날엔가 보았던 TV프로그램이 계기가 되었어. 보통 〈Sexy Boy〉의 도입부와 1절 정도만 틀고 음악을 끊는게 공중파의 관례였는데, 그 날따라 유독 긴 시간 〈Sexy Boy〉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더라. 그런데 처음 들어본 〈Sexy Boy〉의 코러스 파트가 낯설면서도 흥미로웠어. 인트로를 넘어가자 ‘Sexy’랑은 거리가 먼 서정적인 멜로디가 나타났던 거야. 희화화되고 남용되기만 그 이미지 뒤에 무언가 더 있을 것만 같았지. 이런 궁금함이 사라지기 전에 돈을 써하는게 나의 장점이자 단점 이었고, 얼마지나지 않아 내 손에는 《Moon Safari》가 들려있었어.
뽁뽁이 속에 꽁꽁가려진 음반을 뜯고나서부터 음반의 마지막곡 〈Le voyage de Pénélope〉를 다 들을 때 까지, '의외'라는 두 글자가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어. 우선 자켓 앞면에 그려진 그림부터가 'Sexy'와는 거리가 1만광년 떨어진 묽은 수채화풍이었지. 곡 제목에 ‘Sexy’가 있다는 1차원적 동기로 마구잡이로 〈Sexy Boy〉를 유용했던 방송사들 덕분에, 이런 부분에서조차 신선함을 느꼈어. 그리고 수록곡들을 쭉 들으며, Air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일종의 ‘Sexy 워싱'이 되어있던 나의 인식을 고칠 수 있었지. 앨범을 다 듣고 난 후 프론트 커버를 다시 보니, 《Moon Safari》가 들려준 아름다움이 그대로 그려진 듯 했어.
앞서 살짝 언급한 바와 같이 《Moon Safari》의 곡들은 서정적인 색깔을 담고 있어. 기계적이고 미래적인 멜랑콜리라고나 할까? 우수에 젖은 차가운 붓으로 그려낸 쉽고 예쁜 선율 같아. 신서사이저가 내는 인공의 소리로 자연스런 인간의 감정을 표현해내려한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목소리마저 보코더를 통과 시켜 기계의 소리로 바꾸었지만, 그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Remember Together Remember Forever’ 같은 단어들은 정말이지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니?
그림에도 여백의 미가 있는 것처럼, 음악에도 쉼표의 美, 비워둠의 美가 있어. 《Moon Safari》의 미적 성취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지. 이 앨범에서는 ‘일렉트로닉 뮤직’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시끄럽고 채워진 사운드나, 조였다 풀었다가 터뜨리는 자극적인 구성을 찾아볼 수 없거든. 대신에 차분하고 몽글몽글한 사운드, 애간장만 녹이고 자제하는 구성을 만날 수 있어. 첫 곡 〈La femme d'argent〉를 들어보자. 중후반부 고조되는 탬버린 리듬에 ‘이제 터지겠구나'하다가 어느새 끝이 나. 터지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여운이 길지.
물론 이런 조용하고 지적인 일렉트로닉 뮤직을 Air가 처음 개척한 것은 아니야. 오히려 전자 음악의 여명을 수놓은 대다수의 명곡들은이 ‘댄서블’과는 거리가 멀었어. 토미타 이사오의 음악이나 반겔리스의 음악들을 들어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Moon Safari》가 대단한 것은, 이미 자극적인 음악과 일렉로닉 뮤직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90년대 대중들을 상대로, 얌전한 전자 음악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이야. 누가 들어도 쉽고 이해할 수 있는 일렉트로닉 뮤직으로 일궈낸 대히트. 〈Sexy Boy〉의 인트로만을 듣고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음악이야.
AIR의 프랑스어 발음은 [에르]이고, 멤버인 니콜라스 고댕, 장 베누아 뒹켈 듀오는 각각 건축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AIR는 《Moon Safari》 성공 전에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밴드였다. 그래서 저렴하고 낡은 전자 악기를 쓸 수 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이 사운드가 아이덴티티가 되었으니 전화위복인 셈이다. 니콜라스 고댕은 Sound on Sound와의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돈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저렴한 악기인 70년대 아날로그 신디사이저를 구입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Release Date 16 January 1998
Duration 43:35
Recording Location Around the Golf (Paris), Gang (Paris), Abbey Road (Lon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