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ystem of a down (2005)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며 스스로 정한 룰이 있어. 아티스트 당 하나의 앨범만 다룰 것. 하지만 SYSTEM OF A DOWN(이하 SOAD)의 대표작으로 《MEZMERIZE》를 꼽지 않을 수 없고, 《MEZMERIZE》를 소개하며 《HYPNOTIZE》를 빼놓을 수도 없으니, 결국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규칙을 깨려 해.
SOAD를 처음 접한 것은 중학생 때 PC통신을 통해서였어. 록 음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포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꽤나 핫했던 밴드였던 것으로 기억해. 저작권 개념이 희박했던 때라, 누군가 데뷔 앨범 《SYSTEM OF A DOWN》의 곡들을 버젓이 올려뒀었지. 전화요금을 걱정하며 조마조마 받아 들었던 〈Sugar〉에 대한 첫인상이 생생하네. Metallica와 Nirvana로 단련된 락돌이었던 나에게도 〈Sugar〉는 퍽 이상하고 변칙적인 음악이었어. 덕분에 내 윈앰프 플레이리스트에서 〈Sugar〉는 빠르게 삭제되었지.
내가 다시 SYSTEM OF A DOWN을 만난 것은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어. 그들의 두 번째 앨범 《Toxicity》가 나왔고, 음악 좀 듣는다 하는 이들이 그들의 음악을 피하는 게 더 힘든 일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어. 나 또한 깊은 인상을 받아서 《Toxicity》를 구입하였고, 고등학교 다니던 내내 그 음반을 즐겨 들었지. 명곡과 명연이 즐비한 그 음반을 반복 청취하며, 나는 《Toxicity》야말로 밴드의 최고점일 거라 섣불리 확신했어.
그러고 나서 몇 년 뒤 내가 대학생이 되고나니, 이른바 ‘뉴메틀’이라고 싸잡아 부르던 음악들의 기세가 꺾이더라. Linkin Park 같은 밴드들이 사라져 가는 장르의 마지막 불꽃을 발하고 있었지만, 어쨌든 트렌드는 빠르게 바뀌어가고 있었어. 그러한 까닭으로 나 역시 SOAD의 신보 소식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 직전에 나온 《Steal this album!》의 퀄리티가 나빴냐 하면 그렇진 않았지만, 결국 《Toxicity》의 부산물 같은 앨범이었던지라 역으로 《Toxicity》만 돋보일 뿐이었어. SOAD가 그 대단했던 《Toxicity》의 수준을 뛰어넘는 앨범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하고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실은 나는 이 앨범을 사지 않으려 했어. 《Toxicity》가 이들의 최고작이며, 이 이상 이들의 앨범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으리라 감히 생각했었던거야. 한데 내 동생이 무슨 일인지 이 앨범 《MEZMERIZE》를 사오더라. 이 녀석이 웬일로 CD를 다 사 왔나. 하필 뭘 이런 걸 사…. 속으로 생각하며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어. 인트로인 〈Soldier Side〉가 끝나고, 〈B.Y.O.B〉가 터져 나오는데, 내가 지금 뭘 들은 건지 어안이 벙벙했어. 그 뒤로는 놀라움의 연속이었지.
당시 유행하던 포스트 펑크적인 댄스 리듬(요즘엔 이 때의 흐름을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이라 부르더라)을 차용한 〈Revenga〉, 〈Violent Pornography〉 같은 곡들도 있었고, SOAD 특유의 코믹함이 돋보이는 〈Cigaro〉, 〈Radio/Video〉 같은 곡도 인상적이었지. 팝펑크적인 어프로치마저 들리는 〈Old School Hollywood〉에 이르자 나는 혀를 내둘렀어. 매너리즘을 돌파하기 위해 타 장르의 요소를 받아들이려는 시도는 모든 밴드가 으레 해오던 것이지만, 《MEZMERIZE》처럼 자신의 것을 잃지 않으며 혁신을 완성한 경우는 드물었으니까. 거기다 이 정도로 완성도 높은 앨범이 나오는 것은 특히 희귀한 케이스였지.
놀라운 사실은 또 있었어. 그 해 11월에 《HYPNOTIZE》라는 앨범이 나올 것이며, 이 앨범은 《MEZMERIZE》와 동시에 제작하고 있는 사실상 같은 앨범의 반쪽이라는 기사를 읽은 거야. 마스터피스에 사족이 붙는건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했지. 하지만 발매시기가 고작 반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SOAD를 믿어 보기로 하면서, 그 해에는 《HYPNOTIZE》을 기다리며 여름을 났던 것 같아.
《MEZMERIZE》 때와는 다르게 나는 예약까지 걸어가며 《HYPNOTIZE》를 구입했어. 집에 와 케이스를 《MEZMERIZE》 옆에 꽂아보니 뭔가 어색하더라. 가만히 보니 CD케이스의 스파인 부분, 책으로 치면 책등에 해당하는 그 부분에 《MEZMERIZE》라는 제목의 방향이 거꾸로 되어 있었어. 두 음반을 나란히 놓고 가만히 보다, 커버 아트의 얼굴 방향도 위아래가 서로 반대인걸 알아차렸지. 호기심에 《MEZMERIZE》를 《HYPNOTIZE》처럼 똑바로 뒤집어보았어. 그랬더니 《HYPNOTIZE》 앨범에 의미 없이 한번 더 접힌 것 같은 면이 《MEZMERIZE》의 케이스에 쏙 하고 꼭 맞게 들어가는거야. 유레카! 두 음반의 케이스는 처음부터 더블 앨범으로 ‘합체’시킬 수 있는 구조였던 거지. 하나의 앨범을 나눠 파는 ‘상술’은 자주 보았던 듯한데, 이건 정말로 하나이자 둘로 ‘완성’된 앨범이었달까. 나는 이런 걸 전에도 후에도 다시 본 적이 없어.
쌍둥이 앨범답게 《HYPNOTIZE》는 《MEZMERIZE》 못지않은 좋은 음악들을 담고 있었어. 인트로 없이 ‘가격’ 당하게끔 시작하는 〈Attack〉을 필두로, 〈Dreaming〉, 〈Kill Rock’n Roll〉 같이 전작을 연상케 하는 곡들이 이어졌지. 〈Dreaming〉, 〈Hypnotize〉, 〈Holy Mountains〉 같이 몽환적인 테이스트를 가미한 넘버들도 눈에 띄었어. 〈Vicinity of Obscenity〉에서는 여전한 그들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었고. 이 곡에 꽂혀서 한동안 동아리방에서 친구들과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테라코타 바나나 테라코타 테라코타 파이’ 하는 후렴을 주문처럼 외웠던 기억이 나. 아마 미친 사람들처럼 보였을 거야.
전작 《MEZMERIZE》가 고요 속에 폭탄처럼 떨어진 앨범인 것에 반해, 《HYPNOTIZE》의 불길은 전작의 후폭풍 안에 머물러 있었어. 하지만 나는 《HYPNOTIZE》 역시 굉장히 훌륭한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만약 두 앨범의 발매 순서가 반대였다면 《HYPNOTIZE》가 지금 《MEZMERIZE》의 지위에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이 두 작품들로 인해 뉴메틀이라는 애매한 기표에 비로소 기의가 깃들었다고 봐. 《MEZMERIZE〉의 인트로였던 〈Soldier Side〉가 당당히 하나의 곡으로 아웃로를 장식하는 부분에서는 장엄함마저 느껴지지. 뉴메틀 시대의 종언곡이라 할만한 이 곡을 들으면, 가까운 미래에 뉴메틀이 재조명받게될 시점을 상상해 보게 돼, 그때가 되면, ‘뉴-뉴메틀’의 코너스톤으로 이 음반들을 추천하고 싶다. 정말 즐거울거야.
《MEZMERIZE/HYPNOTIZE》에서는 전작들에 비해 기타리스트 Daron Malakian의 보컬 지분이 높다. 〈Toxicity〉와 비교하며 들어보면 재미있는 감상이 될 것이다.
《HYPNOTIZE》는 밴드의 공식적인 마지막 앨범이다. 이들은 2006년 이후 사실상 해체 상태였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공연 활동을 재개하였지만, 2024년에도 끝끝내 정규앨범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다.
Release Date May 17, 2005 / November 22, 2005
Duration 36:06 / 39:40
Recording Location Akademie Mathematique Of Philosophical Sound Research, Los Angeles CA, The Mansion In Laurel Canyon, Los Angeles, 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