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치 Mar 27. 2024

서울불바다 : 금기를 깨고 멘 총대

by 밤섬해적단 (2010)


금기를 깨고 멘 총대


 그날 나는 몸이 무척 좋지 않았어. 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었고, 클럽에 출근하는 5시 즈음에는 한기가 들고 어지러웠지. 전날에는 외국인 파티를 했고, 그 밤에는 밤새도록 기획 공연을 진행해야만 했어. 홍대 앞 모 라이브 클럽에서 일한 지 수개월만에 내 몸에 나타난 가역반응이었달까.

 홍대 라이브 클럽의 주말 밤은 길고 길어서, 금요일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 3시, 혹은 그 너머의 시간까지도 공연이 이어지지. 극한의 소음과 취기에 긴 시간 노출되는 일은, 더러 즐거웠지만 때로 고통스러웠어. 리허설을 진행하는 동안 타이레놀을 몇 알인가 삼켰던 것 같아. 어떻게든 버텨내리라…는 개뿔. 내 몸은 계속해서 지쳐갔지. 저녁 9시를 넘은 시점에서 나는 이미 한계를 느꼈어. 귀는 잘 들리지 않았고 담배연기에 목구멍이 찢겨나가는 것 같았지.


 문득, 내 앞에 놓인 16채널짜리 싸구려 믹서를 보았어. 그 클럽에서 몇 년인가를 마구 굴려진 콘솔이랬던가. 몇 채널인가가 듬성듬성 노브가 빠진 처량한 모습. 무대 위 밴드의 연주를 받아내느라 끝까지 치고 올라간 레벨 미터를 보며 흡사 콘솔이 내지르는 비명 같다고 생각했어. 고장난 믹서는 고쳐지는 대신 쓸모를 다할 때까지 소모될 것이고, 기능하지 못하는 그 순간 아무렇지 않게 버려지겠지. 가만, 그건 내 얘기잖아?

 결국 자정을 넘을 무렵, 정신이 혼미해진 나는 콘솔 데스크에 이마를 박고 엎드려버렸어. 바에서 술을 타던 동갑내기 동료가 건너와,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내 어깨를 흔들었지만 나는 듣지 않았어. 사장이 보건 말건 에라 모르겠다였지.


 밤섬해적단이 무대에 오른 건 바로 그때 즈음이었어. 쓰러진 내가 마이크를 열건 말건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었지. 시끄러운 드럼과 퍼즈 베이스가 울려 퍼지며 보컬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고래고래 괴성을 내뱉었어. 아 시작했구나. 슬쩍 고개를 든 순간.

 내 눈에 펼쳐진 풍경은 기괴했어. 웃통을 깐 맨몸의 베이시스트가 머리에는 하이바를 뒤집어쓰고 마이크를 집어삼킬 듯 광기를 발하고 있었지. 드러머도 만만치 않았어. 그는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채 벌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드럼을 문자 그대로 ‘때려 부수고’ 있더라고. 무대를 채운 멤버는 오로지 그 둘 뿐이었어. 그러더니 한 곡이 끝났지.


 액티브 엑스(Active X). 그것이 첫 곡의 제목이었어. 정신이 번쩍 들었지. 갑작스레 만난 멋진 밴드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의미로 자세를 바로 했어. 그리고 헤드폰을 썼다 벗었다 콘솔을 만지며 좋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집중했지. 그러나 이내 나는 그것이 무의미한 일임을 깨달았어. 밤섬해적단의 음악은, 클럽의 시스템이 담아낼 수 없는 무엇이었던 거야. 마이크를 키우던 줄이던, 컴프를 풀던 조이던, 클럽의비 설비는 그들이 내는 소리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어. 나는 하릴없이 데스크를 버리고 객석으로 내려와 춤을 추었지.


 이어지는 밤섬해적단의 공연은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었어. 밴드는 ‘그로울링이다 무섭지!’라고 제목을 읊조리고선 다음 순간 괴물의 언어를 포효했고, ‘지지대고개’를 찾으며 절규했어. ‘쓰러져 뒈질 때까지 X나 일하자!’ 라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내 몸의 아픈 기운도 사라져버렸지. 카타르시스의 뜻이 ‘배설’이라고 했던가. 그날 나는 내 안의 무언가를 정말 후련하게 배설했어.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살롱 바다비’에서 열린 레코드 폐허(레코드 페어가 아니야)에서 이 《서울불바다》를 발견하고 냉큼 집어 들었어. 당시 '비싼트로피'의 박정근 대표가 직접 앨범을 팔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앨범을 사는 나에게 엄지를 치켜들며 감사하다 말했던 것 같아. 일련의 힘든 시간들이 지나고 지금은 비싼트로피도, 살롱 바다비도 내 기억 속에만 남아있구나.


 다시 한참 뒤 어느 날, 친한 동생의 소개로 밤섬해적단의 드러머 권용만 씨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어. 그는 당시 ‘시네마지옥’이라는, 컬트 영화 상영 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나와 취향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주로 영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지. 물론 밤섬해적단 음악에 대한 추억과 감사도 전했고 말이야. 그런데 대뜸 그가 나에게 ‘예술 좋아하시는군요.’라며 웃어 보이는거야. 그는 내 찬사가 싫었던 거지. 또한 내가 좋아하던 일반적으로 ‘B급’이라 칭해지던 영화들도 싫었던 거야.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배척하고, 과감히 금기를 건드리던 밤섬해적단의 음악이 살짝 엿보이는 듯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밤섬해적단을 좋아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밤섬해적단을 싫어했다는 건 확실해. 앨범에 담긴 정치적인 메시지와 과격함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대부분일거야. 그러한 껄끄러움을 일으키는 것이 밤섬해적단이 탄생한 이유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들의 무슨 고차원적인 선동을 하려고 활동하진 않았을테지. 밤섬해적단은 반작용이었어. 이 사회에 여전히 만연한 ‘하지 말라는 것’에 대한 반작용. 그들이 남긴 이 불온한 음악은, 어쩌면 오히려 꼭 밤섬해적단이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음악이었어. 그렇다면 금기를 깨고 멘 그 총대에 대해서 이제는 평가해 주어야지 않을까? (밤섬해적단 그들은 내 이런 글도 싫어할 것 같아.)


 여의도를 이루기 위해 밤섬을 폭파한 일을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 그 사건은 의도적으로 잊혔다기보다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중요하지 않아 잊힌 것이지. 밤섬해적단의 음악도 마찬가지야. 그 음악이 나왔을 때, 그들에 대한 영화가 나왔을 때도 무슨 큰일이 날 것처럼 소동을 부리는 이들이 있었어. 그런 일들도 시간이 지나 보니 밤섬 폭파작전처럼 잊혀가는 듯해. 하지만 우리가 눈을 돌린 사이, 망가진 것만 같던 밤섬에는 들꽃이 피고 새가 날아들고 있다지. 밤섬해적단이 지나간 우리 인디 씬에도 그러한 봄이 찾아오리라 믿는다.


앨범 속지 마지막 장의 ‘사과 말씀’이 퍽 인상적이다. ‘전 트랙에 걸쳐 볼륨이 평등하지 못함. 이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표현하려는 (청자를 불편케 하는) 음악적인 시도임’

본문에서 언급한대로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라는 동명의 영화가 나와있다. 이 쪽은 다큐멘터리로, 밤섬해적단의 음악과 속칭 ‘박정근 사건’을 다룬 영화다.


Release Date    July, 2010

Duration    51:09

Recording Location    밤섬해적단 합주실, Fireball Studio

이전 27화 sound renovates a structur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