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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치 Mar 20. 2024

sound renovates a structure

by ASOTO UNION (2003)



 JYP 녹음실에서 새끼 엔지니어로 일하던 때의 일이다. 평소부터 이런저런 음악 이야기를 나누며 친하게 지내던 A&R인 K형님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다음 주에 윤갑열 씨가 기타 세션으로 오기로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이름을 듣자 내 마음에 작은 파도가 일었다. 그날 새벽엔 잠이 잘 오지 않았고, 나는 그가 기타를 친 아소토 유니온과 윈디 시티의 음반을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녹음 당일, 세션 분이 도착하셨다는 연락을 받은 나는 으레 그래왔듯 1층 입구로 향했다. 기타 세션들은 짐이 많았다. 기타 두 세대는 기본이었고 페달 보드와 각종 랙 장비에 이르기까지, 거의 이사하는 수준의 짐을 대동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때문에 나 같은 막내 엔지니어가 악기와 장비 옮기는 일을 도와야만 했다. 그런데 그날만은 달랐다. 입구 자동문 앞에서 만난 윤갑열 씨는 기타 한 대와 작은 가방 하나만 들고 나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왜 굳이 내려왔냐는 듯이.


 녹음실에 들어선 그는 기타를 꺼내 잡고는 빨간색 멀티 이펙터에 연결했다. 나에게도 익숙했던 Line 6 POD. 일명 ‘엉덩이’로 불리는 장비로, 당시부터 이미 한 세대 지난 기계로 여겨졌던 물건이었다. 거기에 페달 하나가 더 붙더니 세팅이 끝났다. 경험이 새파란 내가 보아도 참으로 단출한 구성이었다. 옆에 앉은 작곡가는 ‘잘 부탁합니다’ 말하며 ‘이거 괜찮은 건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녹음실에 자리한 다른 직원들들도 알게 모르게 초조해하고 있었다. 다른 세션들이 굳이 그 거대하고 무거운 장비들을 챙겨 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었다. 베이스 기타야 프리앰프만 있어도 충분하겠지만 기타리스트가 이렇게 짐이 적다니. 이 사람이 과연 그 아소토 유니온과 윈디시티의 윤갑열 씨란 말인가.

 모두의 반신반의 속에 녹음은 시작되고, 프리롤이 2마디 돌고 나자 몽글몽글한 기타 피킹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늘 듣던 여느 기타 세션들의 연주와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왠지 익숙하면서도 편안했다. 날카롭게 꽂히는 팝적인 맛은 없었지만, 분위기를 리드하며 리듬을 감싸 안는 따스함이 있었다. 끈적하면서도 훈훈한 윤갑열 씨의 연주에 우리의 불안도 어느덧 눈 녹듯 사라졌다.


 녹음하는 내내 나는 아소토 유니온의 음악을 처음 만나던 고2 때 그때를 추억했다. 그 시절 나와 우리 친구들은 모두 힙합에 절여져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서 ‘CB Mass는 내 친구!’를 합창하고 다녔고,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의 영어랩을 드디어 다 외웠다느니 서로 자랑을 늘어놓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어떤 잡지를 통해 아소토 유니온이라는 밴드가 앨범을 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평론가들의 극찬과 함께 최자와 개코 (다이나믹 듀오), 윤미래(T)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었다. 결국 소중히 모은 돈을 탈탈 털어 <sound renovates a structure>를 사고야 말았다.

 앨범을 산 다음 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CD 돌려 들었다. 시큰둥한 반응들이었다. 랩이 적고 연주곡에 가까운 음악들이 대부분이었으니, 우리가 즐겨 듣던 힙합 음악들과는 영 결이 달랐다. 심심하다는 평이 대다수였고, 나도 그렇게 들었다. 진작부터 음악을 좀 찾아들었다는 나에게도 <sound renovates a structure>는 꽤 어색한 음반이었다. 흑인 냄새가 나는 음반이었지만 본토 흑인 음악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생각했다. 심지어 섣불리 CD를 산 것이 살짝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다르게 나는 꽤 자주 <sound renovates a structure>를 챙겨 들었다. 묘하게 찾아 듣게 만드는 안정감 있는 음악이었다. 나를 일정한 박자로 흔드는 그 도회적인 그루브가 좋았다. <We Don’t Stop>과 <Make It Boogie> 같은 신나는 곡에서나 <Think About’chu> 같이 스무드한 곡에서나, BPM이 빠르든 느리든, 가랑비처럼 젖어드는 슴슴함이랄까? 자극적이지도 않은데 자꾸만 생각이 나는 중독성 있는 곡들이었다.


 아, 그래 원래 이런 연주를 하셨지. 이 분은 분명 내가 아는 그 윤갑열 씨가 맞구나. 내가 지금 그때 그분의 연주를 녹음하고 있구나. 모니터 위에서 넘실거리는 파형을 보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진짜 윤갑열 씨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


 녹음이 끝나고 나서 미리 챙겨 온 CD 2장을 수줍게 내밀었다. 하나는 윈디시티의 <Love Record>, 그리고 다른 한 장은 <sound renovates a structure>였다. 레코딩 엔지니어 일을 하며 처음으로 사인을 청했다. 윤갑열 씨는 활짝 웃으며 내 이름을 써주셨다. 제 아무리 유명하고 예쁜 연예인을 봐도 감흥이 없던 내 마음이 떨렸다. 이런 게 팬심이구나. 나는 이런 일을 하는 거였어.

 그 음반들은 지금도 내 책장에 꽂혀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sound renovates a structure>를 즐겨 듣는다. 표지에 그려진 사인을 만질 때마다 좋았던 옛날을 추억함은 물론이다.


Release Date    November 18, 2003

Duration    46:43


===


본 음반은 ASOTO UNION이 낸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다. <sound renovates a structure> 이후 밴드는 김반장이 주축이 된 Windy City와 임지훈이 주축이 된 Funkafric Booster로 양분된다. 당시에는 아쉬웠지만, 이후 둘의 음악 행보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였던 듯하다.

글에서 내가 녹음했던 곡은 2PM의 <I’m sorry>이다. 궁금하신 분들은 들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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