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ㅇㅅ
꽃은 왜 소리 없이 피어나지? (brunch.co.kr)
나는 어릴적부터 비가 오면 운동화를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고 비를 맞으며 신나게 뛰어 가는 걸 좋아했다. 사실 처음엔 우산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면서 집에 뛰어 갔었다. 옷이 축축해 지는 것이 싫어서 더 빨리 뛰었었는데, 한 번 홀딱 젖고 나면 더 이상 비가 피할 대상이 아니라 신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교할 때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어떻게!'하고 걱정하지 않고 책가방을 비우고 실내화를 갈아신고 빗 속으로 첨벙 뛰어 들었다. 이렇게 비 오는 날에 대한 신나는 경험을 가진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비 맞는 날을 좋아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비가 오면 '비를 만져봐!' '비 만지러 나가자!'라며 우의입고 샌들 신고 우산 들고 빗 속으로 들어갔다. 감기 걸릴라 걱정하는 마음보다 빗 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춤출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멋지다고 생각하는 철 없는 엄마가 나다.
며칠 전 비가 신나게 내리던 날, 유치원에서 집으로 가던 중 은수가 우산을 접으면서 "엄마. 나도 풀처럼 비 맞으면서 걸을게."한다. "그래, 그러자!"
"엄마, 풀들이 비가 와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거 들려?" 은수가 물었다.
"풀들이 말을 해? 어떻게?" "아, 시원하다. 오늘은 참 좋은 날이야. 라고 풀들이 말하잖아. "
"풀들이 말하는 걸 어떻게 알아?"
"쑥쑥 자라잖아." 한참을 웅덩이에서 점프하면서 깔깔대던 은수에게 내가 "비가 많이 와서 행복해!라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아." 라고 하니 "엄마, 비가 많이 오면 안 행복해. 적당히 와야해."란다. "그래?" "응. 많이 오면 배불러서 이제 그만!"이라고 말할거야." "비가 오면 꽃도 행복하고, 나무도 풀도 행복하네. 좋은 날이네." "꽃은 안 행복해." "왜?" "꽃잎이 떨어지잖아." "아.." "엄마, 사람들도 행복해." "왜?" "무지개를 볼 수 있잖아." "어떤 사람들은 무지개를 보는 것보다 비가 와서 일을 잘 못해서 싫어할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비는 와야 해. 그런 사람들은 집에서 쉬면 되겠네. 유치원도 안 가면 되고. 싫으면 그냥 집에 있으면 되는 거야." "너는 행복해?" "응. 나는 비가 와서 아주 행복해." 라며 첨벙첨벙하고 젖은 양말에게 "양말아, 너도 참 시원하지?"라며 빗속에서 뛰어 다녔다.
꽃과 풀과 나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아이, 비가 오면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아이, 비가 오는 대로 좋은 점을 찾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행복해하는 은수를 보면서 나도 참 행복해졌다. 분명 행복은 전염성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시한 일상에서 기어코 행복의 요소를 찾아내어 즐기고 누리는 아이들이 꼭 필요하다. 아이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리가 지구에 온 이유가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즐겁게 이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과 함께 할 때면 단순한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참 좋다.
오늘도 비가 온다. 은수를 데리러 갈 때 샌들을 신고 첨벙첨벙 빗 속으로 뛰어가야겠다.
2023-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