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ㅇㅎ, 6살 ㅇㅇ, 3살 ㅇㅅ의 대화>
구례의 봄이 아름다워서 어떤 말로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일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히 서둘러 구례로 향했다. 가득찬 봄의 기운에 감탄하며 신나게 봄노래를 부르며 구례에 도착했다. 우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구례의 벚꽃 명소를 찾아갔다. 그곳은 예쁜 꽃 뿐 아니라 나무와 풀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놀이터와 솜사탕 가게가 있어서 오감을 누리며 편히 쉴 수 있었다. 한참을 놀고 먹다가 냇가의 다리를 건너는데 은호가 "엄마, 저기 시각 장애인 한 분이 계셔. 지팡이를 짚고 오시니까 잘 살펴 가야겠다."며 동생들에게 천천히 가라고 말했다. 우린 모두 그 분이 잘 지나가시길 바라며 천천히 걸어갔다. 저 멀리 그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다리의 끝에 다다랐을 때쯤 은호가 "엄마,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꽃이 피었다는 걸 알까? 어떻게 꽃구경을 하실까?"물었다.
그러자 은수가 "눈이 보이지 않아도 꽃이 피었다는 걸 알 수 있지!"라고 단번에 대답하더니 "모를 수도 있겠다."라며 생각에 잠겼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라 우리에겐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엄마가 보니 그 아저씨 표정이 행복해보이시던데. 꽃이 피었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 같긴 해." 은유는 "보이지 않아도 냄새를 맡을 수 있잖아. 꽃 냄새가 나면 꽃이 핀 거라고 생각할거야." 은수는 "만져보면 되잖아. 꽃아, 네가 피었는지 만져볼게 물어보고 만지면 될거야." "어디를 만져야할지 모를 것 같은데?" "옆에서 사람들이 꽃이 피었으니 나가서 느끼자고 하면 알 것 같아." "잠깐 눈을 감고 꽃이 어떻게 피는지 생각해볼까?" 어떻게 꽃이 피어나는지, 그 꽃을 어떻게 느끼는지 생각해보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놀이터로 향해 뛰어갔다.
'보지 못하는 사람이 꽃이 피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계속 생각하면서 꽃을 보고 있으니 내가 보는 꽃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언젠가 눈이 어두워져서 잘 보지 못하게 된다면 나는 꽃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지 생각해보니 아득해지는 마음이 든다. 그러면서 꽃을 보는 방법도 사람들마다 다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러 질문이 떠올랐다. 1살 은송이에게 꽃은 어떻게 보일까?, 병원에 누워있던 내 친구에게 봄에 피는 꽃은 어땠을까? 휠체어에 탄 친구는 꽃의 어떤 부분을 보고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처음 맞는 봄의 꽃은 어떨까?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 꽃구경이란 무엇일까? 각 사람마다 가진 이야기가 다른 것처럼 꽃을 보는 방법도 다를 거다. 직접 꽃을 볼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꽃을 향한 시선과 마음이 다를 거다. 아이의 질문으로 '역지감지'를 경험한 것 같다. 상대방의 입장을 서서 생각해보는 것이 역지사지라면, 역지감지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느낄지 생각하는 것인데 혐오와 배제가 늘어가는 요즘 시대에 꼭 필요한 것 같다. 그 사람이 되어 어떤 마음일지 상상해보는 것, 그리고 공감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한 걸음이 될테니까. 내 생각에만 갇혀 뽀죡하게 살지 않으려면, 둥글게 더불어 살아가려면 오늘의 아이들처럼 여러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궁금해지면 좋겠다. 아무래도 어른이 된 나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