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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캠브리파일 Sep 18. 2024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내 안의 달빛이 생기던 순간

제천으로 캠핑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오랜만에 한 템포 텐션이 오른 채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텐트 앞으로 흘러가는 계곡 물과 어느덧 벌레마저 사라진 10월의 쌀쌀함이 피부로 느껴지는 날이었다.

신나는 이 마음을 달래주다 보니 어느덧 새벽 한 시가 되었다. 이젠 더 이상 잠을 미룰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화장실을 다녀와서 잠을 자야지 생각하며 신발을 고쳐 신었다.


매너 타임 시간도 지나 캠핑장 불은 모두 꺼져 있고 저 멀리 보이는 화장실 불빛만 보였다. 이곳은 도로에서 꽤 떨어진 캠핑장이니 가로등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살짝 취기가 올라서 그런가? 분명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손전등을 켜고 걸어야 하는 이 공간이 불을 밝힌 듯 환한 것이었다.


나의 길을 밝힌 건 캠핑장의 불빛도, 도로의 가로등도, 손전등도 아닌 달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중천에 뜬 보름달은 가로등을 밝힌 것처럼 밝았다. 60m가량 떨어진 화장실까지의 길이 모두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는 말이 소설 속에 나오는 문장이 아니라 실제로 겪을 수 있는 일이란 걸 말이다.


황홀함을 표현하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너무 밝아 숲을 밝히고 있는 달이 신기해서 목이 빠지도록 달을 바라보았다. 혼자 보기 아까워 언니를 데리고 나와 달을 가리켰다. 세상에 이렇게 밝은 달을 본 적이 있어? 언니도 없지? 우리 이런 거 진짜 난생처음 보는 거 맞지? 달이 어쩜 이렇게 밝을 수 있어?


이 경이로움에 하고 싶은 말은 목구멍에 차고도 넘쳤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목이 빠지도록 달을 볼 수밖에 없었다. 나를 홀리는 듯한 저 달빛이, 달빛에도 걸을 수 있을 만큼 밝은 저 빛이 내 안에 무언가를 깨우는 느낌이었다.


아마 희망이었던 것 같다. 밝은 저 달빛에 나는 희망을 느꼈다. 자고 일어나면 나의 하루는 완벽하게 달라질 것만 같았고, 나를 옥죄는 모든 걱정과 고난과 시련이 사라질 것 같았다. 정말이지 경이로운 달빛이었다.


아주 깜깜한 제천의 어느 계곡에서 우린 달빛에도 걸을 수 있었다. 내 인생에 깜깜한 어둠이 와도 내 안의 달빛이 나를 비춰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긴 어느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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