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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rabbit Oct 18. 2020

엄마라고 부른 날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속도를 지켜볼 뿐.

엄마들이 육아가 힘든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아기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대화를 주고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아기와 함께 있어도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낀다. 먼저 아기를 낳고 기른 친구는 말이 너무 고파서 하루 종일 집에 라디오를 틀어놓고 살았다고 한다. 한 번은 사연을 보내서 읽히기도 했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육아휴직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기를 낳으면 책도 읽어주고, 그림도 같이 그리다 보면 심심할 틈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기는 상상한 것보다 천천히 자랐고, 몸의 성장 속도보다 말이 트이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아기를 낳고서야 알았다.


키키가 처음 ‘엄마’라고 한 순간을 기억한다. 너무나 순식간에,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온 소리에 내 귀를 의심했다. 음마라고 한 건지, 어마라고 한 건지, 엄마라고 한 건지 정확하지 않은 그 소리의 음가를 더듬었다. 분명 ‘마’라는 음가를 말했는데, 그것이 맘마인지, 마마인지, 엄마인지 알아차리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남편은 아기를 돌볼 때면 늘 ‘아빠, 따라 해 봐. 아빠’라고 말하곤 했다. 아이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눈으로 말똥말똥 아빠를 쳐다봤는데, 어느 순간 ‘아빠’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얼른 핸드폰을 꺼내 영상으로 남겼고,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말했다고 신나 했다. 사실 엄마는 훨씬 전에 말했는데, 영상으로 찍지 않았을 뿐인데 싶어서 괜히 남편이 괘씸했다.


키키가 ‘엄마’하는 영상을 남기려고 아이 입만 보고 있는데 막상 찍으려니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엄마, 엄마, 따라 해 봐, 엄마.”하며 입을 열게 하려는데, 그럴수록 아이는 입을 앙 다무는 것 같았다. 문득 아이에게 괜한 스트레스를 주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말하고 싶을 때가 되면 어련히 할 텐데, 강요하듯 엄마를 외치는 내 모습이 못마땅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키키는 어느새 맘마, 까까를 외치며 엄마에게 원하는 것을 달라고 정확하게 말하는 아이로 자랐다. 동화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손짓하기도 한다. 말귀를 못 알아먹어 답답했는데, 이제는 같은 동화책을 무한 반복 읽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아기의 성장은 이다지도 놀랍다.


아이가 처음 엄마를 말할 때 느낀 경이로움과 감사함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이는 그저 자기 속도대로 잘 커주는 것만으로도 부모에게 더없는 기쁨을 주는 존재다. 뭘 더하라고, 자꾸 해보라고 요구하고 보채지 않으려 한다. ‘엄마’라고 불러준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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