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첫걸음마를 보며 80세 외할머니를 떠올리다.
아이 첫걸음마를 보며
80세 외할머니를 떠올리다.
처음 옹알이를 하고, 고개를 가누고, 뒤집기를 하고, 앉고, 서고, 걷는 그 모든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진심으로 기뻐서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그 감격의 순간을 사진으로 영상으로, 때로는 글로 남겼다. 가만히 누워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고, 원하는 방향으로 고개도 돌리지 못하던 아기가 자신의 힘으로 움직이고 이동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지,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아이를 키우는 즐거움 중 제일이었다.
키키의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며, 인간이 자라는 동안 얼마나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목을 가누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뒤집지 못하는 아기를 엎드리게 하고, 숨을 잘 쉬는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했다. 뒤집기를 시도할 때는 혼자 힘으로 넘어가기 어려워 손으로 받쳐줘야 한다. 앉을 때는 뒤로 나자빠지지 않는지, 소파를 잡고 설 때는 어디 부딪히지 않는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다. 걸을 때는 어떤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뒤뚱뒤뚱 쿵 하고 넘어지기 일쑤인 아기를 종종종 따라다니며 잡아주고 일으켜줘야 한다. 결코 인간은 혼자 안전하게 자라지 못한다.
아기가 이제 막 물건을 잡고 서고, 걸음마 보조기에 의지해서 걷던 모습이 생생하다. 걸음마 보조기에 두 손을 가지런히 얹고, 엉덩이를 뒤로 뺀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시골에서 유모차를 끌고 다니던 외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농사일을 하루도 쉬지 않은 외할머니는 허리가 90도만큼 굽어져 반듯하게 설 수가 없다.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망가진 유모차에 밭에서 캔 나물을 얹고, 엉덩이가 뒤로 쭉 빠진 채 유모차 바퀴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던 외할머니.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의 모습에서 팔순을 향해가는 외할머니가 겹쳐 보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고 한다. 엄마를 키운 외할머니는 이제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늙은이가 되었다. 이것이 삶의 순환일까. 내가 미처 걷지 못할 때 엄마가 나를 보살폈듯, 언젠가 엄마가 늙고 다리에 힘이 없어 도움이 필요로 할 때 나는 엄마를 돌봐야 할 것이다. 엄마가 어린 자식을 정성으로 보살폈든, 자식 또한 엄마에게 그 시간을 보답해야 하는 시간이 언젠가 올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누워서 삶을 시작해 앉았다가 일어나서 걷고, 다시 앉았다가 누워야 하는 삶을 살아가는구나 싶어서 괜히 마음이 찡하다.
세상 혼자 큰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가 나에게 해준 게 뭐 있냐고 생각하던 적도 있다. ‘너도 너 닮은 새끼 낳아서 키워 봐’라는 말은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대사다. 아기를 키우면 어른이 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려본다. 그 뜻은 아마 이런 걸 테다. 아기를 키우다 보면 내가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기를 상상해 보게 되고, 그 시간을 채운 부모의 시간과 노고를 생각하게 된다. 육아는 그래서 아이도 크지만, 부모도 크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