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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rabbit Oct 18. 2020

고양이와 함께 크는 아기

둘 사이를 지켜보는 즐거움

우리 집에는 남편이 결혼 전부터 함께 한 턱시도 고양이 나루가 살고 있다. 2014년 8월 14일에 태어난 나루는 어미젖을 떼고 10월부터 남편과 살았으니 그야말로 묘생 전부를 남편과 함께 한 셈이다. 어느덧 만 5세의 성묘가 된 나루는 나에게도 참 고마운 존재다. 조금 늦은 나이게 수험생이 되어 남자 친구를 1여 년간 솔로로 살게 만들었는데, 그때 나루는 남편 곁에서 친구이자 애인이 되어주었다.


숏컷도 롱컷도 아닌 중간 정도의 수북한 털을 자랑하는 녀석은 집안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긴다. 그야말로 털과 함께 하는 삶이다. 새하얀 신혼집 인테리어에 새까만 나루 털은 약방의 감초처럼 빠지지 않고 존재감을 과시했다. 매일 쓸고 닦아도 어쩔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그냥 ‘털이 보이지 않는다. 털이 보이지 않는다.’며 주문을 걸고 살다 보니 어느새 정말 그런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허나 출산을 앞두고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특히 어른들이 자꾸 물어보았다. 아기가 있는 집에 고양이가 괜찮겠느냐고. 남편은 열심히 청소를 하면 된다고, 오히려 어릴 때부터 털과 함께 하면 면역력이 길러진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아기 정서에 고양이가 얼마나 좋은가에 대한 일장연설을 늘어놓기 일쑤였다.


나 역시 크게 거부감은 없었다. 나루가 워낙 얌전하고 소심한 성격이고, 공격적인 성향은 아니기 때문에 잘 지켜본다면 아기에게 해코지를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출산이 임박해오면서 문득문득 불안감이 엄습했다. 뾰족한 발톱, 날카로운 이빨, 매서운 눈빛, 어마어마한 양의 털, 털, 털... 이 아기에게 미칠 해로운 영향에 대해서 말이다.


고양이랑 아기가 같이 살아야 하니 어떻게든 잘 적응하게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매주 동물농장을 챙겨보는 남편은 나루와 키키의 첫 만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먼저 나루의 원래 집사인 남편이 아닌 내가 아기를 안고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남편이 안고 들어가면 나루가 아기에게 질투심을 느낄 수 있다나. 또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기 때문에 나루의 공간과 아기의 공간을 명확하게 구분 지어 줘야 했다. 아기침대는 안방에 두고, 나루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저히 관리했다. 그럼에도 잠깐 사이에 아기 침대 펜스에 훌쩍 뛰어올라 곤히 자고 있는 아기를 들여다보는 나루를 볼 때면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아기와 고양이가 함께한 1년을 돌아보면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행복한 순간이 훨씬 많았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키키가 기기 전에 누워있기만 할 때 나루는 늘 아기 곁 30센티 거리에 자리하고 누웠다. 지긋이 바라보는 나루의 눈빛이 다정하고 몽롱하다. 아이가 허리에 힘이 생겨 혼자 앉을 수 있고 기기 시작하자, 술래잡기처럼 아기는 나루를 잡으러 무릎이 까매지도록 쫓아다녔다. 재빠른 나루는 잡힐 듯 잡히지 않으며 약을 올렸다. 어느새 혼자 걷기 시작한 키키는 나루 곁에 쉽게 다가가서 잠자고 있는 나루 꼬리를 꽉 잡기도 한다. 심장이 철렁. 어느새 아기에게 고양이를 조심히 다루는 법을 알려줄 때가 온 것이다.


아이에게 나루는 제일 가까운 친구이자 호기심 대상이다. 장난감을 손에 쥐고 나루에게 던지려고 할 때면 얼른 손을 잡고 “나루는 키키 친구예요. 이렇게 예쁘게 쓰다듬어 주세요.”하고 조막만 한 손을 나루 등에 가져다 댄다. 나루는 또 뭐가 좋다고 골골거리고, 턱을 내민다. 



5킬로 나루보다 작고 가벼웠던 아이는 이제 10킬로가 넘는다. 나루 몸의 2배다. 여전히 털은 집안 곳곳을 날아다니고, 밤마다 놀자고 우는 나루 소리에 화들짝 깨기도 하지만 고양이와 아기를 나란히 바라보는 순간, 그들의 사랑스러움에 그 모든 단점과 걱정은 사라진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아이가 나루와 많은 추억을 만들었으면 한다. 나는 그들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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