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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rabbit Oct 26. 2020

분리 수면 도전기

프랑스 아이처럼 분리 수면 가능할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지금 당장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할 것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9시간을 내리 자고 싶어요!"


출산 이후 양질의 수면을 한 기억이 없다. 적어도 두 번 이상은 아기 울음소리에 깬다. 아침에는 또 얼마나 일찍 일어나는지. 아기가 백일이 될 때까지 2시간마다 깨는 것은 기본이고, 수시로 아기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다. 아기가 태어나고 백일까지는 1~2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하는데, 백일 정도가 지나면 수유 텀이 3~4시간 이상으로 길어져서 엄마가 조금 편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아기 엄마가 기적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키키가 태어나고 아기 침대를 안방 침대 곁에 두었다. 아기 상태를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위해서다. 누운 자리에서 한 걸음이면 닿는 거리인데도, 깊은 밤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것이 무척 고됐다. 어느새 아기를 품이 안고 잠들기 시작했다.


나날이 성장하는 아이는 얌전히 자는 법이 없었다. 팔과 다리를 얼굴과 가슴에 거침없이 올리고, 360도 회전하며 침대 구석구석을 헤엄쳤다. 혹여나 아기가 침대에서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신경이 곤두선 채로 잠이 들었다.


"이건 아니다.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수면 부족과 만성피로로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졌다. 낮 동안의 육아가 끔찍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두 달째 거실에서 따로 자고 있었다.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때 '분리 수면'이 떠올랐다. 어디서 듣기론 프랑스 아이들은 태어난 지 3개월만 지나도 자기 방에서 혼자 잔다는데, 그 방법이 궁금했다.


<프랑스 아이처럼>이라는 책이 존재했다. 기자 출신 미국인 작가가 프랑스에서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며 알게 된 프랑스 육아법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읽는 내내 놀라웠다. 프랑스 아이들은 수면뿐만 아니라 식사예절, 생활방식 등 모든 면에서 엄청난 자제력을 보여주었다. 일단 분리 수면에 대해 찾아보니, 생후 4개월이면 모든 아기가 자는 중에 깨지 않고 12시간을 내리 잔다고 적혀 있었다.


방법은 이렇다. 아기를 낮에는 환한 곳에 두고, 밤에는 어두운 곳에 둘 것. 매일 잠들기 전 똑같은 루틴을 만들어 줄 것. 밤마다 칭얼대는 아기에게 곧장 달려가지 말고 잠깐 멈추고 기다릴 것. 아기는 스스로 다시 잠들 수 있는 힘이 있으니 그 기회를 빼앗지 말라는 것이었다.


현재 시도하고 있는 수면 방법과 가장 큰 차이점은 '기다리라'는 부분이었다. 아기가 조금만 칭얼대도 더 큰 울음으로 이어질까 두려워 안고 달래기 바빴다. 스스로 잠들 수 있는 힘이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먼저 안방에 있는 아기 침대를 서재 방으로 옮기고 아기 방을 만들었다. 프린터와 서랍장을 작은 방으로 옮기고, 아기가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두꺼운 이불을 바닥에 깔았다. 밖에서 방 안을 확인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설치했다. 저녁 8시 30분에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목욕을 시키고, 9시에 아기 방으로 들어갔다. 자장가 세 곡을 부르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하고 나왔다.


방문을 닫자마자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남편과 눈빛을 교환하는데, 둘 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분리 수면에 대해 같이 책도 읽고, 의견을 공유했음에도 우는 아기를 달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은 부모에게 엄청난 고통과 인내심을 필요로 했다.


첫날 아이는 10분 동안 울었고, 다음 날은 5분 울다 잠들었다.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한 시간 넘게 울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빠르게 잠들었다. 프랑스 아이처럼 우리 아이도 분리 수면이 가능할 것 같았다. 일주일을 그렇게 5~10분 정도 울다가 잠들었다.


오랜만에 안방 침대에 남편과 둘이 누우니 신기했다. 둘이 함께 침대에 누운 게 언제였는지 까마득했다. 핸드폰으로 아기 방 상황을 수시로 확인하며 오래간만에 아기를 곁에 두지 않고 잠들었다. 하지만 프랑스 아이와 달리 아이는 12시간 내리 자지 못했다. 중간중간 울음소리가 들렸고, 새벽 3시에 우는 아기를 10분 넘게 내버려 두기란 쉽지 않았다. 또 여름이 다가오는데 아기 방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결국 우리의 분리 수면 도전은 일주일 만에 끝나고 말았다.


14개월에 접어든 아이는 여전히 안방에서 같이 잔다. 침대에서 나와 남편이, 바닥에 설치한 범퍼침대 안에서 아이가 잔다. 어금니가 나오려는지 자다가 서너 번은 깬다. 고통스러운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범퍼침대 안으로 들어간다. 엄마의 존재를 확인한 아이는 다시 잠이 들고, 나 역시 범퍼침대 안에서 아침을 맞이한다.


분리 수면을 시도하며 느낀 것은 아기마다 성장 속도가 다르듯, 상황에 적응하는 속도도 다르다는 것이다. 프랑스 아이처럼 태어난 지 4개월 만에 분리 수면을 하는 것이 사회적, 문화적으로 당연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엄마와의 밀착 육아를 중시하는 아시아 육아법도 존재한다. 유럽권에서 동양의 포대기 문화를 따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엄마에게 밀착된 아기는 엄마 심장소리를 들으며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고, 이는 곧 엄마와의 애착형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키키는 돌이 지났지만 12시간 숙면은 먼 나라 얘기다. 자는 동안 엄마를 찾는다. 육아 멘토로 유명한 오은영 박사가 말하기 '아기가 36개월이 되기 전까지는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도 엄마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것을 믿기 어렵다'라고 한다. 수시로 일어나 엄마의 살결을 느끼고 목소리를 들어야 안심하고 자는 아이를 마냥 분리 수면이라는 틀에 맞출 수 없는 이유다.

 

매일 밤 우는 아기를 달래려 잠에서 화들짝 깨다 보면 이 힘듦과 피로가 언제쯤이면 끝날까 싶어 마음이 어지러워지기도 한다. 언젠가 다시 분리 수면을 시도하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아기가 엄마를 필요로 하는 이 순간, 체력이 있는 한 아기를 곁에서 안아주고 싶다. 옆에 엄마가 든든히 지키고 있다고 키키에게 믿음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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