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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rabbit Oct 23. 2020

남편과의 육아 분담

넘어져도 같이 넘어지는 2인 3각 경기 중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은 즐겁고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연애할 때 몰랐던 상대의 생활방식에 놀라기 일쑤고, 그것이 너무도 사소하여 또 놀랐다. 놀라움은 놀라움으로 그치지 않고 싸움으로 이어지곤 했다. 유치한 싸움 끝에 '이러려고 결혼했나' 싶은 순간도 왔다. 그럼에도 결혼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그것을 뛰어넘기에 유지가 되었다. 출산도 마찬가지였다. 예상 못한 난관이 수시로 이어졌다. 


결혼 전 자녀 계획을 세울 때 2년 정도 신혼생활을 즐긴 후 아이를 가지자고 남편과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반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낳을 거 하루라도 젊을 때 낳아서 얼른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결혼하고 17개월 후, 키키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새로운 식구가 생기자 생활방식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아이에게 맞춰졌다. 집안의 가구와 주방에 놓인 물품의 위치, 방의 역할을 아기를 돌보기에 가장 최적화된 상태로 바꿨다. 공간과 사물만이 아니었다. 생활방식도 바꿔야 했다. 안방은 아기 방이 되었고, 남편은 거실에 잠자리를 폈다. 출근하는 남편을 배려하고자 한 결정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하게 화가 났다. 밤새 분유를 먹이고, 아기를 달래는 것이 온전히 내 몫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왜 나만 희생해야 하지? 우리의 아기인데 왜 나만 잠을 못하고 밥을 못 먹고 있지?‘ 억울함이 차곡차곡 쌓였다. 남편의 삶은 출산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7시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7시에 퇴근하는 삶.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아기 목욕시키고 잠드는 삶. 바뀐 거라곤 퇴근 후 아기 목욕시키는 일 밖에 없었다. 


화가 나고 억울했다.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내가 출근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돈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이 버는 돈이 내가 버는 돈보다 많은데,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더 억울했다. 남편보다 돈을 못 벌어서 육아를 전담해야 하는 현실에 화가 났다.


남편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답답한 출퇴근 시간도 혼자 보내는 시간으로 여겨져 부러웠고, 점심시간을 온전히 밥 먹는데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초췌하고 비참했다. 샤워는커녕 머리도 제때 감지 못하고, 겨우 끓인 라면은 아기를 달래는 사이 퉁퉁 불어있었다. 반면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고 출근하는 남편은 나날이 커리어를 쌓아가는 듯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불만이 터져버릴 지경이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처음 한 두 번은 듣고 위로를 해주던 남편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자기도 하루 종일 일하느라 힘들다고, 자기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이다.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내 힘듦에 빠져서 남편이 했던 행동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돌이켜보니 남편은 나와 아기가 잠들었을 때 미역국을 끓여 놓고 잠들었다. 퇴근 후 밀린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힘이 많이 드는 아기 목욕을 대부분 전담했다. 자기가 입을 옷 자기가 다려서 입고 출근했다. 딱딱한 거실 바닥에서 잠을 잤다. 주말에 한 번씩 나에게 자유 시간을 줬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집에 온 남편이었다. 그런데 나는 마치 하루 종일 놀다 들어온 사람처럼 취급했다. 억울함이 가득했던 자리에 미안함이 들어찼다.


남편과 나는 육아라는 2인 3각 경기를 뛰고 있었는데, 그동안 혼자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넘어질 때 남편도 넘어지고 있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옆에 누가 있는지 보지 못했다. 남편도 남편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일하기 싫어서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 하던 나인데, 일하는 남편을 부러워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했다. 나라는 인간은 결국 어디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인가 싶어 자괴감에 빠졌다. 


키키와 함께 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로 했다. 블랙홀처럼 무한한 사랑과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아기라는 거대한 우주는 누구 한 사람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아기의 삶이 중요하듯 우리 부부의 삶도 중요했다. 돌볼 필요가 있었다. 모든 것을 희생하는 육아가 아니라 서로 힘이 되는 육아를 해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부부는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기로 했다. 남편은 테니스를 다니고, 나는 주말 하루 자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각자 소중한 시간을 선물 받자, 여분의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그 에너지는 오롯이 육아에 긍정적으로 쓰였다.


남편을 부러워하고 미워하면서 내 처지를 초라하게 느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내 속을 들여다봤다. 가장 큰 이유는 돈이었다. 남편은 매달 노동한 대가로 월급을 받아오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가사를 돌보고 육아를 하는 일은 품이 많이 듦에도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다. 통장에 돈이 입금되지 않았다. 그동안 경제활동을 해왔기에 상실감이 더 컸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당하게 평가받고 있지 않다는 기분이 나를 괴롭혔다.


육아와 가사 일에 대해 시간당 수당을 지급받았다면 지금보다 덜 힘들었을까 생각해본다. 육아도우미나 가사도우미를 고용했다면 그분들에게 돈을 지불했을 것이다. 나는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고, 그만큼의 돈을 벌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지금 현재의 모습은 누구에게 등 떠밀려 만들어진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 직접 아이를 키우기로 한 내 결정이었다.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치 있는 일인지 알면서 그 가치를 폄하하고 있던 것은 바로 나였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자 남편이 안쓰러웠다. 남편은 육아휴직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남편에게 육아에 더 전념하라고 바라기 전에 그의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봤어야 했다. 


우리는 서로의 노고를 존중하기로 했다. 상대의 노력과 최선을 비하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 둘은 누가 더 육아를 했고, 누가 더 가사 일을 했는지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싸워야 하는 적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레이스를 뛰는 동지이자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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