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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rabbit Oct 19. 2020

8개월 아기와 첫 장거리 여행

바람 많이 부는 4월의 강원도 강릉 강문 마을 여행기

아기가 제법 혼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앉아 있는 자세가 안정적인 8개월이 되는 때 강원도 강릉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서 그런지 답답할 때면 바다가 생각난다. 끝이 보이지 않는 파란 바다를 보고 있으면 답답한 마음은 뻥 뚫리고, 찬바람은 복잡한 머리를 씻겨주는 기분이다. 


남편이 쉬는 평일을 이용해 산 좋고 공기 좋은 강원도로 떠나 그간 쌓인 육아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로 했다. 아기를 데리고 처음 떠나는 장거리 여행이라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각종 용품을 빠짐없이 챙겼다. 고작 1박 2일 갔다 오는 건데도 짐이 많았다. 트렁크 가득 아이 물건을 넣고 출발했다. 


카시트에 앉은 아이는 출발하자마자 낮잠에 빠져들었다. 좋은 신호였다. 한 시간 정도 푹 잔다면 강릉까지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얼마간 잤을까, 잠에서 깬 아기는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기저귀를 확인하자 시원하게 응가를 했다. 출발 전 응가를 안 한 것이 신경 쓰였는데, 출발 한 시간도 안 되어 휴게소에 들러야 했다. 가까운 휴게소에 들러 엉덩이를 씻기고, 다시 출발했다. 


평일이고 휴가철이 아니라 차로는 한산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푸릇한 산과 쾌청한 하늘이 반가웠지만, 카시트가 답답한지 칭얼거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다. 딸랑이를 흔들고, 노래도 부르고, 간식도 먹이면서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미리 찾아둔 꼬막비빔밥 집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향했다. 남편과 둘이었다면 부지런히 주변 관광지를 둘러보느라 바빴겠지만 아기와 함께 하는 여행은 계획을 세우면 안 됐다. 대부분을 숙소에서 묵는다는 생각으로 가야 했다. 


바다가 훤히 보이는 커다란 창이 돋보이는 숙소에 들어서니 집 밖으로 나왔다는 실감이 났다. 아이도 기분이 좋은지 손을 창문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묵을 숙소는 앞으로는 강문해변이 펼쳐지고, 뒤로는 경포호가 있는 강문 마을에 자리했다. 호수 옆 바닷 마을이라는 별칭이 참 아름다웠다.


3시간 이상 차를 탄 것만으로 충분히 기진맥진해져서 조금 쉬었다가 바다로 나가기로 했다. 바람이 많은 날이었다. 어느 장소에서 사진을 찍어도 머리카락이 사정없이 휘날렸다. 아이는 거친 바람조차 재밌고 신기한지 양발과 양팔을 파닥거리며 좋아했다. 나만큼이나 바다가 반가운가 보다. 곳곳에 사진을 찍기 좋은 스팟을 마련해두었다. 몇 장 남기고, 혹여 아이가 감기에 걸릴까 걱정되어 바람을 피해 숙소로 돌아갔다.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시며, 바람이 많아서 아쉽다고 남편과 조금 속상해했다. 



첫 장거리 여행과 찬바람에 고단했는지 아이는 목욕을 하고 일찍 잠들었다. 남편과 오랜만에 회에 와인을 곁들이며 여행의 기분을 만끽했다. 숙소에 있는 보드게임을 하며, 작은 내기도 하고, 밤늦도록 연애할 때처럼 깔깔거리고 웃고 마셨다. 곤히 자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간단히 챙기고 강문해변을 다시 걸었다. 경포호까지 걸어 가보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이 없었는데, 맞은편으로 유모차에 아기를 싣고 걸어오는 부부가 보였다. 우리와 비슷해 보였다. 다가오는 엄마도 육아의 고단함을 달래려고 여행을 왔겠구나, 괜히 상상하며 그저 지나치는데도 동질감을 느꼈다. 



20여 분을 걸으니 경포호가 나왔다. 드넓은 호수 둘레로 산책로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처음 보는 새도 많고, 정원도 잘 가꾸어 놓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울창한 나무들이 소중하게 잘 돌봐지고 있는 곳에 들어가니 나조차 돌봄을 받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날이 차갑고 바람이 많이 불어 오래 머물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다시 꼭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다. 


여행의 마무리로 초당순두부를 든든하게 먹고 집으로 향했다. 강릉까지 와서 고작 하루 묵고, 바다와 호수만 보고 떠나려니 아쉽기도 했지만, 이렇게라도 아기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즐거움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밖에 나가는 것도 어려웠던 아기의 100일을 생각하면 어느새 자라서 함께 여행도 할 만큼 컸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아기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다. 모든 것을 천천히, 느리게, 그리고 조바심 내지 않고 해야 한다. 많은 것을 보고 먹으려면 분명 탈이 난다. 아기의 속도에 맞춰서, 아기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움직여야 한다. 


성격이 급하고, 뭐든지 내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아이 곁에서 완전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아기와 공존하는 법을 배워간다. 덕분에 숙소에 오래 머물며 휴식하는 법도 알게 되고, 밤새 남편과 소리 죽여 게임을 하고 수다를 떠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하나를 잃으면 반드시 하나를 얻게 된다는 것, 아이를 기르며 또 하나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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