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llorabbit Oct 19. 2020

산후 다이어트

출산 전 몸매로 돌아갈 수 있을까?

조리원을 나올 때 몸무게가 백일이 지나도 그대로다. 아기 보느라 끼니도 제때 챙기지 못했는데, 축 늘어진 뱃살과 가슴, 두꺼운 허벅지는 빠질 기미가 없다. 아이가 백일이 되는 날만 기다렸다. 아기가 좀 크고, 내 몸도 회복되면 운동을 해서 살을 빼고 싶었다. 백일잔치를 간단하게 하고, 필라테스 학원을 등록했다.


필라테스 학원 첫날, 인바디라는 것을 했다. 결과는 과체중. 몸 구석구석 지방이 쌓여있는데 단연 복부지방이 가장 심각했다. 한 번도 인바디 결과가 정상 혹은 저체중을 벗어났던 적이 없어서, 이미 예상한 결과지만 마음이 심란했다. 유난히 마른 강사는 인바디 결과지에 그려진 복부 부분을 빨간색 볼펜으로 두드러지게 체크했다.  "아... 출산한 지 얼마 안 돼서요..."라고 말하는 내 목소리는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자신감이 없었다.


오랜만에 요가 레깅스를 꺼내 입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볼록하게 축 처진 배는 아무리 힘을 줘도 배꼽 주변만 들어가서 겹쳐 보였고, 팔뚝은 두껍고 우람했다. 허벅지와 엉덩이는 레깅스에 겨우 구겨 넣어진 모습이고, 미처 구겨 넣지 못한 윗배는 레깅스 밖으로 자꾸 고개를 내밀었다. 전에 보지 못한 내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호리호리하고 가녀린 강사가 자세를 잡아주러 옆에 서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더없이 커다랗고 뚱뚱해 보였다. 마치 하마와 백로가 나란히 서있는 모양새,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임신했을 때는 배가 나오는 게 당연하니까 살이 쪄도 거부감이 없었다. 엄마가 건강하게 잘 챙겨 먹는 것이 아기에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찐 살이 이제는 온전히 나의 과제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다이어트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살 빼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육아도 힘든데 다이어트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자 스트레스였다.


몸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살이 쪘다고 비난받을 일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전 몸매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전에 비해 무거운 몸은 나를 자꾸 게으르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전에 입던 바지가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더라도 입은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그 옷을 입은 내 모습이 마음에 들기를 바랐다. 


무엇보다 살이 찌면서 기존의 허리 통증 강도가 더 심해졌다. 귀찮고 힘들어서 간편하게 조리가 가능한 라면이나 인스턴트 음식을 먹다 보니 부기가 더해져서 보기에 더 뚱뚱해 보였다. 변화가 필요했다. 다이어트는 단순히 몸무게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을 돌보는 생활 방식의 개선을 의미했다.


필라테스로 살을 빼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먹는 것을 조절해야 했다. 칼로리는 낮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비건 식단을 알게 되었다. 조리법이 담긴 책을 구매해서 시간이 날 때 하나씩 따라 했다. 두부와 버섯, 제철 야채 등을 주재료로 식단을 꾸려서 저녁을 먹었다. 남편도 먹고 나면 확실히 속이 편하다고 좋아했다. 당장 모든 식단을 바꿀 수는 없지만, 하루 한 끼라도 건강하게 먹는다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돌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식습관 개선과 주 2회 필라테스, 수시로 하는 스트레칭과 중랑천 산책으로 약 3개월 동안 5킬로그램을 감량할 수 있었다. 단시간에 급하게 빼지 않아서 더 찌지는 않았지만 출산 전 몸무게까지는 여전히 5킬로그램이 남아있다. 육아와 가사 일을 하면서 자신을 돌본다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잘 조절하다가도 육아가 유독 고된 날 밤에는 맥주 한 캔을 따고 만다.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주는 위로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나머지 몸무게를 어떻게 빼야 할지 막막하다. 어쩌면 이렇게 출산 전보다 5킬로그램이 찐 상태로 앞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수시로 안고 들다 보면 팔뚝은 자연스레 굵어지고, 불규칙한 수면은 몸의 회복을 방해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거부할 수 없듯 현재의 내 몸매도 거부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려 한다. 무리해서 뺄 수 없는 이 상황과 내 상태를 인정하려 한다. 얼마 전 넷플리스를 보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조금만 살이 쪄 보이는 사진이 찍히면 그 날로 음식을 먹지 않으며 44 사이즈를 유지하던 그녀는 현재 66 사이즈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그녀는 이상적인 몸매가 있다는 허상을 내려놓기로 했다. 자신의 몸은 원래 66 사이즈여야 했다고, 이게 맞는 거라고 인정하고 자신을 돌보는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여성에게 엄청난 사건이다. 그동안 살아온 방식을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함은 물론 체형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내 몸을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매일 배우는 것은 모든 것이 결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급하고 안달 낼 수록 나만 힘들다. 그 힘듦은 고스란히 육아에 영향을 미친다. 


정신승리일지 모르지만, 나 역시 지금 현재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내 마음을 어루만진다.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자신에게 너무 야박해지지 말자고 다짐한다.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듯, 엄마가 된 현재의 내 모습도 사랑하려 한다.

이전 26화 첫 사회생활, 문화센터 체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