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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rabbit Oct 21. 2020

어린이집 적응기

복직을 앞두고

키키가 10개월이 될 즈음부터 마음은 분주하고 혼란스러웠다. 11월이면 육아휴직 1년이 끝났다. 예정대로 복직을 해야 할지, 아니면 휴직을 연장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돌도 안 된 아기를 위험한 시기에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맞는지 알 수 없었다.


한창 문화센터를 다니며 재미난 활동을 하며 소 근육, 대 근육을 써야 할 시기에 코로나로 집콕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이 곁에서 노래도 부르고, 장난감도 흔들어 보고, 어부바도 해보지만 놀잇감은 금방 동이 났고, 지치고 무표정한 얼굴로 소파에 누워서 아이에게 형식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말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암울한 상황이 하루하루를 좀먹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때 입소대기를 걸어놓은 곳에서 전화가 왔다. 코로나로 불안한 나날들이었고, 아직은 좀 이른 것 같아서 쉬이 대답할 수가 없었다. 상담이라도 받아보자고 아기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갔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을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는 다행히 금세 마음을 열고 레고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같은 반 또래 친구들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예상보다 금방 마음을 여는 키키가 기특하고 대견했다. 그럼에도 아직 마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에, 돌이 되는 두 달 뒤에 다시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어린이집을 나왔다.


8월을 앞두고 어린이집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두 달 사이 아이는 소파를 잡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기도 하고, 어른이 먹는 밥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가 불안하기도 했지만, 계속 움츠리고 살기에는 하루하루도 소중했다. 하루 1~2시간씩 천천히 적응하자고 원장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어린이집 이름이 커다랗게 적힌 가방을 받아 들었다.


가방 안에 물통, 손수건, 여벌 옷, 간식 등을 챙겨 원으로 향했다. 첫 주는 아이들이 있는 교실이 아닌 공용 공간에서 담임 선생님, 키키, 나 셋이서 놀았다. 일단 어린이집과 담임 선생님에게 적응하는 것이 필요했다. 남편과 나는 어린 시절 울보로 악명 높았다. 엄마와 시어머니를 통해 들은 우리의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손 많이 가는 울보, 겁보여서 아이도 그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우리보다 훨씬 의젓하고 예민하지 않은 아이여서 걱정한 것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타고난 기질이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보다 사회에 잘 적응하는 성격 같아서 솔직히 안심이 되고, 엄마의 불안감을 달래주는 것 같아서 고마웠다.


첫 주는 30분, 둘째 주는 1시간 정도 머물며 아이는 천천히 어린이집에 적응해갔다.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기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름표를 물건마다 붙이기 위해 이름이 적힌 스티커와 도장을 주문하고, 낮잠이불이라는 것도 구매했다. 수건에도 자수로 이름을 박아 넣었다. 키키의 삶이 가정에서 어린이집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둘째 주부터는 엄마와 잠시 떨어지기를 시도했다. 셋째 주에는 점심을 먹고, 낮잠도 도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광복절 이후 대규모 집회로 한 자릿수였던 확진자 수가 세 자리 수가 되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었다. 다시 가정보육이 시작되었다. 겨우 어린이집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려고 하는데, 2주 간의 시간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한 달로 예상했던 적응기간을 반으로 뚝 잘라 적응해준 키키에게 감사했다.


한 달 후, 다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가정보육 기간 동안 훌쩍 커서 혼자 걸어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새롭게 처음부터 적응해야 하는 것 아닐까 걱정했는데, 선생님 품에 안긴 아이는 엄마를 향해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선생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 밀린 집안일을 했다.


매일매일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원에 있는 동안 아이가 어떻게 노는지, 선생님이 어떻게 돌보는지 CCTV 보듯이 알 수는 없지만 선생님을 믿는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어린이집 사건 사고는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한다. 나 또한 갓 돌이 지난 아기를 남의 손에 맡기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그래도 믿는 수밖에 없다.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 그렇지 않은가. 늘 감사한 마음으로 선생님의 일과 존재를 존중한다. 


사회생활을 마스크 쓴 얼굴로 시작하는 아이가 세상과 잘 소통하기를 바랄 뿐이다. 집에만 있다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코로나가 무척 염려되기는 하지만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기 위한 우리 부부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매일 오후 키즈노트를 기다린다. 그 날 한 놀이와 활동 사진을 보며 아이를 돌봐주신 선생님께 감사하고, 또 잘 놀아준 키키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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